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의료인 면허제도, 이제는 입법에서부터 구체화돼야”

기술발전·시대변화로 의료행위 경계 모호해져…입법부 면허범위 문제 회피 지적

보톡스에 이어 프락셀, 뇌파계 등 의사들의 고유영역이라고 간주돼 온 의료행위에 대해 사실상 '의사 고유 영역 아니다'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면서 의료인 면허제도와 범위 등을 구체화하는 입법과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사-한의사, 의사-치과의사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에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연구원 보건의료법정책연구센터가 지난 1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의료법과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주제로 개최한 제2회 HeLP 헬스케어 콜로키엄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인 면허범위에 대한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먼저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과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주제로 발제한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순구 교수(보건의료법정책연구센터 부소장)는 “이제는 의료인의 면허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명순구 교수는 “치과의사가 환자의 눈가와 미간에 보톡스 시술을 한 것이 치과의사의 면허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한 최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화제가 됐다”면서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상황의 변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이 전통적인 의료행위, 치과의료행위, 한방의료행위 개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명 교수는 “의사와 한의사의 이원적 면허체계를 기조로 하면서 면허 범위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현행법에서 이와 같은 분쟁은 당연한 것”이라며 “각 의료인의 면허 범위를 법해석의 문제로 돌린 것은 입법부가 입법사항에 관한 문제를 회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이인 손계룡 대표변호사는 “2011년에 개정된 현행법을 보면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운영 개발한 한방의료행위’로 규정돼 있다”면서 “한의학 산업의 발전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더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개정의 취지인데, 이는 한방이 과학화를 노력해야한다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판단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법원에서는 한의사가 뇌파계를 활용해 진료한 것을 한방의료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는데, 대법원에서 같은 판결을 낼지는 의문”이라면서도 “2011년 법령 개정 이후 한방의료행위 정의가 넓어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전향적으로 대법원 판례가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의료인 면허제도가 법령에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강윤구 특임교수(보건의료법정책연구센터 소장)도 “면허범위 경계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의료 현실로 볼 때 거의 불가능 할 수 있다”면서 “정부에서 구획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부분도 보건의료 종사자 입장에서 볼 때는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주호노 교수(한국의료법학회 회장)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위험관리나 기술습득 등 여러 제한된 조건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법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호노 교수는 “논의 초점은 의료기기를 한방에 써도 되느냐다.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그러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규범적인 문제는 의료법에 정해져있다. 면허의 범위를 넘어가면 무면허다. 입법적으론 이미 해결이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다만 구체적인 해석을 판례에 맡기고 있는 것인데, 사실적으로 접근해서 학문적 원리에 관한 기술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면허가 아닌)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 “학문적 원리를 사용해 위험관리를 할 수 있다면 맡겨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의료계와 한의계 간의 입장차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이용민 소장은 “한의학과 의학은 각각의 영역이 존재한다. 한의학의 장점이 무엇이고 현대의학보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그런 취지에서 각각의 영역을 발전시켜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세계적으로 한의학은 전통동양의학의 한 부분, 대체요법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침술이나 일정부분 효과에 대해서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에 대해서도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근거를 갖춘 연구가 나오길 바란다. 그러나 골절 의심이 있다면 엑스레이와 같은 의료기기로 확인하기 전에 정형외과로 보내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태호 약무이사는 “최근 해외에서는 한약을 병용하거나 침뜸 등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트랜드”라며 “대체의학뿐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어떻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가 의료인의 사명이며, 의료법의 목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의료법 목적에 부합하는지, 객관적 정보 취합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합법인지에 대한)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면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의료법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의료 수요자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한의학을 ‘현대화하라’, ‘객관화하라’는 요구를 많이 받는데, 현대의료기기를 쓰지 않고 어떻게 현대화와 과학화를 하란 것인지 묻고 싶다. 진심으로 더 나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바래 이러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석한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은 “한의학을 과학화하면 이는 한의학이 아니라 근거중심의 의학이 된다. 현대의료기기는 분명한 의학”이라면서 “국회를 통해서 치료행위에 대한 범위를 규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면허제도를 통합하는 등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의협 김태호 약무이사는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면 의학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한의학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의 몫은 한의사에게 맡겨주면 좋을 것 같다”면서 “한의학은 의학이 아니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얘기하다보니 감정싸움만 일어나는 것 같다. 발전하면서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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