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대학병원에도 결핵검사 위한 채담실 없어

의료기관 내 결핵의심자 관리 시스템 엉망…보이지 않는 보균자 관리해야

2주 넘게 기침이 계속된 A씨.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 근처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외래를 찾았다. 늘 그렇듯 외래환자는 북적였고 A씨는 기침을 하며 진료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 기침을 참아도 보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렇게 만난 의사는 결핵이 의심된다며 가래를 뱉어오라고 한다. 적당한 곳을 찾지만 여의치 않아 화장실에서 가래를 뱉었다. 의사는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틀 정도 걸린다며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닐 것을 주문한다.
이틀 후, 결핵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약만 잘 먹으면 6개월이면 완치된다고 말한다. 집에 있는 가족이 걱정이다. 왜 내가 결핵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마스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 상황은 호흡기내과 외래에 결핵의심자가 내원했을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상황 안에 의심자가 의료기관 내에서 결핵균을 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호흡기내과 의사들이 의료기관 종사자 결핵 발생을 문제삼는 시각이 불편한 것은 의료기관 내 결핵 감염은 종사자가 아닌 결핵 진단을 위해 내원하는 환자를 통하는 경우가 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며, 전문가 입장에서 이를 방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실천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는 ‘국가결핵관리지침’에 따르면 2014년도 결핵 신환자는 3만4,869명이다. 이는 최근 10년새 최저치이긴 하지만 여전히 한해 3만명이 넘는 결핵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결핵을 진단 받는다. 그들이 만나는 병원 내 환자가 얼마나 될지는 파악조차 안 된다.

결핵의심자, 가래는 어디서 뱉지?
결핵치료를 하는 호흡기내과 의사들은 결핵의심자가 가장 위험할 때는 결핵 확진을 받은 후가 아니라 의심자 단계라고 말한다. 확진 후 치료가 시작되면 감염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확진 전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할 때는 말 그대로 ‘결핵균을 뿌리고 다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의료기관 내 ‘채담실’의 부재다.

국가결핵관리지침에는 ‘결핵 확진을 위해서는 결핵균 검사(도말검사, 배양검사, 핵산증폭검사)에서 결핵균이 검출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결핵균 검사를 위해서는 ‘폐결핵이 의심되는 환자에서 객담을 최소한 2회(가능한 3회) 채취해 항산균 도말 및 배양검사를 시행한다’고 돼 있다.

중요한 것은 결핵의심자가 객담을 채취하기 위해 가래를 뱉는 행위를 하는 공간을 명시한 것인데 ‘채담은 외부와 환기 및 통풍이 잘되고 채광이 좋은 채담실에서 실시’라고 언급돼 있으며, 채담실이 이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결핵균이 함유된 대량의 비말핵이 나올 수 있으므로 치료 안 한 상태로 실내에서 채담을 한다면 타인에게 결핵균 감염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돼 있다.

