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이 창궐했을 때,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천연두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해서 ‘호환마마(虎患媽媽)’라는 말도 있었지만, 종두법 개발로 천연두는 예방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백신과 치료 약, 항생제를 통해 감염병 관리가 가능해졌다.하지만 사스(SARS), 신종인플루엔자A(H1N1), 메르스(MERS)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까지 5년 주기로 불청객이 오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힘들게 했다. 대구에서 대유행이 생겼을 때 의사, 간호사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국민도 PCR 검사, 마스크 착용,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맞는 말이오. 그런데 며칠 지나 같은 방에 묵은 남자도 9월 30일에 콜레라로 죽었소. 이렇게 시작한 콜레라가 2년 동안 전국에 퍼져 5만 명이 목숨을 잃었소(영국 3차 유행).- 그 선원이 지표환자(index case)네요. 콜레라 잠복기는 길면 5일 정도인데 유럽이나 배 안에서 감염된 채 영국으로 온 거네요. - 그렇소. 그런데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소. 당시에는 콜레라의 원인은 나쁜 공기라는 것이 의학이론으로 인정 받
임상의사로 일한 기간은 짧았지만, 저에게도 쇼피알의 경험이 있습니다. 인턴 때 파견 나갔던 병원의 응급실에서였습니다. 5~6세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응급실에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시행한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심장은 곧 멎었습니다. 울면서 따라온 아이 엄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얼굴은 거의 다치지 않아 아이가 멀쩡해 보였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 있던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의료진들 중 누구도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아이 엄마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명시적인 제안이나 지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참, 빅토리아여왕 출산 때 박사님께서 직접 마취하신 걸로 유명합니다. - 영국에서 내가 아니면 누가 여왕 폐하를 마취하겠소? - 맞습니다. 스노 박사님이 당대 최고의 마취 전문의사시니까요. 그런데 여왕은 어떻게 무통 분만을 하실 생각을 했을까요? - 남편인 알버트 공 때문이오. 1840년에 결혼한 여왕은 그 해 말부터 1850년 5월까지 9년 반 동안 무려 7번이나 출산하셨소. 16개월 마다 한 번 꼴이오. 엄청나지 않소? - 빅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콜레라인가요?- 아니오. 마취요. …. 그러니까 대학 졸업하고 3년 정도 지난 때니 1846년이오. 12월 말에 런던에서 어떤 치과의사가 공개적으로 마취 시연을 했소.- 마취는 그 해 10월에 보스턴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그 직후네요. - 맞소. 두 달 만에 대서양을 건너온 거요. 나도 공개 시연 현장에 갔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거요. 치과의사가 환자에게 에테르(ether) 가스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1836년에 런던에 왔을 때가 23세였소. 그레이트 윈드밀 가에 있는 헌터의학교(the Hunterian School of Medicine)에 입학했소. 하숙집은 그 북쪽의 소호 지역인 뱃맨스 빌딩스 11번지에 얻었소. 당신이 아는 것처럼 이후로 쭉 소호에서만 살았소.- 헌터의학교는 유명한 서젼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와 관련 있는 곳인가요? - 그렇다고 볼 수도 있소. 존의 형인 윌리엄 헌터가 1769
