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부산대병원 등에 환자·보호자 대상 안내문 붙어

제약사 등 기업들도 "약속은 다음에…일단 조심"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첫날인 28일, 보건의료 분야 전반에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시행 초기 “몰랐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집안 단속을 철저히 하는 한편, 오해를 사지 않도록 만남 자체를 피하는 모습이다.

안내문 설치하고 교육도 철저히

‘성원과 격려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부산대병원 수납창구 앞에 걸린 안내문이다. 서울대병원에도 ‘환자나 환자가족으로부터 제공되는 감사 선물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이 곳곳에 붙었다.

부정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국공립병원과 사립대병원들은 법 시행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했으며 향후 교육 일정도 미리 잡아 놓고 있다.

법 시행 전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부정청탁금지법 교육을 실시했던 충남대병원은 오는 10월 7일 한 차례 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충남대병원 김봉옥 병원장은 “법 시행초기 여러 가지 혼선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동안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부정청탁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전 직원이 모두 숙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모든 직원들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권고한 내용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숙지해 위반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미 그동안 관련 교육들을 실시했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부정청탁금지법과 관련해 전체 교육을 한 상태고 각 부서별로 실무에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은 책자 형태로 제작 중”이라며 “정기적으로 교육을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직원들이 부정청탁금지법 준수 다짐 서약을 한 병원들도 있다.

부산대병원은 지난 27일 ‘부정청탁금지법 준수 다짐 서약식’을 갖고 모든 직원들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서약서’에 서명했다.

부산대병원은 지난 2일부터 4차례에 걸쳐 직종별로 부정청탁금지법 교육을 실시한 바 있으며 내부 인트라넷에 교육자료, 해설집, Q&A사례집도 올렸다. 병원 자문변호사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도 운영하고 있다.

제약업계 약속은 다음에

언론을 상대하는 제약사 홍보팀들은 특히 몸을 사리고 있다.

28일 이후 저녁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는 곳이 태반이다. 점심자리와 달리 저녁자리는 술을 마실 경우 식사 3만원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는 문제될 여지는 만들지 말자는 분위기다.

국내 중견 A제약사 홍보팀 관계자는 "28일 이후로 저녁 약속이 텅텅 비었다. 식사 금액에 맞춰 먹으면 된다지만 혹시 문제가 될지도 몰라서 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국내 상위 제약사 홍보팀 관계자 역시 "점심약속은 상관없다. 다만 시행 초기라 조심하는 편이다. 특히 란파라치들이 각 기업 홍보팀 명단까지 입수했다고 하는 소문도 있어 가능한 여지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립대병원 교수 등을 만나야 하는 영업마케팅 관계자들도 조심하자는 분위기다.

B다국적제약사 한 마케팅 담당자는 “김영란법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다보니 솔직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상황”이라며 “식사는 미팅의 기본인데, 식사조차 해도 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일부에서는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가급적 식사자리도 잡지 말자는 것 같지만, 식사 정도는 높지 않은 가격 선에서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홍보나 마케팅 활동에 있어 너무 큰 제약이 생기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C다국적제약사 마케팅 관계자는 “눈치가 보이고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보니 현재로서는 가급적 식사 미팅은 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김영란법에서 언급되고 있는 ‘직무관련성’이 어느 범위까지 적용되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수시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책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라고 토로했다.

D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변호사를 초청해 김영란법 관련 사내교육을 실시했다"며 "의료기기 쪽은 공정경쟁규약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와있고 해석도 많이 내려진 상태여서 공정경쟁규약 틀 안에서 신고의무 등에 충실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강연료 제한이 생기고 제품설명회가 향응이 되지 않도록 모양새를 잘 갖추는 것 등이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그간 회사의 규율과 공정경쟁규약을 감안하면 원칙을 되새기는 정도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관단체들도 우리도 조심

한국제약협회나 대한약사회 등 정부부처와 업무 밀접도가 높은 곳 역시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는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비롯해 각종 민관협의체에 위원으로 속해있는 임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제약협회 고위관계자는 "건정심 위원은 물론이고 식약처로부터 위탁받은 광고심의업무를 맡은 협회 직원 등 공직자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이들이 많아 협회도 전반적으로 김영란법을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한약사회 대외협력팀 역시 "각종 위원으로 포함된 임원들이 많아 김영란법을 준수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이 따로 전달된 것은 없지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영란법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되기 때문에 특정 단체나 기업만이 특별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김영란법과 관련해 이미 여러 차례 내부 교육을 실시하고 관련 매뉴얼을 만드는 등 준비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김영란법에 대처할 수 있는 내부 매뉴얼이 마무리 상태다. 국정감사 등으로 바쁜 상황에서도 계속 준비를 해왔다”라며 “오늘 시행됐지만 관련 교육 등 준비를 오래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체감 상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광석/이혜선/곽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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