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http://www.docdocdoc.co.kr/upload/news/2001/임재준.jpg임재준(yimjj@dreamwiz.com

Visiting fellow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

National Insitute of Health)

이곳에 도착하기 전 필자 부부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의료보험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에서는 비싼 사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병원을 이용할 확률이 높은 가임기의 여성에게는 매우 호된 보험료를 매기는 경우가 흔하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아내는 그 때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Dr. C의 비서에게 문의해 보았지만 자기는 잘 모른다고만 할 뿐이었다. 우리는 초조했다. 어떤 이들은 아이를 낳으러 미국에 간다고 하던데, 우리는 정반대로 아이 낳을 때 되어서 귀국해야 하는 건 아닐까? 도대체 미국의 보험료는 얼마나 될까? 아내는 매일 나에게 연락 온 것이 없냐고 물었다.

싼 게 비지떡인데…

천만다행으로 NIH에서는 Postdoc.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곳에 도착한 후 의료보험 담당자를 만났더니 그녀는 표를 한 장 내놓고, 대뜸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그 표에는 두 가지 보험이 자세히 비교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Blue Cross/Blue Shield 라는 상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CIGNA HealthCare 라는 것이었다. 자동차 보험 약관보다는 아무래도 필자에게 친숙하기는 했지만 두 가지 보험의 차이를 알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우선 출산과 관계된 항목을 찾아보니 두 가지 모두 산전 진찰은 처음 방문할 때 10불만 내고 다음부터는 보험에서 모두 부담하는 것이었고, 출산할 때 드는 병원비는 100% 보험에서 처리해준다고 써 있었다. 치과 진료는 포함이 안 되는 것도 동일했다. 도대체 차이가 뭐냐고 보험 담당관에게 물었더니 너무 뚱뚱해 조만간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은 그녀는 심드렁하게 다른 표를 보여주며 값이 다르다고 했다(아래 표 참조).

그녀는 만약 CIGNA HealthCare를 선택하면 차액은 필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만약 필자가 가족 단위로 CIGNA HealthCare를 선택하면 한 달에 129불을 더 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싼 보험, 즉석 가외로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선택하려니 출산을 앞두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아내를 설득해 중고차 중에서는 그래도 비싼 차를 산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인데…, 난감했다.

하지만 해답은 괄호 안에 있는 PPO (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의 중간형태),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전형적인 포괄수가제)에 있었다. 바로 그 며칠 전에 필자는 HMO에 가입해 있는 한 젊은 여성이 얼굴에 상처를 입고 성형외과 의사에게 가서 꿰맸다가 HMO로부터 의료비 지급을 거절당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즉 HMO는 반드시 보험에서 지정하는 일차 진료의에게 우선 진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더 비싼 보험이 도리어 의사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일러주니 아내는 펄쩍뛰며 싼 보험에 가입하자고 했다.

Blue Cross/Blue Shield(PPO)CIGNA HealthCare(HMO)Individual$187/month$195/monthFamily$371/month$500/month

의료보험 담당자는 한 달에 267불을 더 내면 치과진료를 위한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 필자는 거절했다. 요즘 필자 부부가 양치질하는 시간은 우리나라에 있을 때 보다 정확히 2배 길어졌다.

한국 의사 아내, 미국 산부인과 가다

이 곳에 온 후에도 물론 아내는 산전 진찰을 받아야 했는데, 우선 어느 의사에게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부터가 막막했다. 의료보험회사에서 준 책자에 정말 많은 의사들의 명단이 빼곡이 나와있었지만 대체 어느 의사가 믿을만한지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모교 교수님의 친구 분 가운데 이 곳에서 개업하고 계시는 내과의사가 계셔서 연락을 드렸더니, 산부인과 의사 한 분을 추천해 주셨다. 그 의사에게 아내가 예약하려고 전화해보니 두 달 뒤에나 가능하다는 것 아닌가. 아내는 필자에게 이렇게 두 달 동안 산전 진찰을 받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다. 필자는 물론 전혀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조금 걱정스러웠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외래를 당길 수 있었을 텐데.