2022년 1월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지침' 개정을 맞닥뜨린 산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해 언론을 통해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참여 병원에서 고가 항암제 급여 적용을 둘러싼 지불제도 간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며, 지불 모형이 개편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 바 있다.하지만 정부가 사전 예고 없이 지침 개정을 통해 치료재료 포괄영역 구분기준을 변경하리란 건 의료기기산업계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달라진 치료재료 보상방식에 대한 요양기관 문의를 대응하기에 지불모형의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시범사업 지침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저도 어릴 때 그런 동네에 살았습니다. 도로는 포장이 안되어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도랑이라 불리는 개방된 하수도로 온갖 오물이 떠내려 가고, 여름에는 악취가 났죠. 하수도가 막힐까봐 시청에서 정기적으로 오물을 걷어내어 거리에 더미로 쌓고 말렸죠. 거리는 악취가 진동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어요. - 도시는 곧 악취였던 시절이었소. 대영제국의 수도인 런던도 마찬가지였소. 어디든 악취가 풍겼지만 가난하고 불결한 이 동네에는 더 심했
이하는 존 스노 박사와 가상의 인터뷰다. 대부분 관련 자료를 참고했고 필자의 추측도 일부 들어 있다- 아, 박사님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쁘진 않아요. 요즘도 종종 이 근처로 산책을 나오기도 하니까요, 집도 가까워요.- 박사님 댁이 리젠트 가 건너편에 있는 새크빌 가 18번지(18 Sackville Street) 시죠? 1853년부터는 거기 사셨죠. 그 전에는 소호 스퀘어 프리스 가 54번지(54 Frith Street, Soho Square)에 1838년부터 사셨고, 그 보다 전에는 뱃맨스
예방의학 수업도 끝나고, 시험도 치르고, 학교도 마치고 나니 존 스노의 콜레라 펌프도 콜레라 지도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이 이야기를 다룬 책 를 읽으면서 스노의 콜레라 역학 연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잊었다. 몇 년이 지나, 마취학의 역사를 뒤척이다가 존 스노를 다시 만났다. 빅토리아 여왕이 왕자를 낳을 때 무통분만 목적으로 여왕을 직접 마취한 이가 바로 존 스노라는 것이 아닌가! 동명이인인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스노는 마취
필자가 재학 중인 교토대학에는 현역 노벨상 의학생리학 수상자가 2명 있다. 이 중 2012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현재 교토대학 iPS(induced pluripotent stem)연구센터(CIRA)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iPS는 체세포에 소수의 인자를 도입 배양해 다양한 조직이나 장기 세포로 분화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세포를 뜻하는데, 현재 일본 내에서 의학계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주목되는 분야다.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일본 전국의 대학병원들이 연계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현재 교토대병원에서는 i
“런던 가신다구요? 피시 앤 칩은 별로 맛없어요. 런던아이(London Eye) 강추합니다. 웨스트엔드 가서 뮤지컬 하나 보세요.” 내가 런던에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답이다. 하지만 나는 웰컴 컬렉션(Wellcome Collection), 헌터 컬렉션(Hunterian Museum), 런던 위생-열대의학원(LSHTM), 세인트바르톨로뮤병원(St. St Bartholomew's Hospital), 옛 세인트토머스병원(St Thomas' Hospital) 수술장, 앨더샷 군의료 박물관(The
2007년 3월, 아직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날, 동작동의 늦은 오후는 한강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으로 살이 에이는 듯하다. 전철역에서 현충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왜 그리도 먼지. 따뜻한 남쪽 섬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들과 딸은 발을 동동 구르며 모진 아빠의 뒤를 따라 걷는다. 아이들의 볼은 금세 새빨개졌고, 그 볼만큼 빨간 해가 좀 있으면 서산에 걸린 참이다. “애국지사 96”입니다. 민원안내실의 근무자가 내게 알려준 묘역 위치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친절하게 그 위치를 알려주며 내게 묻는다."이분 묘 찾아오는 사람 거의 없는
강력한 쥐약의 탄생 몇 년이 지나 링크는 결핵에 걸렸다. 아직 치료제가 없던 시절이라 링크는 당시의 보편적인 치료법인 ‘안정요양’을 받았다. 공기 좋은 곳에 있는 결핵요양원에 입원해 푹 쉬면서 잘 먹고 지내는 것이 결핵치료법이었다. 링크는 어느 날 요양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요양원에 들끓는 쥐 때문에 골치가 아플 지경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이때 링크는 자신이 합성한 디쿠마롤의 멋진 사용처를 생각해냈다. 쥐약으로 쓰면 어떨까? 1946년부터 링크는 쥐약 개발을 시작한다. 2년 동안 연구 개발을 통해 디쿠마롤의 독성을 더 세게 만들
