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개설병원 환수 부당’ 판결 이끈 세승 김주성 변호사, 당연지정제 모순 강조

어떤 부분 주목했나 봤더니 … '이중개설병원≠사무장병원' 논리에 초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중개설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급여비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명 ‘이중개설금지법’(反유디치과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제33조 8항을 위반한 혐의로 적발돼 75억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을 받은 T병원 안산점이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이같은 판결을 이끌어 낸 데에는 2심부터 원고보조참가인(전 T병원 실소유주) 측 대리인 자격으로 참여한 법무법인 세승의 역할이 컸다. 세승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이중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환수가 적법한지, 이중개설 의료기관의 요양기관 자격 등에 대한 법적 모순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공단 측은 T병원 안산점을 실질적으로 개설한 박모씨가 소송에 원고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승 김주성 변호사는 사무장병원과 이중개설 의료기관인 네크워크병원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도표까지 작성했다. 또 이중개설 의료기관은 요양기관이 아니라는 공단 측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의료기관 환자 진료 및 요양급여 청구 흐름도를 작성해 제출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모처에서 김 변호사를 만나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2심 재판부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전반에 대해 깊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의료법 4조 2항(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이나 33조 8항(의료인은 어떤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을 위반했는지 여부만 따졌다. 이중개설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만큼 위법성을 가졌는지 부분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2심에서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서 의료법 33조 8항 위반이 요양급여비 환수 대상이 되는지를 따져보는 기회가 됐다.

- 세승은 2심부터 원고보조참가인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했다. 어떤 부분에 주목했나.

해당 병원이 의료법 개정 전에는 적법하게 개설된 의료기관인 만큼 공정력(公定力)을 가진다고 봤고, 재판 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의료법 33조 2항을 위반한 사무장병원은 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개설 자체가 무효이므로 행정기관의 개설 허가가 공정력을 갖지 않지만 T병원 안산점은 의료법이 개정되기 전인 2008년 1월 개설허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이므로 그 개설허가가 공정력을 갖는다. 따라서 건강보험법상 적법한 요양기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 지급 보류 및 환수 대상에 의료법 33조 8항을 위반한 경우(이중개설 의료기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부분도 강조했다. 이중개설 의료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요양기준에 따라 정당한 진료를 했는데 75억원이나 환수한다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생각을 갖고 접근했다.

- 이중개설 의료기관은 요양기관이 아니라는 공단 측 주장이 왜 부당하다고 생각했나.

의료기관 개설은 의료법에, 요양기관 지정은 건강보험법에 나온다. 건강보험법에서는 의료법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으로 명시했다. 법률에 따라 이 두 개를 일치시킨 게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다. 그런데 공단은 의료기관 개설 단계에서는 건강보험 진료를 해야 하는 요양기관으로 포함시켜 놓고 요양급여비 청구 단계에서 요양기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공단 주장대로 이중개설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이 아니라면 건강보험 진료를 거부하고 건강보험제도에서 벗어난 의료를 해도 된다는 모순에 빠진다. 그런 부분을 지적했다.

- 그렇다면 이번 판결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의료인에 의해 개설되고 요양급여 기준에 따라서 한 정당한 의료행위에 대한 대가를 청구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는 점을 법원이 확인해줬다. 공단은 요양급여 기준에 따라 정당한 진료를 했는데도 요양급여비를 환수 처분한 것이다. 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한 요양급여비는 환자를 진료한 대가이지 공단이 은혜를 베푸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내용의 판결은 없었다.

사무장병원과 네트워크병원을 구분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사무장병원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뤄진 의료행위가 다 무효라고 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병원은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인데 사무장병원과 똑같이 모든 게 위법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더욱이 의료법 4조 2항(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

- 이중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 지급 정지 및 환수 조치 자체가 부당하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의료기관 중에는 건강보험 진료를 주로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성형외과처럼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하는 곳이 있다. 건강보험 환자들을 주로 보는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곳은 이중개설금지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순간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입 대부분이 요양급여비에서 나오는데 이를 지불하지 않거나 환수하면 3개월 안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S요양병원과 L재활병원도 그랬다. 반면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하는 병원들은 큰 타격이 없다.

건강보험 재정 누적 흑자가 20조원이라고 한다. 국민들의 의료비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해서 20조원이 누적돼 있는 건인지, 아니면 의료공급자들을 쥐어짜서인지 따져봐야 한다. 또한 공단의 요양급여비 지급 정지 및 환수 조치는 국민들의 요양기관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 국민의 요양기관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공단은 이중개설 의료기관은 요양기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중개설로 적발된 의료기관이라고 하더라도 개설 취소를 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공단의 논리대로라면 이중개설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면 안 된다. 만약 건강보험 환자가 오면 요양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진료를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공단의 논리대로면 진료를 해도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환자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돌려보내면 진료 거부가 되는 모순에 빠진다.

따라서 이번 법원 판결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충실한 판결로, 국민들의 요양기관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이중개설을 금지한 의료법 33조 8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이 청구돼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이다.

의료법 33조 8항은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에는 의료인은 1개 의료기관만 개설하도록 했었다. 대법원은 의료인이 한 개 이상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보면 그 진료가 부실해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운영 부분은 허용했던 것이다. 네트워크병원이 건강보험제도를 교란시킨다는 오해가 있는데 교란시킨다는 증거도 없고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없다.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는 식의 규제는 문제가 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