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대비 병상수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를 기록한다. 아주 자랑스러운 국가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0'를 보면 한국 병상수는 인구 1,000명당 12.7개로 OECD 평균인 4.3개의 3배에 달한다. 정부는 돈을 거의 안들이고 민간자본으로만 세계 최고를 기록한, 자랑스럽다 못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아주 희한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OECD 통계를 보면 한국만큼 의료접근성이 좋은 나라는 없다. 병상수도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도 연간 14.
최근 실무에서 접한 ‘설명 후 충분한 숙고 시간을 주었는지 여부’에 관한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사건 경위는 이렇다. 원고(환자)는 지난 2018년 6월 7일 피고 병원에 처음 내원해 “며칠 전 넘어져 통증이 심화됐으며,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아파서 힘들다”고 호소하면서 치료를 원한다고 했다.피고 병원은 X-ray 및 MRI 검사 등을 통해 척추관협착증, 전방전위증, 추간판탈출증으로 진단했다. 피고 병원 척추센터 의사는 이날 환자에게 “즉시 수술이 필요한 요추 4·5번 외에 향후 악화 소지가 있는
다발골수종은 악성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여 생기는 혈액암으로 용해성 뼈병변, 빈혈, 고칼슘혈증, 신부전 그리고 면역기능저하로 인한 감염 등의 증상이 특징이다. 평균 진단 연령은 70세 전후로 국내에서도 인구 고령화로 인해 발생률과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지난 20년간 프로테아좀 저해제, 면역조절제, 단클론항체와 같은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로 다발골수종 환자의 생존기간은 크게 향상됐다. 최근에는 CAR-T, 이중항체(bispecific antibody) 치료와 같은 T세포를 이용한 면역치료제의 연구 개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산골 마을부터 서울까지, 아기를 받을 의사부터 소아를 진찰할 의사, 심장 수술할 의사가 없어 난리다. 필수의료라 불리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의사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높은 노동 강도, 다른 전공에 비해 낮은 급여, 소송에 대한 위험까지. 다양한 장애물이 의사들을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 미용성형으로 향하게 한다. 최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하며 회원들에게 미용, 보톡스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세태에 새내기 의사들도 필수의료를 지망하지 않는다.대안으로 '의사를 수입하자'는 주
병원도 일반사업체와 같이 다수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취업규칙을 통해 근로와 관련된 주요사항을 정한다.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 내용 중 근로자에게 불리한 변경을 할 때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동의를 명시적으로 받지 않은 경우 변경된 취업규칙 효력에 대해 법원은 일정한 판례를 형성해왔다.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이다.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유지한 종래 대법원 입장을 변경했다.현대자동차 주식회사가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같은 의사라도 개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환자가 줄어든다는 것, 환자가 없다는 것이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 잘 모른다. 이번 달에 직원들 월급은 제대로 챙겨줄 수 있을지 노심초사 고민 고민하는 세월은 그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어떤 심정일지 감히 헤아리지도 못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직원을 한 명 내보내고 또 한 명 내보내고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병원 문을 닫을 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주변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동료들을 보면 2000년대 초중반부터 자기 전문과를 포기하고 미용성형으로
유전자검사 중에서 논란이 많은 소비자 직접의뢰 유전자검사(Direct To Consumer Genetic Testing: DTC-GT)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이해가 어렵거나 또는 과도한 규제로 산업발전을 정부와 의료계가 방해하고 있다는 인상(?)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DTC-GT란 전문적인 의료진의 개입없이 소비자에게 인터넷, 사회적관계망, TV, 잡지,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광고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유전자검사를 제공하는 상업적 유전자 검사들을 지칭한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서 직접 판단하고 결
인체자원 기증의 대표적인 것은 헌혈이다. 기증된 헌혈 혈액은 비록 보관기간이 제한적이지만, 즉시 환자에게 투여하여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대한수혈학회지에 실린 에 따르면 헌혈 참여의 주된 이유는 ‘정기적인 참여(32.1 %)’, ‘헌혈 참여 요청(20.9 %)’이었으며, 미참여자 대상 설문에서는 ‘헌혈할 생각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서(22.8 %)’,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 및 약속을 자제해서(18.3 %)’ 등의 비율로 나타났다. 이
비급여 대상인 시력교정술 시행 후 일부 검사료 등을 요양급여로 청구한 의사들이 이중청구로 면허정지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 2020년 9월 면허정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22년 11월 24일 의사인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고 대법원에서 패소가 최종 확정됐다(선고 2021누75742 판결).비급여 이중청구란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 후 진료비를 비급여로도 청구하고 요양급여로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미용목적 시술 비용을 환자에게 비급여로 징수했는데 이에 대한 진찰료를 요양급여로 청구한 경우가 대표적이
