1.“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어서 집에 가보렴.”나는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기숙 고등학교를 다녔다. 수업시간 끝나갈 즈음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말씀하시는 선생님이나 듣고 있는 나 또한 담담히 할아버지 부음소식을 전하고 들었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곧 손자인 나와 대화도 못하고, 따뜻한 손도 못 잡는 이 세상 분이 아닌데, 나에게는 슬픔보다 하나의 일상 일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지난달에 많이 아프셨던 할아버지 상태를 기억하여서 그러하였다. 나는 기숙사를 들러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할아버지는
" 아악! 아악! 원장님 어떡해요! 걔가 뛰었어요!"" 잡아! 놓치면 안 돼!"" 안 보여요 원장님!"문밖이 소란스러워서 나와 봤더니, 옆방에서 나는 소리다. 오랫만에 옆방에 사면발이 환자가 온 모양이다. 안 들어가봐도, 초집중해서 사면발이를 한 마리씩 잡고 있을 김원장님과,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뛴 사면발이를 찾아 바닥을 훑고 있을 나영 간호사가 눈에 선하다. 김원장님은 눈에 보이는 사면발이를 다 잡아야 하는 성격이다. 생각만해도 온 몸이 간지러워 목덜미가 움츠려 든다. 어짜피 다 잡아도 약을 써야 하므로, 나는 증
“정신병 환자를 보는 건 무섭지 않아요?”정신과를 전공한다고 하면 처음 만난 사람들은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곤 한다. 대답하기 곤란하게 느껴지는 것은 진료를 본 환자들의 대부분이 지나칠 정도로 순한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난폭한 환자들을 진료를 할 때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들고 면담을 하러 갈 때마다 가슴에 납덩어리가 들어찬 것처럼 답답하다.전공의 3년차가 되었을 때 환자에게 주눅이 들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복싱을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나자 다른 회원들과 가벼운 스파링을 하는
창밖으로 연분홍색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풍경이 지나간다. 오월에 남도 지방 논, 밭에 가장 많이 피어있는 꽃이 자운영이다. 자운영이 지천으로 피었다는 것은 곧 논갈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논들은 쟁기에 갈아엎어질 것이고 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왠지 자운영 꽃을 보고 있으면 평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분홍색의 옷감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들어 눈을 감고 있으니 한 사람이 생각났다. 강씨라는 사람이었다. 자운영 꽃을 좋아하고 자운영 꽃 같은 사람이었다. 오래 전 노숙자 쪽방 무료진료소에서 진료를 하다
“네가 그랬지?” 오늘부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함께 늘 그렇듯 정신 없이 시작된 출근 준비시간. 아끼는 머플러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양은서! 또 너지?” 요즘 서랍이며 옷장이며 정리된 내용물을 밖에 다 끄집어내는 것을 소꿉놀이로 삼는 두 돌짜리 큰딸이 틀림없이 범인일 것이라 의심했고, 확신했다. 시간에 쫓겨 딸을 혼내지도 머플러를 찾지도 못한 채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병원으로 향했다.지난 봄이었다. 발열을 주소로 한 산모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확진자가 하루에도 몇 백 명씩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라면
전공의 1년차 때의 일이다. 회진을 마치고 의국에 돌아오니 내 앞으로 택배가 와 있었다. 모르는 발신인의 이름이 상자 위에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내용물은 손수건 세트였다. 이걸 누가 나에게 보냈을까. 고개를 갸웃대던 차 바닥에 놓인 카드를 발견했다. [그간 애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현우 엄마 올림.]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간 수없이 보고 듣고 불렀던 이름이었다. 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게 했던 현우. 그 현우의 엄마가 손수건을 보낸 것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카드와 함께. 약 한 달 전, 사 개월 남자 아이가
2020년 2월 3일 밤 0시 15분, 춥고 깜깜한 겨울의 한밤중, 나는 마음 한 켠이 뻥 뚫린 듯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 병원 장기이식센터 코디네이터와 함께 장기기증에 동의한 외부병원의 환자를 모시러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탄 구급차는 서울 성북구를 떠나 고속도로 위 죽전의 한 버스정류장에 잠시 멈춰 서서, 나의 대학 후배이자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외과 교실 생활을 같이 했던 동수원병원의 외과 과장을 태웠다. 그리고 우리의 친구이자 역시 아주대학교병원의 외과 의사였지만, 지금은 포항성모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여느 때보다 차분했던 추석연휴 다음날이었다. 가족과 레일바이크를 타며 가을 정취를 만끽했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있을 때, 원장님 발신자로 휴대폰이 울렸다.“선생님, 오늘 501호 OOO환자 보호자 외래 진료 보셨죠?”“네. 몸살 감기라고 해서 제가 목이 부었나 설압자로 편도를 좀 봤어요.”“아…그 보호자 코로나 확진이래요. 그 분 말고도 여러 명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네요. 선생님 가족들도 조심스러우니, 일단 병원으로 오시는 건 어떨까요?”“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해외 여행 때나 쓰던 먼
