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환자에게 받은 촌지나 선물도 저촉…진료 부탁은 어떤 경우도 안돼

세승 김선욱 변호사 "김영란법 적용 의료기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 있다"

내과 의사 A씨는 외과의사인 동료의사 B씨에게 ‘아버지를 진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외래에 등록하면 되지만 그러면 너무 오래 기다리니, 잠시 시간을 내서 진료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점심식사를 조금 일찍 마친 후 오후 외래가 시작되기 전 B씨의 아버지를 진료했다. 이 경우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것일까?

정답은 ‘그렇다’다. 의사 A씨가 업무시간이 아닌 자신의 쉬는 시간을 쪼개 부탁을 들어줬더라도 정해진 외래 순서를 바꿔 진료를 본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본지는 최근 청년의사 라디오 ’<히포구라테스>에서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와 함께 청년의사 페이스북 등을 통해 모아진 질문들을 중심으로 애매한 김영란법 적용 사례를 짚어봤다.

김선욱 변호사는 앞서 지적한 사례에 대해 “일종의 편법이다. 각 의료기관에 근무시간 외 환자를 보는 것은 안된다는 인사규정이 있을 것이다. 규정위반이다. 규정이 없다고 해도 해석 여부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만약 이게 허용된다면) 다들 그렇게 해서 지인들의 민원을 해결할 것”이라며 “부탁하는 사람은 민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청탁이다. 청탁에 의한 진료는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진료보는 순간 걸린다”고 강조했다.

법률적으로 민원은 ‘되는 일을 빨리 해달라고 부탁’하는 행위고 청탁은 ‘안되는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동료의사가 ‘나를 좀 진료해달라’고 하면 어떨까. 이 경우는 진료를 부탁한 의사는 처벌받지 않지만 진료를 한 의사는 처벌받는다. 법적으로 ‘나’를 위해 뭔가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법적으로 볼 때 ‘나 좀 봐달라’고 하는 것은 처벌이 안된다. 그런데 진료를 해준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며 "법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이런 게 모두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이나 검사 날짜를 당겨달라는 부탁도 불법이다. 특히 쉬는 날 부탁받은 수술을 하기 위해 자신 외 병원 내 다른 인력을 활용했을 때는 배임에 해당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맙습니다라며 주는 환자 촌지는?

김영란법에 처벌받지 않는 범위는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이다. 그렇다면 상품권은 돈으로 봐야 할까, 선물로 봐야 할까.

김 변호사에 따르면 상품권은 돈보다는 선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김 변호사는 “상품권은 사회통념상 선물의 범위로 봐야할 것 같다. 현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5만원 상품권 정도는 허용될 것 같은데, 확실한 것은 나중에 판례가 나와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에 따라 자신에게 진료받은 환자가 고맙다며 건네는 촌지는 어떨까.

당연히 받으면 안된다. 특히 환자가 치료를 받기 전 건네는 촌지는 당연히 문제가 되고, 치료가 끝난 후 나가는 환자에게 받는 촌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치료가 끝나고 나가는 환자에게 촌지를 받아도 직무연관성이 있는 (금품수수)로 봐야 한다”며 “뇌물죄에 사후수뢰죄가 있다. 이런 것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성의를 생각해 환자가 주는 촌지를 병원에 내는 기부금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주의해야 한다.

환자가 건네는 촌지를 ‘일단 받았다가 일과가 끝난 후 기부금 처리를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에 ‘금픔 등을 받은 후 곧바로 돌려줘야 한다’는 조항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대상 더 확대될 수도

의료기관 중에서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곳은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학교법인) 등이다.

학교법인이 아닌 협력병원이더라도 대학 소속 교직원들은 법 적용 대상이다. 예를 들어 공익재단이나 사회복지법인 병원인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경우 동시에 성균관의대나 울산의대의 교직을 갖고 있으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지만 병원 소속이기만 한 펠로우나 전공의의 경우 김영란법 대상이 아니다.

김 변호사는 이처럼 의료기관 간, 의료기관 내에서도 신분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점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상에 포함되진 않지만 수백 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나 특정 질환에 특화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병원 등의 적용을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김 변호사는 “형평성에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가 커지면 현재는 적용 대상이 아닌 의료기관도 포함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을 다 빼주거나 제외된 의료기관을 포함시키는 것 뿐인데, 국민정서법상 의료기관을 제외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공익적 진료 수행 여부나 국가에서 진행하는 여러 의료 관련 사업 수주 여부 등을 기준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권역응급의료센터 설립을 위한 지원금처럼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경우 김영란법 대상이 아니더라도 적용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의료법도 바꿀까

김영란법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을 받으면 안된다는 기준이 핵심이다. 그런데 김영란법 조항 중 ‘김영란법 외 다른 법에서 이익 제공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면 이를 준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즉, 김영란법에서는 3, 5, 10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의료법이나 약사법에서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면 김영란법 기준보다 더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주최하는 ‘제품설명회의 경우 1인당 10만원까지 식사를 제공해도 김영란법에 적용받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정기적으로 봤을 때 타 법의 관련 규정이 김영란법에 맞춰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김영란법 3, 5, 10 규정에 반대하는 얼마나 많은 민원이 있었겠나. 그런데, 이는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대통령도 바꾸지 못한 규정”이라며 “의료법, 약사법 등에서 허용하는 기준이 있지만 청탁과 관련해 김영란법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의료법, 약사법 등이 김영란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김영란법은 이런 것이 자꾸 누적되니 국민들이 보기에 안좋아서 나온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이 법을 활용해 밥을 얻어먹고 다니면 어떻게 되겠나. 또 규제가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배가 선배에게 밥 사주면 위법

김영란법을 적용하면 대상자가 모여 밥을 먹었을 때 개인 3만원 이상 밥값이 나왔는데 한명이 계산하면 김영란법 위반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8조에 상급직원이 하급직원에게 제공하는 위로, 격려, 포상은 김영란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조항이다.

한마디로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데, 반대로 후배가 선배에게 밥을 사는 행위는 김영란법 위반이다.

이밖에 개인적으로 공직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관련 업무에 한해서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

이를 테면 개원의가 보건소 위촉으로 방역 관련 업무를 위촉받았다고 하면, 이 개원의는 방역과 관련한 범위 내에서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방역과 상관없이 제약사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해 식사를 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개원의가 일종의 명예직으로 보건소 자문위원 등에 위촉돼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김영란법에 적용될 여지는 없다.

김 변호사는 “김영란법의 핵심은 비밀리에 만나서 꼼수를 부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은 부탁하지 않고 (식사는) 각자 내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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