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이라는 말 없었다'는 측과 ‘응급이니까 전원 요’ 했다는 병원들

전북대병원, 외상외과 전문의 있었지만 A군 전원 결정…발목에 우선순위

지난달 30일, 교통사고를 당한 2살 A군이 전북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국내 응급의료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응급의료시스템’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전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을지대병원 등은 가시방석에 앉았다. 모두 ‘권역’이 붙은 응급의료센터나 외상센터로 지정된 의료기관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 후 복지부 현장조사에서 나온 이들 기관의 반응은 이들이 응급의료시스템의 중추를 맡고 있는 기관이 맞는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응급이라는 말은 있었을까, 없었을까

복지부는 지난 7일 이번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전남대병원 현장조사를 나갔다. 현장조사에 나간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점검 조사표에 작성한 전원 미수용 사유 의견에 전남대병원이 전원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외상환자 수용 의료인력의 부재라기보다는 환자 상태를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정보를 제공받았고 이를 근거로 전문인력 부족(미세접합 수술 및 소아정형외과 전문의 부재)에 따른 판단을 의뢰병원에 위임한 것으로 보임”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최초 전북대병원에서 골반골 골절과 발목골절 환아에 대한 중증도 파악이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병원에 도착하는 중증외상환자 중 일부는 초기에 중증도를 실제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남대병원이 전북대병원으로부터 환자 상태에 대한 부족한 정보를 제공받았기 때문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회신을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을지대병원에서도 나오고 있다. 을지대병원은 ‘소아 외상환자 전원 관련 상황’이라는 자료를 통해 ‘골반골절 및 발목골절상 입은 2세 남아로 발목골절에 대한 정형외과적 응급수술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가 옴. 그 외 환자의 중증도 및 다른 전신상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북대병원은 ‘권역외상센터에 연락할 정도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응급환자란 뜻’이라는 입장이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응급이 아닌 환자는 전원하지 않는다. (전원을 요청받은 병원들에서) 응급하다는 소리를 못들었다는 말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른 병원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급하니까 전원하는 것이지 우리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할 생각이 있으면 한다. 치료할 상황이 안 되니까 전원을 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대병원은 왜 A군 전원을 결정했나

그렇다면 A군이 이송됐을 때 전북대병원의 상황은 어땠을까. 사건 당시 전북대병원 상황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지만, 전북대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전문의가 없고 전공의만 근무 중이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전공의가 환자를 받은 것은 맞지만 비상진료체계 시스템상 전공의가 환자를 받은 후 전문의에게 콜을 하는 것이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A군이 이송됐을 당시에도 전공의의 콜을 받고 즉시 정형외과 전문의가 와서 상태가 더 위급하다고 판단한 할머니를 수술했다는 것이 전북대병원의 주장이다. 또한 병원 측은 정형외과 전문의 외 외상외과 전문의도 현장에 있었다고 밝혔다.

전북대병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북대병원 외상팀에는 한 명의 중증외상 전문의가 있으며, 다발성외상이 전문진료분야로 명시돼 있다.

의료진 정보를 살펴보면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오후 모두 응급의료센터 근무로 표시되기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9월 30일(금요일)에도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A군과 할머니가 9월 30일 전북대병원에 이송됐을 때 처음 이들을 받은 건 정형외과 전공의가 맞지만 이후 콜 시스템에 따라 정형외과와 외상외과 전문의가 환자를 살폈고, 두 전문의가 상의해 할머니를 전북대병원에서 수술(정형외과 전문의가 시행)하고 A군은 전북대병원 외상외과 전문의가 수술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전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복부가 아닌 발목에 집중한 이유

이번 사건의 핵심은 전북대병원이 A군을 수술할 수 없다고 판단, 미세접합수술 및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곳으로 전원을 꾀했지만 지체되면서 A군이 사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A군이 전북대병원에 이송될 당시 전북대병원 응급의료센터 내 외상외과 전문의가 있었다는 것은 한 가지 의문을 낳는다.

아무리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환자상태가 심각했다면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해야 했고, 그랬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더해 전북대병원에서 골반과 발목에 손상을 입은 A군의 상태를 파악한 후 골반보다 발목에 중점을 두고 전원을 알아봤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발목이 아닌 골반치료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굳이 전원을 할 필요도 없었고 전북대병원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북대병원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A군은 전북대병원에 이송됐을 때 의식도 있고 바이탈도 안정적이었다. 다시 말하면 처치가 빨랐다면 살았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전북대병원에서는 사망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A군 이송 후 CT 촬영을 했고 골반골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골반 쪽에 대한 응급조치를 했다. 초기에는 A군에게 대량 출혈 가능성은 없었으며, CT상으로도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며 “바이탈도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상태를 유지하며 처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상외과 전문의가 A군에 대한 응급처치를 했다. 다리 골절도 보이고 골반 상태도 알았기 때문에 응급처치는 계속했다. (아이를 전원시키기 전) 심정지도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의학적 조치는 모두 했다. 수술만 안했을 뿐 외상외과 전문의가 해야 하는 것은 모두 했다”고 주장했다.

