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보건복지부 정진엽 장관은 지난해 9월 진행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개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에 대해 기대감을 보였던 의료계는 이 발언 하나로 발칵 뒤집혔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1년여 뒤인 지난 26일 진행된 복지부 국감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정 장관은 이번에도 의료계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바로 원격의료다. 정 정관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이 원격의료냐고 묻자 “큰 범위에서 보면 원격의료”라고 답했다. 물론 “전화상담을 통해 처방을 하는 것은 아니고 모니터링을 위한 것이므로 원격의료라기 보다는 원격상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부언했지만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무엇보다 정 장관의 발언으로 의협이 난처해졌다. 의협은 시범사업을 둘러싼 원격의료 논란 때문에 2개월을 고심한 끝에 참여 결정을 했다. 그러면서 추무진 회장이 직접 나서서 “회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대면진료 원칙 훼손인데 시범사업에서 원격의료를 배제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로부터 시범사업과 원격의료는 상관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도 했다. 의협의 참여 결정에 대해 복지부는 “의약분업 이후 사실상 최초의 복지부-의협 간 공동사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이처럼 훈풍이 부는 듯했던 의정 관계에 복지부 수장이 직접 나서서 찬물을 끼얹었다. 의협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하자 일각에서는 “원격의료에 지나지 않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전화상담이라는 거짓으로 회원들을 기만하고 있다”며 추 회장에 대한 불신임까지 추진했다. 그런데 정 장관이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 됐다. 의협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낄만하다.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은 원격의료와 상관없다고 했다가 큰 범위에서는 원격의료라고 뒤집는 일이 생기니 정부를 믿지 못해 ‘공문으로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흔히 의정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라고 한다. 신뢰를 쌓기는 힘들지만 무너지기는 쉽다.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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