환자가 실손보험금을 신청하는 경우 보험사는 과잉진료가 있었다면서 보험금 청구를 거부하거나 감액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실손보험 가입자인 환자도 의사의 과잉진료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본 하급심 판례가 나와 살펴보고자 한다.A씨는 B실손보험사의 암 보험 상품에 가입하며 입원치료비 중 본인부담분의 90%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실손보험도 함께 가입했다. A씨는 요추부 및 경추부 추간판 탈출증 및 양측 슬관절 골관절염 등의 진단을 받고 35일간 C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A씨는 4,300여만원의 환자본인부담금 진료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간호법,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는 분명 사실이고 전폭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처우 개선을 위한 간호법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어리둥절함이 있다.한 10년 전쯤일 텐데, 박근혜 정부 초기거나 임기 시작 전일 것이다. 현재 대형병원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정부가 준비하던 시기다. 가족 또는 간병인이 1:1로 환자 곁에서 간병을 하는 시스템은 그야말로 후진적인 제도라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고 간호간병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던 시기였다. TFT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몇 년 동안, 해외 출장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그때도 이미 한국의료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인식이 존재했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나 고령화와 같은 문제들도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편에서는 의료의 질 관리, 환자안전, 환자경험과 서비스디자인, 새로운 기술의 활용 등의 이슈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먼저 파악하여 독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에 다양한 곳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던 것입
동일한 진료기록감정사항에 대해 감정기관이 서로 모순된 결과를 회신한 경우, 법원이 그 중 한편을 들려면 감정결과의 신빙성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 4월 27일 나왔다(선고 2022다303216).의료소송에서 각 감정기관마다 서로 다른 감정결과를 회신하는 경우가 있다. 법원은 서로 모순되거나 불명료한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그 중 하나를 그대로 선택해 판결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의미 있는 판결이다.사안은 이러하다. 이 사건의 망인은 요양병원에서 식사를
가천의대 정재훈 교수가 위와 같은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긴 글이 화제다. 원고지 37매 분량의 이 글에서 정 교수는 ‘의료 붕괴’가 멀지 않았다며 붕괴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공급자와 정부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더 내고 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고, 특히 일부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자기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공급자들은 필수의료 제공 기관에 대한 새로운 지불제도를 수용해야 하고,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비용효과성이 낮은 의료
보건복지부가 오는 6월부터 시작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모델을 공개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재진환자가 주 대상이며 약계가 반발하는 약 배달은 제외됐다.하지만 복지부가 공개한 시범사업 모델을 놓고 벌써부터 많은 우려가 나온다. 모델 자체에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우선 만성질환자는 1회 대면진료 후 1년 이내, 기타 질환자는 1회 대면진료 후 30일 이내까지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기간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때문에 대면진료 후 비대면 진료 허용 기간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특
먼저, 내 경험담. 가족 중에 거동이 매우 불편한 환자가 있어 2~3개월마다 한 번씩 가족관계 증명서와 신분증을 지참하고 대학병원에 간다. 대리처방을 받기 위해서다. 환자가 입원했던 대학병원에서 늘 똑같은 처방을 받고, 같은 약국에서 오래 기다린 다음 약을 받아온다. 이를 십 수 년째 반복하고 있다. 대리처방을 위해 병원에 가는 날은 병원과 약국을 오가느라 반나절이 날아간다. 이럴 때는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다. 어차피 환자는 대면하지 않으니 진료의 질 차이는 별로 없을 테고, 나는 반나절의 시간을
신생아 스크리닝검사는 외국에선 이미 1960년대 초에 시작이 됐다. 처음 시작은 희귀 유전질환인 페닐케톤뇨증 등의 유전성 대사질환으로부터였다. 1961년 소아과의사이면서 미생물학자였던 Guthrie 박사는 특정한 아미노산이 있을 때 잘 자라는 특수한 박테리아 균주를 개발했다. 그리고 신생아의 혈흔을 종이(여과지, dried blood spot, DBS)에 묻혀 건조시킨 후 이를 이 특수한 균주가 있는 배지 위에 올려 놓아서 대량의 검체를 스크리닝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물론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역사적인 것으로만 남겨져 있지만, 이
최근 필자가 실무에서 접한 ‘재소금지 원칙’에 관한 흥미로운 대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사건 경위는 이렇다. 의사 A씨가 운영하는 B병원에서 약사가 미리 조제해둔 약을 간호사가 추가 조제한 후 환자에게 투여한 사건이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해당 약제비 상당액이 부당청구됐다며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4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이후 A씨는 복지부를 상대로 업무정지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이를 전부 기각했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 항소심 절차
부산 출장 후 서울역에 도착했다. 4호선을 타면 집으로 오는데, 역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지하철과 연결되는 출구가 있었다. 지방 출장 후 피곤에 지친 직장인, 무릎 관절 통증 등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아껴주고 피곤을 덜어 줌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효과도 크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단축 통로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불편을 해결하려 나온 아이디어이며, 소통이라 생각한다.대학병원 전공의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있었다. 복부 CT 촬영결과 우측 콩팥 동맥이 절단돼 응급수술을
의료법에 따라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엄격히 금지된다. 그렇다면 사망진단 시 의사가 직접 사망한 환자를 대면해야만 할까. 최근 이와 관련된 하급심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말기 암환자들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시행하는 H의원에 의사는 A씨 한명 뿐이었다. 의사 A씨는 휴가 또는 휴일에 환자가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환자 사망원인을 경과기록지에 미리 기재해 놓았다.실제로 의사 A씨 부재 시 환자가 사망하면 간호사들이 이를 확인한 후 A씨에게 전화 등으로 연락했다. 그리고 A씨가 경과기록지에 미리 기재해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