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TKI 제제부터 4세대까지 약물의 진화…김동욱 교수 "섣부른 약물 중단은 위험"

글리벡의 등장 이후 만성골수성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이하 CML)은 ‘불치’란 꼬리표를 뗐다. 글리벡을 복용한 환자들의 길게는 수십 년까지 생존기간이 대폭 개선됐기 때문이다. CML에 ‘만성질환’, ‘완치’ 등의 수식어까지 붙는 이유다.

그렇다면 CML은 정말 완치되는 병일까? 물론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이란 수술적 방법을 통해 완치에 이르는 길이 있다. 그러나 조혈모세포이식 연령, 공여자, 면역반응, 재발, 삶의 질 등 제한적인 조건으로 인해 이식성공률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오늘날 대다수의 CML 환자 치료는 그 기본이 표적항암제 치료라고 볼 수 있다.

그럼 표적항암제 치료에 따른 완치 가능성은 어떨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현재는 아니다’이다. 아직 어떤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등에서 ‘완치’를 공식화한 바는 없다. 그럼에도 ‘현재’란 단서를 붙인 이유는, CML 완치를 ‘규정’하기 위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성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CML 표적항암제 치료 트렌드에 대해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 세계적 권위자인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의 도움을 받아 정리해 봤다.



1세대 글리벡부터 3세대 TKI 등장
최초의 표적항암제이자 타이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yrosine kinase inhibitor, TKI)인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은 복용 환자의 6년 생존율이 88%에 달할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입증하며, CML 치료에 가히 혁명적이라고 칭할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TKI 제제들이 속속 개발돼 현재는 1세대 약물인 글리벡에 이어 2세대 TKI라고 불리는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보슬립(성분명 보수티닙),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 등이 개발돼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제들이 모든 CML 환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2세대 약제들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부 환자들이 있다. CML 약물치료 시 내성을 일으키는 점 돌연변이(point mutation)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환자는 해당 약물 복용에 대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점 돌연변이로는 250, 253, 255, 315번 등이 있다.

이런 돌연변이 발생에 대한 문제를 해결코자 또다시 개발은 이어졌고, 그 성과물 중 하나가 3세대 TKI제제인 이클루시그(성분명 포나티닙)이다.

지난 2013년 국내외 환자들을 대상으로 포나티닙의 효과를 확인한 2상 연구결과, 복용한 CML 환자 267명 가운데 46%의 혈액 내 암세포 수치가 100배 이상 줄어드는 완전염색체반응을 보였으며, 34%는 발병시점보다 백혈병 세포가 1,000배 이상 감소하는 주요유전자반응을 보였다.

환자의 절반 이상인 56%는 주요염색체반응이 나타났으며 이 반응이 1년 이상 지속할 가능성은 91%였다. 이 연구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지(NEJM)'에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포나티닙은 복용 환자 중 20%에서 혈관수축에 의한 혈전이 발생했고, 동맥혈전 발생률은 11.8% 증가해 처음 진단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 중단이란 굴욕을 겪기도 했다.

이후 1차 치료에 실패한 2차 이상의 치료에만 사용하도록 승인돼 현재는 독일 등에서 시판되고 있다. 최근에는 약제의 용량을 줄여 연구를 재개하고 있으며 국내에선 아직 허가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 달에 1000만원 이상…곡소리 나는 약값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에서 2세대 TKI 제제로도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이 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을까?

김동욱 교수에 따르면, 이 환자들은 현재 한국희귀의약품센터, 독일 등에서 해당 약을 수입해 복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 약의 약값이 ‘억’소리 나게 비싸다는 점이다. 포나티닙을 수입해 복용하기 위한 비용은 월 1,000만원 정도로, 1년으로 계산하면 약값만 1억원이 훌쩍 넘는다.

김동욱 교수는 “국내에서 포나티닙이 필요한 환자들이 많지는 않다. 전체 환자의 1~2%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임상시험 이외에는 다른 치료대안이 없어 이 약을 수입해 복용할 수밖에 없다. 비싸고, 약을 받기까지 (수입 절차로 인해) 2~3주를 기다리기도 한다.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포나티닙 판권을 가진 한국오츠카제약은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추진 중이다. 포나티닙이 허가될 경우 환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약값은 비급여일지라도 절반 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나티닙의 등장으로 CML 치료의 빈틈을 일부 메울 수는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그 이유는 바로 다른 기전에 의한 표적항암제 내성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글리벡부터 타시그나, 슈펙트, 스프라이셀, 포나티닙도 이 새로운 내성 기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지는 못한다.