하여간 아내는 두 달 후에 병원엘 다녀왔는데 그 곳은 산부인과 의사 다섯 명이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들은 외래진료소 두 곳을 오가며 외래를 보고 근처에 있는 300∼400병상 규모의 병원 두 군데서 교대로 당직을 서며 아기를 받고 있었다. 외래진료소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이 뭐냐고 묻자 아내는 진료 시간이라며 잘라 말했다. 한 환자를 보는 시간이 대개 30분(!) 정도여서 의사에게 궁금한 건 정말 뭐든지 물어볼 수 있는, 의사는 환자와 남편의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 특징 등을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서로 친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필자의 아내가 아이를 낳은 곳은 300~400병상 정도 되는 병원이었다. 산모들은 분만실로 바로 입원해 그곳에서 아이를 낳게 되는데, 필자는 이곳에서 올스타전에 출전한 박찬호가 홈런을 맞는 광경을 TV로 지켜보았다.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몇 개월 후 다행히도 건강한 아이를 낳았는데 그 다음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필자가 예정일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아직 장모님도 오시기 전에 이역만리 타향에서 젊은 부부가 덜렁 첫 아이를 낳아버린 것이었다. 첫날은 형 친구 내외가 미역국도 끓여다주고, 꽃도 보내주고 해서 외로운 줄 몰랐는데 이틀째부터가 문제였다. 옆 침대의 미국인 부부에게는 연신 친지들, 친구들이 찾아와 축하해주는데 우리에게는 찾아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만 가끔 걸려올 뿐. 다행히 형 친구가 보내준 풍선 달린 꽃바구니가 있어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텼다. 천만다행으로 그 병원은 오후 6시만 지나면 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내보냈다. 물론 병 문안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아내를 병원에 혼자 두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현제명 박사가 유학시절에 지어 불렀다는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로 시작하는 ‘고향생각’이 절로 흘러나왔다. 퇴원 전날에는 옆 침대 산모의 시아버지가 병원에 돈을 얼마간 기부하는 바람에 병원장이 와서 옆 산모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가는 더욱 기죽는 일까지 생겨 그 이후로는 빨리 퇴원하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Surprising! Part I

아이를 낳은 후 첫 출근을 하는데 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누군가 실험실 복도에 있는 칠판에 그려놓은 대형 카드였다. 흐뭇하고 고마웠다. 그래도 축하해주긴 하는구나. 필자의 책상에 짐을 풀고 있는데 같은 방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동료가 잠깐 회의실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회의실에 갔더니 직접 구웠다는 케이크 두 개에 과자, 과일들이 탁자에 차려져 있고 옆방의 동료들까지 모두 모여있었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선물까지 주었는데, 받은 옷가지며, 인형들, 장난감들은 큰 쇼핑백 3개에 겨우 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을 준 사람들 중에는 필자와는 서로 “Nice to meet you”라는 말밖에는 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필자는 감동했다. 이렇게 미국인 동료들이 보여준 작은 나라에서 온 과묵한 외국인에 대한 따뜻한 축하는 지금도 금수강산 어딘가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을, 그래서 ‘때리지 마세요’라는 말부터 먼저 배워야 하는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를 문득 떠올리게 했다.

Surprising! Part II

4일 동안 입원해 있다 퇴원하며 필자가 병원에 지불한 돈은 모두 15불이었다. 그 동안의 TV사용료였다.

나머지는 모두 보험에서 지불해준 것이다. 몇 주일 후 보험회사에서 병원 비 내역을 집으로 보내왔는데 말 그대로 놀라왔다.

4일 동안의 병실료$1,9744일 동안의 입원 처치료$1,705분만료 및 산과적 처치료$2,010경막외 마취료$418신생아 진찰료$122합계$6,229(약840만원)

하지만 한 달에 400∼500불 정도의 보험료를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병원비가 거의 공짜다. 그저 보험회사에서 지급한 진료비 명세서를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험을 가지지 못한, 게다가 Medicaid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14%의 가난한 미국인들이나 수많은 불법체류자들에게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는 것은 또 얼마나 끔찍한 악몽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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