체취만으로도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환자가 들어왔을 때 맞닥뜨리는 체취는 그 사람이 오랜 세월 몸담은 일이 피부아래까지 스며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근처 횟집 사장님은 단연코 외투를 벗지 않으려 했다. 외투를 벗는 순간 퍼질 비릿함이 민망해서였다. 그럼에도 괜찮다며 환자의 외투를 벗게 하고 등을 들추어 진료를 마치고 나면 정말 몇 분 동안은 다음 환자를 들여보내지 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한다. 양돈을 하는 김 씨는 어떠한가. 그의 이름이 접수 창에 뜨면 벌써 마음에 준
"Q님 들어가십니다."외래 진료실 문을 열고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백육십이 될까 말까한 키에 마른 체구, 까무잡잡한 피부는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서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동남아시아적인' 얼굴 생김새까지, 모든 것이 이 남자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온 외국인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남자의 뒤를 건장한 체구의 '누가 봐도 한국인인'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젊은 동남아시아 여자와 그보다 약간 더 나이든 한국 남자 부부는 농어촌 지역에서 원체 흔하다 보니 병원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젊은 동남아시아 남성과 보호자로
보령 한내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초등학교 배구 대회에 출전했을 때였다. 미산면 소재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식을 하게 되었는데, 큰 그릇에 담긴 시커먼 음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초교 5학년에게는 많은 양이었는데도 눈 깜짝할 사이 먹어 치웠다.그 음식이 자장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였다. 이후 나는 종종 용돈을 아껴 자장면을 사 먹었고 그것은 내게 유일한 사치였다.개원 3년 차 한창 바쁠 때였다. 서산 모 학교에서 왔다고 서너 명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학생과 선생과 학부모였다. 선생이라는
“말하기 싫어요.”눈앞에 앉아있는 내 또래의 젊은 환자는 그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말하기 싫을 거다. 나라도 말 하기 싫었을 거다.’ 환자의 마음을 알 것만 같은 나의 마음, 그리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 이것은 명백한 역전이였다. 역전이는 치료자가 환자를 통해 과거에 경험했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를 떠올린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치료자는 환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스스로 알아채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치료자는 혼란에 빠지곤 한다. 결국 내가 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험난
젊은 여성이 진료실에 찾아왔다. 환자는 아닌 듯 했는데 명함을 내밀었다. 로펌의 변호사였다. 모교를 졸업한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언니를 살려달라고 했다. 언니는 거식증으로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데 지금 상황이면 얼마를 못 버틸 것 같다고 했다. 얼굴에 비친 눈물이 아침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환자를 억지로라도 입원시키기로 했다.입원실에서 만난 환자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키는 160cm였는데 체중은 30킬로그램도 안되었다. 옆으로만 누워있다 보니 눌린 쪽 골반에 욕창이 보였다. 압력으로 피부가 괴사 되는데도 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면 후회란 바라지 않았던 것들의 실상이다. 이미 일이 벌어진 뒤에야 눈앞에 크게 떠오르는 실상이다. 벌써 지나간 과거지만 손에 잡힐 듯한 현재처럼, 마치 막을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왜 지키지 못했을까? 후회는 마음속에다가 아쉬움, 미안함, 책임감, 온갖 감정들을 떨어트려 놓았다. 후회되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찰나의 순간이 현재라는 확대경을 통해 거대한 크기로 미래에 비춰진다. 그 일이 가져올 미래의 대가는 우리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커 보인다. 머릿속 상상이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