외상외과 전문의가 있었음에도 타 병원 전원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외상외과 전문의라고 하더라도 세부전공이 있다. (A군의 경우) 미세접합 등이 가능한 세부전문의가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의 생각

하지만 A군의 전원을 받아 마지막으로 치료한 아주대병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관계자는 “발 손상이 심했고 골반 손상도 심한 것은 맞는데, 전북대병원에서는 발이 급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보다는 복부에 포커스를 맞췄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골반에 초점을 맞췄어야 한 이유에 대해서는 “오픈북 형태라고 해서 골반이 펼쳐진 상태였고 상당히 심각한 출혈이나 내부 장기 손상도 생각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북대병원에서는) CT 상으로는 괜찮았다고 이야기했는데, 2살짜리 아이가 견인차에 깔렸으면 분명히 안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골반이 더 심하지 않겠나 판단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북대병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골반골절은 오픈북이라고 이야기했고 발이랑 골반이 있는데 발의 피부색도 변하고 해서 발을 이어주는 수술을 좀 빨리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발을 희생하더라도 중심장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중앙전원조정 확대가 답인가

전북대병원이 13개 병원에 전원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전북대병원은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연락했고 전원조정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아주대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전원조정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해 전원조정업무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전원조정업무를 한 기관에서 전담하면 일선 의료기관들은 전화 한 통 한 후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은 “전원조정시스템도 결국 핫라인을 통해 전화하는 방법이다. 많게는 한 환자와 관련해 전화를 30통 이상 해야 한다. 한 번에 요청이 3곳 정도에서 오면 혼란이 온다”면서, 현실적으로 당장 전원조정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센터장은 “만약 시스템을 한 곳으로 집중할 경우 우리에게 전원 요청을 한 후 해당 병원은 전원할 병원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안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환자 전원이 더 늦어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전원조정업무를 하는 상황요원(간호사, 응급구조사 등)은 10명이다. 이들이 24시간 교대로 투입되기 때문에 실제 상황실 근무는 상황요원 2명이 한다. 전원조정업무를 당장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인력도 크게 늘려야 하지만 늘어나는 인력에 대한 교육도 진행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의미다.

징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이 터진 후 관련 기관을 현지조사하고 해명을 들었다. 이후 학계 전문가 등을 모아 관련 회의를 열고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찾고 있다. 결과 발표와 해당 병원들에 대한 징계 여부는 오는 20일 열리는 중앙응급의료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전원을 요청한 곳과 전원을 거부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사실 위주로 조사를 진행했고, 그에 따라 회의를 했다”며 “결정은 20일 열리는 중앙응급의료위원회에서 결정해 발표한다”고 말했다.

현재 관계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정 취소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정 취소 후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도 있어 취소 여부는 미지수다.

지정 취소에 몰린 전남대병원과 을지대병원은 물론, 의료계 내에서도 지정 취소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 허탁 소장은 “전남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받고 운영하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막 지났다. 아직 완전한 체계를 갖췄다고 할 수 없다”며 “완전한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지정을 취소해버린다면 이 지역 외상체계는 예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을지대병원 관계자 역시 “당시 2세 남아의 발목골절 응급수술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지만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실도 없었다”며 “권역외상센터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지정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하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수술을 할 의사도, 수술실도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했다.

A군의 전원을 받아준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전남대나 을지대는 일정 이상의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정 취소를 한다면)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정 취소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 사건 전에도 전원을 받지 않는 사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환자를 받지 않고 ‘튕기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지정 취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징계 여부 떠나 시스템 개편 필요

지정 취소가 걸린 의료기관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응급환자 진료를 제대로 하지 못한 ‘권역’ 센터들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징계 후 응급의료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하느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시스템 미비를 지적할 수 있다. A군의 전원이 늦어지고 결국 사망까지 이어진 이유는 권역외상센터에 소아 미세접합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색이 권역외상센터인 이들 기관에 왜 소아 미세접합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었을까.

당연하게도 권역외상센터 선정기준에 소아 미세접합수술 전문의를 고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기관 내 소아외상센터가 없을 경우 성인외상센터에서 소아외상 환자를 함께 진료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또한 소아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외과의사가 외상센터 내 상주하는 것이 소아외상환자의 치명률을 낮춘다는 것이 이미 오래 전 연구에서 입증(Pediatric Trauma Center Criteria: An Outcomes Analysis, Edward J. Doolin, Journal of Pediatric Surgery, 1999)됐다.

해외 사례도 있고 의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에서 소홀히 했던 부분에서 결국 사고가 터진 것이다.

물론 전국에서 활동 중인 소아외과 전문의가 50여 명뿐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지만 이 정도면 전국 권역외상외과에서 한두 명 정도 고용할 수 있는 인력은 된다는 점에서 소아외상문제를 소홀히 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못 된다.

이밖에도 지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숨겨진 구멍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복지부가 지금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그런 구멍이 어디에 더 있을지 찾는 것이다.

만약 복지부가 A군 사망사건 후속조치를 해당 병원 징계 등으로 가볍게 넘긴다면 제 2, 제3의 A군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어린 A군이 전원할 곳을 찾지 못해 사망한 것은 큰 일이다. 하지만 응급환자가 전원하는 경우는 특이한 경우도 아니고 매일 밤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응급의료센터나 외상센터 의료진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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