즉 병원을 찾은 결핵의심자가 결핵균을 뿌리지 않고 결핵검사를 위해 가래를 뱉기 위한 별도의 채담실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인데, 국내 의료기관 대부분은 이런 채담실이 없다. 결핵의심자들을 화장실이나 병원 외부에서 가래를 뱉는 채담행위를 하는 실정이다.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핵의심자가 가래를 뱉는 행위 자체가 분비물을 분사하는 행위다. 중동호흡기사태를 생각해보라. 메르스 의심자가 병원 내 화장실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가래를 뱉으면 어떻게 됐겠나. 결핵도 메르스 만큼 위험한 감염병인데 왜 결핵의심자가 화장실 등에서 가래를 뱉는 것에는 무감각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채담실 설치 현황, 파악도 안돼
결핵의심자가 채담실이 아닌 화장실이나 외부에서 가래를 뱉는 이유는 채담실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빅5로 불리는 국내 대형병원도 대부분 채담실은 없다. 메르스로 큰 곤욕을 치른 삼성서울병원도 없다. 서울대병원만이 객담실이 있는데, 그것도 최근에 만든 것이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국가결핵관리지침에 채담실을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돈’과 연관이 있다. 채담실은 단순히 공간만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압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메르스를 통해 알려졌다시피 이게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채담실 특성상 환자의 이동이 쉽게 외래 공간 주변에 배치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외래공간을 비우고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도 경영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교수는 “건물이 수십층이라도 채담실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은 1~2층이어야 하는데, 이런 곳에 계속 음압이 걸리고 환기가 잘되는 공간을 찾아 채담실을 만드는 것이 경영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계속 건의를 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보건당국은 전국 의료기관에 채담실이 얼마나 설치돼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한 관계자는 “의료기관 내에서 결핵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의료기관결핵관리안내 지침은 있지만 실제 채담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한 현황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의료기관 내 결핵관리를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해도 해도 끝없는 결핵관리
전문가들이 채담실을 대표적인 의료기관 내 결핵관리 구멍으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결핵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우선 호흡기내과 외래진료실 만이라도 음압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결핵의심자가 진료를 받은 후 바로 다음 진료를 받으러 진료실로 들어오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관지내시경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수면내시경을 한다고 해도 기관지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기침 등 분비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내시경은 소독하면 그만이지만 결핵의심자 뒤에 검사를 받는 환자는 그 분비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기관지내시경실 공조규정 등이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도 의료기관 나름대로 환기 등을 한다고 하지만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입원이 필요한 결핵환자 관리도 문제다. 원칙적으로 결핵환자의 경우 감염병 환자이기 때문에 음압이 걸린 1인실에 입원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음압이 안 된다면 적어도 1인실에 입원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병원은 결핵환자를 일반 병실에 입원시키고 있다. 이 경우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 중 한 명이 다제내성일 때가 문제다.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메르스를 겪은 후 병원 내에도 음압병동이 생겨서 이곳으로 결핵환자를 입원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 병원에서는 일반병실에 결핵환자만 따로 입원시키고 있다”며 “문제는 이렇게 하면 일반환자는 안전해지지만 결핵환자 사이에 감염이 문제다. 여러 환자 중 한 명이 다제내성환자라면 그 균이 다른 결핵환자에게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스크 안 하는 환자도 문제
결핵관리에 대한 책임을 무작정 의료기관으로 돌릴 수도 없다. 자신이 결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의 인식도 문제다. 특히 1차 의료기관을 거치면서 의사로부터 ‘결핵일지도 모르니 큰 병원에 가봐라’라는 말을 듣고도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의료기관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도 맞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스크를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쁜 공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쓴다는 것도 문제”라며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자신이 결핵일지도 몰라서 큰 병원 외래를 찾는 환자라면 최소한 마스크 정도는 하고 외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핵전문가들은 결핵치료를 시작한 후 2주 정도가 지나면 사실상 감염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결핵이 의심될 만큼 기침이 계속되는 2주와 치료가 시작된 후 2주를 더한 한 달 동안 의료기관과 환자 스스로 결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결핵관리, 규제와 지원 동반돼야 효과
결핵전문가들은 의료기관 내 결핵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의 규제와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결핵관리를 위해서는 시설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지침만으로는 의료기관이 움직이지 않으니 규제를 통해 강제화하고 대신 결핵관리를 잘하면 비용을 지원해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선진국 기준을 봐도 결국 다 시설기준이다. 시설과 관련한 규제와 지원방안을 만들지 않으면 의료기관에 아무리 만들라고 해도 만들지 않는다”라며 “채담실 등 관련 시설을 만든 후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점도 반드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같은 상황이면 아무리 큰 병원이라도 결핵관리에 나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메르스는 접촉하고 짧은 시기에 어디서 어떻게 옮겼는지 알 수 있지만 결핵은 잠복기가 수십년에 이르기도 한다. 그 환자가 어디서 어떻게 결핵균에 감염됐는지 알 수도 없다”며 “병원이라는 공간이 결핵균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으니, (다른 환자에 대한) 감염을 방지할 수 있다면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메르스 사태 후 복지부가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에 상당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이 호기다. 결핵은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감염병이다. 결핵의심자가 별다른 대책 없이 의료기관을 활보하는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결핵발생률 인구 10만명당 50명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결핵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한 추진전략으로는 ▲결핵 조기 발견(취약계층 및 고위험군 검진 확대, 접촉자 조사 강화, 진단체계 개선, 해외유입 결핵 차단) ▲철저한 환자 관리 및 지원(환자 치료 및 관리 지원, 전염성결핵환자 관리 강화, 취약계층 관리강화, 잠복결핵감염자 관리) ▲결핵관리기반 강화(감시체계 및 평가체계 보강, 법 등 제도 개선, 결핵관리 인프라 강화(조직 보강, 전문성 향상, 국립병원 역량 강화), 결핵 인식개선 및 행동변화를 위한 대국민 홍보, 결핵연구개발 사업 강화, 국내·외 협력체계 구축) 등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의료기관 내 결핵관리 방안들은 이 중 여기저기에 적용된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2020년 진짜 결핵환자를 줄이고 싶다면, 보이지 않는 보균자를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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