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에 레이저 허용한 대법 판결에 “이럴 수가”

보톨리눔 독소(보톡스) 시술법에 이어 프랙셔널 레이저(Fractional laser, 일명 프락셀) 시술도 치과의사들에게 허용되자 의료계가 ‘멘붕’에 빠졌다.

특히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치과의사 미용 보톡스 시술 허용 판결이 이번 재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대법원 “보톡스에 이어 레이저 시술도 치과의사 면허 범위”

대법원은 29일 미용 목적으로 프랙셔널 레이저 시술을 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치과의사 A씨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최근 치과의사의 보톡스 시술에 대해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며 “전원합의체 판결은 모든 안면부 시술을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내라고 단정한 사안은 아니고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내인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치과의사의 안면부 레이저 시술이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봐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한 사안”이라며 “보톡스 시술에 이어 안면부 레이저 시술도 면허 범위 내에 속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톡스 시술에 대한 판결처럼 “안면부 레이저 시술이라는 개별 사안에 대한 것으로 이를 기초로 치과의사의 안면부 시술이 전면 허용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 “당황스럽고 충격적이다”

이번 판결을 접한 의료계는 충격에 빠졌다.

의사 회원 1만2,594명에게 서명을 받아 대법원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던 대한의사협회는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관련 판결 때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모습이다.

의협 관계자는 “보톡스와 레이저 시술은 전혀 다른 사안인데 보톡스 시술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가져와 인용했다”며 “1만명이 넘는 의사들이 탄원서까지 제출했는데 인정하지 않았다. 당황스럽다. 보톡스와 달리 레이저 시술을 치과의사에게 허용한 것은 의료계는 물론 국민건강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대법원이 치과의사의 미용 목적 안면 보톡스 시술에 이어 프락셀 레이저 시술을 비롯한 피부레이저 시술까지 하용한 것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의협은 “단순히 그 면허범위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고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각 의료인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은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드는 것”이라며 “결국 무면허의료행위의 만연으로 국민 건강권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이제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의료법상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등 즉시 관련법을 명확히 개선해야 한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서 멀어지는 대법 판결에, 향후 발생될 국민들의 혼란, 국민보건의 위해 발생 증가 등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앞으로 의료분야 영역 관련 사항에 관해, 의료와 의료인 면허제도에 대해 비전문가인 법관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의료전문가단체 스스로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민건강권 훼손, 관련 법규 재정비 해야"

지난 28일 열린 학술대회에서 프랙셔널 레이저 시술 부작용 사례 사진전까지 개최했던 경기도의사회도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의사회 현병기 회장은 “황당할 뿐이다. 이번 판결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봐야 한다”며 “전문가 간 영역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피부과 전문의인 경기도의사회 김지훈 총무이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직능 간 전문 영역을 허무는 충격적인 결과”라며 “하지만 이번 판결이 치과의사에게 프락셀 레이저를 전면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 총무이사는 “이번 판결은 국민 건강과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보톡스와 달리 레이저는 많은 수련을 받고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가 하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일부 부작용은 돌이킬 수 없다”고 우려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판결로 의료계 직능 간 경계가 무너지고 이는 비정상적인 과잉 진료를 유발해 최종적으로 국민이 그 피해를 받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향후 국회나 복지부는 관련 법·규정을 재정비해서 이와 같은 직능 간 갈등과 과잉 진료를 예방해 국민건강권을 수호하는 데 의료계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의사회는 또 “치과의사들의 레이저 시술로 인해 국민건강권이 훼손되고 국민의 안전이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는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직격탄을 맞은 대한피부과학회와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오히려 말을 아꼈다. 이들은 조만간 긴급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피부과학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조만간 피부과의사회와 모여 이번 사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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