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짓는다는 뜻으로 일을 그르친 뒤에 아무리 뉘우쳐야 이미 늦었다는 고사성어다.

‘약방문’은 한방에서 약을 짓기 위해 필요한 약의 이름과 분량을 적은 종이로, 오늘날 의과에서의 ‘처방전’과 동일한 의미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의 처방전은 환자에게 제공되고 그 처방전대로 약국에서 약사가 조제를 한다.

하지만 한방은 예외다. ‘비방(方)’이라는 이름으로 특효가 있다는 약방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비방의 문턱이 어찌나 대단한지 한의원에서 제조했다고 환자에게 주는 첩약에도 그 성분과 함량을 알 길은 없다.

첩약은 비급여 진료비라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맡은 이래 교통사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첩약 진료비를 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3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만 첩약에 총 973억6,900만원 상당의 자보 진료비가 지급됐는데, 수가가 1첩 당 6,690원인 점을 감안하면 1일 2회 복용을 기준으로 총 727만7,204일치가 지급된 셈이다. 지난해 58만2,500명이 한방 의료기관을 이용했으니 환자 1명이 평균 12일치 첩약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첩약 수요가 늘면서 환자들의 불만도 증가하고 있다. 원치 않는 첩약을 주거나 미리 만들어 놓은 첩약을 배송하는 등 일부에서 과도하게 첩약을 지급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받은 첩약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구두상으로 ‘보신제다, 몸에 좋은 약제다, 열을 내려주는 약제다’라고만 할 뿐, 약 봉투 어디에도 성분을 표시하지 않는다.

요즘 같이 정보 공개가 중요한 시대에 첩약처럼 성분을 표기하지 않은 제품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싶다. 샴푸, 세안제, 각종 세제는 물론 조미료 등 식품에도 성분과 유통기한 등이 표기돼 있으며,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에도 그 성분과 함량은 표시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는데 유독 첩약만은 제외다.

이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첩약은 비방으로 그 성분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며, 함량과 성분을 기재할 경우 오히려 일반인이 임의로 첩약을 만들어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분을 알고싶으면 환자가 비용을 내고 해당 의료기관에 진료기록부 발급을 신청하란다.

어처구니없다. 첩약의 성분과 제조기간 등을 더 정확하게 기재하도록 하고 제조와 유통과정을 점검하고 관리해야 하는 게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복지부의 업무 아닌가. 한약제제만 관리한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비방이라며 눈감은 복지부가 진짜 나몰라라 한 것은 국민들의 건강이다. 첩약의 표준화가 아닌, 시대의 뒤안 길에 방치한 셈이다.

이제라도 ‘藥’이라는 이름을 건 첩약이 제대로 관리되어 일부 불법적으로 제조-유통되는 사례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 시스템을 만들기 바란다. 행여나 이름 모를 첩약을 먹고 환자가 사망을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제아무리 뉘우친다 한들 소용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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