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예방의학(역학)은 인과관계를 다룬다.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한다. 이러한 인과관계는 통상 사실적(자연적) 인과관계라고 한다. 이와 달리 법적 책임 문제에 있어서는 규범적 인과관계가 문제된다. 규범적 인과관계는 사실적 인과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실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해서 곧바로 규범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의사의 개복수술 후에 사망하였다. 이 때 의사의 개복수술과 환자의 사망 사이에는 사실적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규범적 인과관계를 인정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 전제조건 없이 “환자가 의사폭력(상해)의 희생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고 백남기씨 사망사건에서 관련 경찰들은 살인미수죄로 고발됐다. 이 사건과 의사의 의료사고를 비교하면서 규범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요소를 생각해 본다.

우선 대상자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성형수술을 받는 건강한 20대의 의료사고와 위암 말기인 70대의 의료사고는 법적 의미가 다르다. 20대의 건강한 사람이 성형수술처럼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행위를 받다가 사망한 경우 법원은 의사에게 더 엄격한 책임을 묻는다.

고 백남기씨 사망사건에서 백남기씨가 폭력시위와 상관없이 길을 가던 시민인지 아니면 폭력시위에 가담한 사람인지의 여부는 그 법적 의미가 다르다. 집단으로 버스에 줄을 걸어 전복시키려는 행동은 위험한 행동이며 공동으로 폭행을 행사한 것이다. 폭력시위에 대한 국가의 물리적 대응은 원칙적으로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다. 그러나 뒤에 상술하듯이 비례의 원칙을 벗어난 물리적 대응은 국가폭력이라는 규범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둘째, 행위자의 행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의료사고에서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과실이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의사의 과실이란 진료상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다. 통상의 의사들이 시행하는 표준적 진료행위에서 벗어난 의료행위를 한 경우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규범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고 백남기씨 사망사건에서는 경찰의 살수차 운용이 비례의 원칙을 준수했는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필요하다. 살수차의 수압이 일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비례의 원칙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폭력시위에 대하여는 물리적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살수차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수단(예, 경찰봉)의 위험성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또한 살수차 운용규정은 적정했는지, 그 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행위자의 행위와 사망(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의사의 과실이 존재해도 그것과 환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고 백남기씨 사망사건에서는 살수행위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수압이 높은 물에 맞아 바로 골절과 뇌경막하출혈이 발생했는지, 넘어지다 발생했는지, 다른 사람과의 충격으로 발생했는지에 따라 살인죄의 상당인과관계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인지 예외적인 사건인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폭력시위자라 해서 국가가 비례의 원칙을 벗어나 그 생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발생한 결과만으로 관련 경찰을 살인자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건 발생한 결과만으로 의사를 살인자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에나 사실적 인과관계를 넘어서 규범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 요건의 확인 없이 고 백남기씨를 국가폭력의 희생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개복수술 후 환자가 사망했다는 결과만으로 환자가 의사폭력의 희생자라고 단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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