식민지 조선의 스코필드 일단 4년 계약을 하고 1916년 가을에 스코필드는 아내와 함께 조선에 입국했다. 27세 꽃다운 청년은 의학교에서 세균학과 위생학 강의를 맡았고 한국말도 부지런히 배우고 선교사 자격도 얻었다. 그리고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이름도 얻었다. '石, 돌처럼 단단하고 虎,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弼,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좋은 뜻의 이름이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의 처지에도 깊이 공감했던 그는 수업 시간에 청년 학생들에게 의학 지식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동작동의 스코필드 "석호필 아세요?"의사 동료들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알지. 2005년경에 방영된 미드 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잖아. 원래 이름은 스코필드인데 우리식으로 석호필로 부를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 이때부터 미드 붐이 일었을 걸?"하지만 동작동 국립서울 현충원에 묻힌 석호필을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면서 내게 되묻기도 한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외국인도 묻혀 있어?"2022년 현재, 동작동에는 세 분의 애국지사가 안장되어 있는데 제일 처
일차의료는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대하는 의료 제공자가 일정할 때 성립하는 용어이다. 일차의료 의사는 특정 ‘질병’이 아니라 포괄적인 ‘건강’에 초점을 두는 전문가로서, 개인이나 인구집단의 건강관리를 담당한다. 아울러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지휘자로서 조정기능을 수행한다.이와 같이 최초접촉, 포괄성, 조정기능이 이루어지면, 전인적 건강 돌봄을 바탕으로 하는 환자-의사 신뢰관계 즉, 지속성을 지니게 된다. 선진국 국민의 대부분은 주치의를 보유하는데, 이는 일차의료의 첫 번째 핵심속성인 최초접촉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주치의는 대체
지하철에서 내려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지도에는 그리스 대사관 근처라 했는데 잘 보이질 않았다. 서툰 스페인어로 행인에게 길을 물어 간신히 연구소를 찾았다. 알고 보니 몇 번이나 그 앞을 지나쳤던 아담한(!) 건물이었다. 심호흡 한번 하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접수대 직원이 나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나를 간단히 소개했다. “올라!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에서 온 신경과 의사입니다. 평소에 까할 선생님을 아주 존경해 마지 않았는데 이번에 마드리드 여행을 온 김에 이 연구소를 찾아왔어요. 박물관이 있는 걸로 아는데 관람 좀 하고 싶어요.”
1890년에 까할은 네 가지 원리를 정리하여 이런 바 ‘뉴런 독트린(neuron doctrine)’을 주장한다. 좀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뉴런(신경세포)이 뇌의 기본적인 기능 단위다. 2. 뉴런이 온몸으로 다른 뉴런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한 뉴런의 축삭돌기(axon)의 끝과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dendrite)나 특별한 지점(나중에 시냅스synapse으로 불린 부위에서만 소통한다. 3. 뉴런이라고 다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특정 뉴런들과 연결되어 신경회로를 만든다.4. 뉴런들이 만드는 신경회로는 일방통행으로 정보가
1996년 공중보건의사로 제주도에서 근무하게 된 인연으로 그 이후 제주섬에 정착한 신경과 의사 박지욱(박지욱신경과) 원장. 그리스신화에서 기원한 의학용어를 탐사한 ‘메디컬 오디세이’를 썼다. 박 원장은 고고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의료환경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의 역사적 맥락을 알게 되면 병원이라는 딱딱한 일상도 흥미로운 고고학적 유물이 가득한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의학의 현재와 과거 사이의 단절된 끈을 찾는 작업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신문 청년의사의 '진료실의 고고학자'라는 코너를 통해 독자들을 만났던 박지욱 원장이 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