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남미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②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서점에서 나온 일행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구의 북서쪽에 있는 티그레(Tigre)로 이동해서 유람선을 탔다. 도시 이름은 호랑이를 의미하지만, 사실 라틴아메리카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이 지역에 살던 재규어를 처음 본 유럽 사람들이 호랑이로 착각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티그레는 파라나강(Ro Paran)이 라플라타강으로 흘러들면서 만든 삼각주에 위치한다. 파라나강은 브라질에서 발원하여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를 지나도록 2,570km를 흘러 우루과이강을 만나 라플라타 강을 이룬 다음 290km를 더 흘러서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파라나강에 흘러드는 파라나이바 강까지 포함하면 길이가 3,998km로 남아메리카에서 아마존 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1)


인구 38만명인 티그레는 삼각주에 흘러드는 파라나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관광을 비롯하여 라플라타강에서 즐기는 해양여가활동의 중심지이다. 최근 개발된 온천에 팝스타 마돈나가 자주 찾는 등 휴양지로서 재도약하고 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파라나강을 왕복하면서 구경한 강변에는 작은 별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애미의 스타아일랜드에서 본 것과 비슷하지만 규모로 보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널따란 잔디밭이 잘 가꾸어진 집도 있고 조그만 백사장이 있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수초더미와 잘라낸 잔디더미들이 흘러가는 탁한 강물을 보면 물놀이를 할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정작 이곳 사람들은 강물이 깨끗하다고 믿기 때문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 필자가 살던 동네에서도 맑다고 할 수 없던 마을앞 개울에서 미역을 감았던 것을 보면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틀지지 않은 것 같다.

뱃놀이를 마치고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들었다.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곳이다. 자리를 잡으면 식당 종업원이 다양한 종류의 구운 고기를 가져오는데, 손님이 요구하는 부위를 구워서 내오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15분을 넘기기 않는다. 이 식당 요리사의 고기 굽는 기술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준다. 현지가이드가 일행을 위하여 특별히 소안심을 부탁했는데, 육즙을 넉넉하게 살려 구운 기술이 정말 예술이었다. 아르헨티나 고기 맛의 진수를 본 셈이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던 탓도 있겠지만, 거의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고기를 먹었다. 식사를 하고나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빗속을 뚫고 대기하던 버스까지 뛰어갈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레콜레타묘지를 찾는다. 라플라타강 가까이 있는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세워질 무렵부터 ‘옴부나무 별장’으로 불렀다. 이 땅을 소유하던 후안 데 나르보나가 스페인 사라고사의 필라르 성모에게 바친다는 조건으로 땅을 기증했고, 1732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레콜레 형제회가 필라르의 성모 교회 (Baslica Nuestra Seora del Pilar)와 수도원을 세우면서 레콜레타로 부르게 됐다. 1821년 총독 마르틴 로드리게스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수도회를 몰아내고 수도원의 땅을 몰수하여 공공묘지로 만들었다.(2) 1822년 수도원 옆 과수원에 들어선 레콜레타묘지는 영국의 BBC방송과 미국의 CNN방송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가운데 하나로 꼽을 정도로 아름답고, 단위 면적당 조각 작품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각 작품들은 시대적 유행을 반영하고 있어 아르데코, 아르누보, 바로크, 신고딕 등 다양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모두 4,691개 가문의 묘역이 설치되어있고, 그 가운데 94개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국가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 10여 미터를 가면 예수의 입상이 서있다. “나는 빛이요 진리이다”라는 성경말씀대로 죽은 자들이 인도되기를 기대해서 세운 것이리라. 묘역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프로스페르 카텔린은 예수입상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길을 내어 묘역이 배치되도록 했다. 이곳의 묘역들은 아르헨티나에서도 한다하는 가문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하는데, 장군,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대통령들이 잠들어 있다. 그런 유명인사의 죽음보다도 급성심근경색으로 죽은 19살 소녀의 슬픈 죽음이야기가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아마도 직업적 관심사일 것이다. 갑자기 숨진 소녀는 가족묘에 안장되었는데 묘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묘지관리인의 연락으로 묘를 열어보게 되었다고 한다. 묻을 때와는 조금 달라진 것 같은 관을 열어 보았더니 죽은 그녀의 손톱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심근경색으로 가사상태에 빠졌던 그녀가 관속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공포에 사로잡힌 그녀는 관에서 빠져나오려 사력을 다하다가 다시 죽음을 맞은 것이다. 유럽에서는 700여건 이상의 생매장사례가 기록되었고, 이 때문에 망자를 위한 비상소통장치가 팔리기도 했다고 한다.(3)


