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의 시장조사로 본 세상

임상시험을 임상실험이라고 보고서에 표기했다가 제약업계 관계자에게 호된 지적을 받았던 웃지 못할 기억이 있다. 사실 시험과 실험의 어감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실험하면 731 부대 마루타가 떠오르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인데 신약개발을 위해 제약회사에서 실시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아르바이트를 이른바 '마루타 알바'라고 부른다고 하니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든다.


최근 모 제약회사의 치료제 임상시험 부작용 이슈 관련해서 연이어 다루어지는 기사들을 살펴보자. 임상시험 피해 사례, 관련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 관련 제약회사의 주가 하락 소식, 임상시험 관리에 대한 지적, 신약개발이 위축될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귀하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기사는 무엇이신지? 주식 투자를 하시는 분은 주가 하락 소식에 관심이 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 일로 신약개발이 위축될까 하는 우려를 담은 기사에 가장 관심이 갔고 무척 반가웠다.

그 이유는 필자가 올해 만났던 3, 4기 암환자들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혹시 필자가 남들보다 먼저 알고 있는 임상시험이 있는지, 신약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문의를 해 와서 안타깝게 했던 암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떠올라서이다.

최근 3, 4기 암환자 185명을 대상으로 한 정량 조사에서 ‘임상시험 참여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환자는 9.2%였고, 185명 중 22%가 ‘임상시험관련 정보를 직접 찾아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임상 시험 관련 정보를 찾아 본 이유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언급된 것은 ‘치료제를 무상으로 공급받을 기회를 찾기 위해’였다.

암환자 심층면접 인터뷰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암환자들의 임상시험에 관한 인식인데 ‘시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불안함을 느껴 참여를 망설이는’ 과거의 양상과는 달리 임상시험을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임상시험은 경제적으로 고가의 비급여 신약을 부담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 기회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제 이슈가 발생했으니 관련한 규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예상되는 수순인 거 같다. 하지만 규제로 인해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는 그룹이 생겨서는 안 된다.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항상 옳지만 접근을 봉쇄하는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 마루타 알바라고 불리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간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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