김동욱 교수는 CML 치료의 남은 여백을 메울 수 있는 약물로 현재 노바티스가 개발 중인 ABL001(물질명)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기존의 TKI 제제와는 전혀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ABL001은 기존의 표적항암제에 내성이 발생한 환자에게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세계 10여개 병원에서 1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며, 김동욱 교수의 서울성모병원 역시 2014년 6월부터 이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백혈병 치료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김동욱 교수는 “315번 돌연변이는 글리벡이나 타시그나, 스프라이셀 등으로 잡을 수 없다. 현재 나온 약 중에는 포나티닙만이 일부 315번 돌연변이 발생 환자에게 효과를 확인했다. 반면 ABL001은 임상시험에서 315번 돌연변이를 포함한 기존의 약제 내성 발생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실제로 임상에 참여한 환자 중 ABL001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본 이들도 있었다. 또 현재까지는 크게 우려할 부작용도 나타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 ABL001과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약제들과의 병용을 통해 모든 내성 발생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절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ABL001을 복용한 후 기존의 표적항암제 등에선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글리벡을 포함한 현재 사용 중인 CML 표적항암제를 복용한 환자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돌연변이”라며 “기존의 표적항암제 등으로는 쉽게 제어됐던 돌연변이를 ABL001은 통제하지 못했다고도 풀이할 수 있지만, 역으로 ABL001과 기존의 표적항암제 등을 병용할 경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돌연변이 대부분을 제어할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임상연구가 조금 더 진행돼 봐야겠지만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라고 말했다.

ABL001이 현재 1상 임상시험 단계인 만큼 기대대로 출시에 이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CML 약물치료의 변화를 불러올 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신약이 그러하듯, 비싼 가격은 임상에서 적용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CML 환자, ‘약’ 끊어도 될까?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그럼 꼭 신약이 등장해야 CML의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느냐다. 현재 많은 CML 환자들이 1, 2세대 TKI 약제들로도 병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오랫동안 기존 약제를 복용해 온 환자들 중 약을 끊음으로써 사실상 완치에 이르렀다는 연구들도 있다.

이에 현재 CML 치료에서 신약 개발과 함께, 기존 약을 끊고도 병이 재발하지 않느냐와 언제 어떤 환자에게 약을 끊을 것인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김동욱 교수도 정부의 암정복 사업 일환으로 글리벡을 복용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연구를 진행해 최근까지 3차례에 걸쳐 그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2013년 처음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연구는 3년 이상 글리벡 치료를 받았고, 혈액을 이용한 초정밀 백혈병 유전자 검사를 통해 2년 이상 백혈병 세포가 발견되지 않은 완전유전자반응 환자 48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48명의 환자 중 39명은 암 유전자가 증가하지 않았고, 18개월 이상 경과한 후에도 백혈병이 재발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 과제의 후속연구를 진행해 최근까지 2차례 더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또 타시그나 등과 같은 2세대 TKI 제제를 복용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물 중단에 대해 알아보는 연구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러한 연구만으로 CML 환자들이나 의사들이 섣불리 약물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김 교수는 “환자 마음대로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경우 내성 발생 등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약물 복용 중단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환자에게 초정밀도의 디지털 PCR 검사 등을 하는데, 그 이유는 정밀한 검사를 통해야 미세한 유전자까지도 증가 유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으로 병이 잘 조절되는 환자에게 섣불리 약을 중단할 경우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에선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약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불상사가 발생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학계에서 CML 환자 중 약물 복용을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자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가이드라인이 생긴 후 일상적인 임상치료 현장에서 약물 복용 중단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현재 연구를 통해 글리벡의 경우 5년 이상 복용한 후 약을 끊었을 때 재발률이 15% 가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시점을 기준으로 검사 등을 통해 약물 복용 중단 여부를 결정하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내다봤다. 또 2세대 TKI 제제는 보다 효과가 강력한 만큼 좀 더 이른 시점에서 약물 중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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