역시 에바 페론의 묘를 빠트리면 섭섭할 것이다. 에바 페론의 묘에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페론추종자들의 헌화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도 사진을 찍을 장소와 시간을 얻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들은 아마도 페론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와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정책에 공감하는 페론추종자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에바 페론이 묻힌 묘역은 페론대통령의 가문이 아니라 친정인 두아르테 가문의 것이다. 페론가에서는 페론대통령을 만나기 전 그녀의 사생활에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두아르테 가문이 그녀를 받아들인 이유도 궁금하다. 사생아란 이유로 생부로부터 버림받고 힘들게 자란 그녀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담긴 것이었을까? 아니면 유명한 연예인으로 경제적으로도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영부인이었고 여전히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기 때문이었을까?.(4)

레콜레타묘지에서 나와 몬세라트(Montserrat)지역에 있는 5월의 광장(Plaza de Mayo)으로 향했다. 5월 광장은 1810년 5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으로 이어진 5월 혁명에서 유래했다. 스페인 식민시대 아르헨티나는 제국의 서쪽 끝이었다. 1776년 라플라타 부왕령이 세워지기 전에는 잉카제국의 옛 터전에 세운 리마부왕령을 중심으로 식민정책이 펼쳐졌다.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볼리비아 지역에서 은이 채굴되면서이고 더하여 팜파스에서 키운 소가죽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통하여 실어내면서부터이다. 1807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영국 식민지로 만들려는 홈 폽햄(Home Popham)경의 시도를 저지하면서 아르헨티나사람들의 자결(自決)의식이 고조되었고,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5)


5월 광장은 빅토리아 광장과 푸에르테 광장 사이에 서있던 기둥들이 제거된 1884년에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811년 리오 데 라 플라타 주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5월의 탑(May Pyramid)를 중심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동쪽으로 카사 로사다(Casa Rosada)가 있다. ‘분홍빛의 저택’이라는 의미의 이 건물이 대통령궁(Palacio Presidencial)이다. 대통령궁은 1825년 베르나르디노 리바다비아(Bernardino Rivadavia) 대통령시절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1860년 도밍고 사르미엔토(Domingo Sarmiento) 대통령 시절 보수하면서 분홍색으로 칠했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도의 중앙집중적 체제를 지지하는 중앙집권주의자(Unitarians)과 지방 각주의 자치에 기반을 둔 연방제를 지지하는 연방주의자(Federales)의 정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것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분홍색으로 칠했다고 알려졌다.(6) 대통령궁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시위 때문인지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1860년대부터 영국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팜파스의 쇠고기, 곡물 그리고 양모를 기반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이 일어났다. 철도가 확장되고 유럽이민이 급증하였다. 그 무렵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이민자들은 미국으로 향하는 사람의 세배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연합군 지지세력과 주축국 지지세력이 대립하자 1943년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1946년 후안 페론 장관이 대통령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페론대통령은 영국 소유의 철도를 국유화하는 등 정부 통제하의 산업화를 가속시키는 한편,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복지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참고자료:

(1) Wikipedia. Tigre, Buenos Aires.

(2) 우고 칼리가리스와 라우라 리나레스 지음.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매력적인 시신들. 트랜스라틴 18호 99-109쪽, 2011년 12월.

(3) 멜라니 킹 지음.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사람의 무늬, 2011년

(4) 위키백과. 에바 페론.

(5) 잰 재니퍼 블랙 편저. 라틴 아메리카 문제와 전망 778-800쪽, 이담북스, 2012년

(6) Wikipedia. Casa rosada.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