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의사회, 구강미백학회 창립 선언…의협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의료계가 치과계와 치른 두 번의 전쟁에서 모두 패했다. 보톨리눔 독소(보톡스) 시술법과 프랙셔널 레이저(Fractional laser, 일명 프락셀) 시술을 두고 벌어진 법정 다툼에서 법원은 치과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보톡스에 이어 레이저마저 치과의사에게 허용되자 의료계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치과의사 미용 보톡스 시술 허용 판결이 레이저에 이에 또 다른 영역으로 확대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의사도 치과 등 다른 분야 의료행위를 하자는 주장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구강미백학회 창립하겠다는 피부과의사회

대한피부과의사회 김방순 회장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미용 목적으로 프락셀 레이저 시술을 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치과의사 A씨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그러면서 “보톡스 시술에 이어 안면부 레이저 시술도 면허 범위 내에 속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충격에 빠진 피부과 전문의들은 법원이 의료인 면허제도 근간을 뒤흔들었다며 급기야 구강미백학회를 창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31일 성명서를 내고 “피부과 기존 교과 과정에 있는 구강 해부, 구강 질환 및 다양한 치료를 본격적으로 교육하고 구강미백학회를 창립하겠다”며 “추계학회에서 구강미백 관련 세션을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학술활동을 심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부과 의사회는 “법원은 교육 과정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드는 판결을 했다. 결국 무면허 의료행위의 만연으로 국민 건강권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며 “치과의사들의 피부 레이저 시술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훼손된다면 이번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의사들이 다른 직역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 것인지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의협 추무진 회장은 지난달 31일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다른 직역이 의사의 영역을 침범해 오더라도 의료의 버팀목인 우리 의사들만은 꿋꿋이 참고 환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외로운 길을 가야 하는가”라며 “아니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회원들에게 타 분야를 교육해 타 직역의 의료행위를 실행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에게 시술 받으라더니…

치과의사 레이저 시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정부 정책과 반대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월 발간한 ‘의료용레이저 안전사용 안내서’를 통해 “레이저 치료 전 정확한 진단은 필수”라며 “임상경험과 피부 관련 전문적 의학지식이 충분한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처는 “정확한 진단 없이 비전문의와 비의료인에 의해 무분별하게 검은 색소성 질환을 제거한다면 조기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식약처는 피부과학회와 대한피부레이저학회, 피부과의사회 등의 자문을 구해 안내서를 발간하면서 “환자들의 의료용 레이저 사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높여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한피부과의사회 정찬우 기획정책이사는 “오죽하면 식약처에서 자료까지 만들어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라고 했겠느냐”며 “검다고 다 점이나 잡티는 아니다.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다고 무조건 점으로 보고 빼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될 경우 피부암 치료시기를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치과 보톡스 사건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치과 측 참고인조차도 안과, 이비인후과 및 피부과 등 독립적인 구조와 기능을 가진 전문영역으로는 치과 영역이 확장될 수 없다고 진술했지만 현장은 다르다”며 “만일 의학과 치의학 간 면허 구분이 모호해진다면 이것은 학문의 융합을 통한 발전이라는 순기능보다는 각 영역 간 배타성을 증가시켜 오히려 학문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면허범위 구체화” 법 개정 필요성 제기


보톡스에 이어 레이저 시술마저 치과의사에게 허용되자 의료계 내에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협은 “이제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의료법상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등 즉시 관련법을 명확히 개선해야 한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서 멀어지는 대법원 판결에, 향후 발생될 국민들의 혼란, 국민보건의 위해 발생 증가 등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앞으로 의료분야 영역에 관해, 의료와 의료인 면허제도에 대해 비전문가인 법관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의료전문가단체 스스로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의사회도 “이번 판결로 의료계 직능 간 경계가 무너지고 이는 비정상적인 과잉 진료를 유발해 최종적으로 국민이 그 피해를 받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향후 국회나 복지부는 관련 법·규정을 재정비해서 이와 같은 직능 간 갈등과 과잉 진료를 예방해 국민건강권을 수호하는 데 의료계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용 교수는 “사안별로 법원으로 가져가서 최종 판단을 구하면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입법적 보완을 통해 불명확한 부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