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내정설에 전문가들 발끈…복지부 “분과위에서 논의”만 되풀이

오는 2018년 2월부터 시행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될 예정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는 전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만들어진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모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관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명의료, 연명의료 중단 등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사, 연구하는 것이다.

사실상 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국내 연명의료 관련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함은 물론 기관 관리와 감독까지 맡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연명의료 전문가들은 이런 큰 역할을 특정 기관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내에 연명의료 관련 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정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특정 기관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연명의료관리기관 원내 설치를 희망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은 이런 역할을 하기에 의료기관이 적합하며, 그 중에서도 서울대병원이 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 의료와 밀접한 자료를 만드는 기준은 의료기관에서 전문가들이 해야 하며, 그동안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서울대병원에서 이 사업을 맡아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줄 거면 차리라 우리가 낫다
서울대병원 내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설치하는 것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곳은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국생연)이다. 국생연은 연명의료법 준비를 위한 민관추진단 연명의료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처음 연명의료관리기관 설치 문제가 거론됐을 때, 기관 차원에서 연명의료관리기관 유치를 희망했다.

하지만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실제 분과위에 참석하고 있는 김명희 사무총장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분과위에서 연명의료관리기관을 국생연에 설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명의료관리기관은 특정기관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사무총장은 “연명의료관리기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생연 업무의 일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독립기구로 만들어서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그런데,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서울대병원에 설치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그럴 거면 차라리 국생연에서 하는 것이 낫다. 연명의료관리기관을 놓고 이전투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복지부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연구 프로젝트 하청 주듯이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사무총장이 의료기관 내 연명의료관리기관 설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명의료 특성상 의사는 물론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도 중요한데, 이를 관리하는 기관을 의료기관 내 설치하게 되면 아무래도 한 쪽으로 쏠리는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기관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故 백남기 씨 치료과정에서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가 보여준 모습을 ‘의사들이 연명의료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예로 들기도 했다.

백 교수는 백 씨 치료과정에 문제제기가 있을 때 ‘환자를 살릴 수 있었지만 가족이 원하지 않아 연명치료를 중단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이는 ‘가족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적법하게 작성했어도 의사가 판단하기에 환자의 여명이 충분히 남았고 치료하면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가족의 요구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백 교수가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의료계 내에서 백 교수처럼 연명의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여러 중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의료기관 내 설치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의료기관 설치는 안 돼” 공감대
김 사무총장 외 연명의료법 제정에 역할을 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의료기관 내 연명의료관리기관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연명의료법 제정에 큰 역할을 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박상은 위원장은 “죽음과 관련한 연명의료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새로운 문화다. 사람들이 생소해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사항들은) 초기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될 필요가 있다”며 “효율을 따지기보다는 원칙에 입각해 출발이 투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를 위해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관은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기관인 동시에 등록기관이기도 하다. 여기에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학계 한 인사는 “서울대병원이 원내 설치를 위해 뛰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은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왜 논의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안 되고 있다. 복지부에 물어봐도 검토할 예정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서울대병원 등 의료기관에 설치하는 것은 정부에서 법도 만들도 시행도 하는 꼴이다. 국생연에서 맡아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단체, 의료기관에 들어가면 시민 참여 어려워
분과위에 시민단체를 대표해 참석하고 있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역시 의료기관 내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설치하는 것에 반대한다. 의료기관에 설치될 경우 연명의료관리기관에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안 대표는 “병원은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참여시켜주지 않는다. 연명의료관리기관은 임종기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중요한 일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만큼 외부 신뢰감이 중요한데, 병원은 맞지 않는다. 병원장 산하 기관이 될 뿐”이라며 “연명의료관리기관에는 반드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병원 내부에 설치되면 어렵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예를 들어 중재원과 인증원의 경우 병원 외부에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연명의료관리기관이 서울대병원 등 의료기관 내부에 생긴다고 하면, 기관장이 무슨 권위가 서겠나. 병원장보다 못한 직책이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의료기관 내 연명의료관리기관이 마련될 경우 외부와 소통 단절을 우려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해야 제대로 할 수 있어
여러 전문가들이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 내 연명의료관리기관 설치를 반대하고 있지만 서울대병원 측에서는 반대로 서울대병원이 연명의료관리기관 설치에 적격이라는 입장이다.

연명의료 관련 각종 자료를 모으는 것은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연명의료와 관련한 각종 결정과 임상현장에서 활용할 지침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의료계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단장이면서 민관추진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영호 교수는 “연명의료관리기관이 하는 일은 상당히 현장중심적인 일이다. 장기이식처럼 등록사업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라며 “연명의료 결정 등에 대해서는 임상현장에서 중심을 잡고 지침을 만들고 개발해야 한다. 그런 역량은 현장에서 나온다”라고 강조했다.

연명의료관리기관은 문화를 바꿔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안 된다는 주장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윤 교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연명의료 관련해서 가장 먼저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곳은 병원”이라며 “병원문화를 바꾸려면 당연히 병원에서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윤 교수는 사견을 전제로 ‘서울대병원만은 안 된다’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반대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윤 교수는 “서울대병원이 언제까지 민간병원들과 경쟁해야 하나. 항상 국민들 편에 서서 일하라고 하지 않나. ‘서울대병원이 여러 기관의 힘을 모아서 한번 해봐라’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매번 서울대병원으로서 역할을 하라고만 하지 준 게 뭐 있나. 정부에서 위임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 서울대병원 공공성 강화를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연명의료관리기관 같은 것을 위임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며 “무조건 서울대병원은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급한데 복지부는 느긋
연명의료법 제정과 이를 통한 연명의료 문화 정착에 대해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이처럼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키를 쥐고 있는 복지부는 느긋하다. 복지부의 공식 입장은 연명의료관리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한 적이 없고, 향후 민관추진단 분과위를 통해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황의수 과장은 “연명의료관리기관과 관련해 아직까지 말할 상황이 아니다. 20일경 열리는 분과위에서도 논의되지 않는다.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유치하고 싶어 하는 기관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한 기관이 유력한 것은 아니다. 결정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분과위 참여 인사 다수에게 확인한 결과, 최근 분과위에서는 연명의료관리기관 설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복지부와 서울대병원의 연명의료관리기관 설립 합의 의혹까지 제기됐음에도 복지부 입장은 분과위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은 2018년 2월이지만 그 전에 연명의료관리기관에 대한 틀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결정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분과위원회 등 대다수 전문가들이 원하는대로 독립적인 기구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복지부도 우선 ‘연명의료제도화 정착을 위한 지원사업’에 28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놓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서울대병원 등 특정의료기관들이 연명의료관리기관 유치를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이유로 수십억에 달하는 예산을 가져가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진엽 장관이 서울의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복지부가 서울대병원을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복지부로서는 ‘연명의료관리기관을 특정 기관에 밀어주려 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관련 논의를 분과위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청회를 통해 공론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의료기관에 설치하는 것과 독립기관으로 만드는 것 중 어느 것이 연명의료제도 정착에 도움이 되는지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모절차에 나서는 것이 최선이다.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로 연명의료관리기관을 선정해야만 어렵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연명의료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복지부가 이런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분과위에서 논의될 것’ 이라는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데 있다. 복지부가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어느 쪽이든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연명의료관리기관 설립은 연명의료법 시행을 위한 마지막 단계가 아닌,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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