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약으로 바꾸는 의사…서울아산병원 손우찬 비임상개발센터장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바이오의료기기 산업핵심기술사업의 ‘신약 실패율 감소를 위한 사전예측평가 플랫폼 구축 및 서비스’ 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아산병원은 이에 따라 향후 5년간 50억원을 지원받아 신약 개발과정 중 비임상 단계의 개발을 하는 ‘비임상개발센터’ 등의 활동을 할 방침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신약개발 실패율 감소’를 위한 사업의 핵심으로 ‘비임상’이 언급됐다는 점이다.

약은 양면적 성격을 지닌다. 약은 병을 고치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부작용이 동반된다. 부작용은 한편으로 독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 독성을 환자가 감내할 수 있어야 시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약이 개발 단계에서 퇴출되는 대부분의 이유가 이 독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사업은 이러한 독성 관리를 위해 정부와 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그럼, 이 비임상개발센터는 어떤 일을 할까. 병원 측은 신약개발 회사의 연구자들과 함께 직접 독성개발에 참여한다고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독성개발은 뭘까. 비임상개발센터 손우찬 센터장(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비임상시험개발’의 의미가 궁금하다

‘비임상개발’이란 독성시험으로 나온 결과를 해석하고, 독성시험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독성에 대한 접근 여부에 대해 판별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같은 독성이라도, 항암제에서 발생한 것과 당뇨병치료제에서 발생한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적응증에 따라 환자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계를 넘어 독성이라거나, 허용 가능하다는 등의 판단을 내리는 걸 바로 (비임상)‘개발’이라고 한다. 비임상개발센터는 이런 포괄적인 의미의 개발 전략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수의 토종신약이 나온 만큼 국내서도 비임상시험이 활성화돼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우리나라는 ‘비임상개발’에 대한 경험이 적다. 신약을 개발하면서 독성시험은 필수지만, 임상시험 위탁기관 등을 통해 관련 데이터를 받아 보고서를 제출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해당 기관(또는 기업)은 정부가 바라는 양식의 프로토콜에 따라 시험결과만 제공하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독성이 나왔더라도 개발을 계속할지 여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또 동물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가 사람에게도 영향이 미치는지, 종간 차이에 대한 해석도 필요하다.

동물실험에서 나온 독성 결과가 사람에게 영향이 없을 수도 있고, 더 심하게 발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체적인 (신약개발) 전략적인 측면의 판단을 하는게 바로 비임상개발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일단 회사의 규모가 너무 작고, 신약개발의 역사도 짧다. 거대 다국적 제약사의 경우엔 내부적으로 약물의 독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약물 용량 조절을 통한 독성 발현 판단 등을 한다. 이것은 그들 고유의 신약개발 경쟁력이다.

-정책적으로도 독성 문제는 상당히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기도 하다.
규제기관에서 요구하는 독성시험에 대한 결과를 제출하고, 통과했다고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봐서는 안 된다. 비임상을 넘어 1상, 2상, 3상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또 시장에서도 부작용 문제 없이 사용돼야 비로소 신약개발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에 출시된 후 독성 문제가 불거진다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비임상시험개발은 이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신약개발에 대한) 자본이 덜 투입된 상황에 개발 진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센터가 추진하는 사업들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부탁드린다.
약 5년 간 정부 출연금 50억원의 지원을 받아, 독성평가의 계획수립, 시험결과 해석, 전략적인 개발 여부 결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에 임상시험 등 신약개발비용 등의 지원과 달리, 기술개발사업으로 개발된 기술을 산업계에 이전하고 교육도 담당할 계획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기업의 신약 개발에 참여해서 해당 물질에서 발생하는 독성을 다루고, 논리적 시각으로 독성을 이해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비임상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 육성 등이다.

후속 신약이 아닌 최초 계열 신약이 나오기 위해선 주체적 기술 개발 노하우가 필요하다. 특히 독성 관련 기술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돈을 내고 데이터 결과만 얻는 것이 아닌, (독성 관련) 판단과 전략 노하우가 쌓여야 한다. 이를 위한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

-교육 등을 위해선 센터의 인력풀도 중요할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임상개발은 기업 고유의 기술이다. 하지만 각 기업 출신 전문가들이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등에서 활동한 바 있는 독성 관련 전문가들이 연계돼 있다. 이들에게 교육, 자문 등에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또 아산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임상, 기초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 기업에선 자체적으로 기초, 임상 등의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센터는 이런 인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구체적인 목표는.
독성 관련한 문제점을 실제로 몇건 해결했는지, 또 알고르즘을 개발했는지, 교육은 얼마나 했는지 등을 정량적으로 정했다. 이 목표들은 달성이 어렵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전부터 해왔기도 하다.

-신약 개발은 제약기업 입장에선 극비 사항이다. 아무리 공적 자금이 투입된 센터라도 직접 참여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기업 비밀 엄수는 필수다. 이에 자체적으로 대안도 생각해 놓고 있다. 철저하게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코드화 등을 통해 자료의 출처 등 보완을 철저히 할 계획이다.

분명한건 비임상개발, 즉 적극적인 독성 관리가 신약 개발기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신약의 성패는 독성이 좌우한다. 이러한 독성에 대해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건 즉 신약개발에 대한 신속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개발 노하우가 축적되면 기업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전체 제약산업의 발전에도 절대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의 포부는?
외국에는 비임상개발 관련한 특화된 교육기관이 있다. 영국의 서리(Surrey) 대학이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선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임상 관련해 특화된 교육을 하는 곳이 없다. 장기적으로 센터가 서리 대학과 같이 비임상 관련 교육기관으로 발전했으면 싶다.

재차 강조하지만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독성에 대한 판단은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철두철미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임상시험 진행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고, 라이센스 아웃 시 상대 회사를 설득할 수도 있다.

또 규제기관이 독성에 대해 오해를 하지 않게끔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중요한 독성을 잘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비임상개발이다. 많은 이들이 그 중요성을 인지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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