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첩약 남발,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러다 저 범죄자 되는 거 아닐까 무서웠어요. 속이는 거잖아요. 나이롱환자처럼.”

서울에 거주하는 A씨(남, 36세)는 최근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일까. 조금만 더 달콤한 유혹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그는 합의금을 두둑이 챙겨 해외여행이라도 떠났을 것이다.

4개월 전, A씨는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는 길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서는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신호 대기 중인 그의 차를 뒤에서 누군가 들이 받은 것이다. 다행히 사고는 크지 않았지만 충격이 컸는지 어깨와 팔이 욱신거렸다.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하니 뒤차의 100% 과실로 잠정 결정됐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히 다친 데는 없었지만 혹시나 몰라서 인근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했다. 의사는 단순 ‘염좌 및 긴장’ 상병으로 일주일에 2번씩 2주 정도 물리치료를 받으면 될 거라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A씨는 중구에 있는 B한의원을 찾았다. “교통사고는 한의원에서 잘해준다”는 직장 동료의 권유를 받고 인터넷을 검색해 찾은 곳이었다. 진료 문의를 하려고 전화를 거니 중저음의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교통사고가 나서 진료를 받고 싶다고 했더니 그녀는 반색을 했다.

“아 그러세요? 가해자에요, 피해자에요? 보험은 들었어요? 사고접수번호 좀 알려주세요.” 언제든 오라는 친절한 안내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곧바로 한의원에 가지는 못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B한의원이었다. 바빠서 아직 못 갔다고, 나중에 가겠다고 A씨는 말하고 끊었다. 하지만, 전화는 몇 차례나 더 걸려왔다. 결국 A씨는 다음날 한의원을 찾았다.

작고 허름한 B한의원에는 환자가 거의 없었고, 일전에 통화한 것으로 보이는 40대 중반의 간호사가 그를 반겼다. 그녀는 보험에 들었으니 진료비 걱정은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 진료를 다 받아보자고 했다.

이내 60대로 보이는 한의사가 A씨를 훑어보고는 “몸이 놀란 거 같다. 침을 놓을 건데, 원래 허리가 휘어 있는 거 같으니 추나요법을 받아 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추나요법이 뭐냐고 물으니 “전문적인 요법인데 몸의 긴장이 완화되고 허리가 교정되는 요법이다. 추가 비용은 없다”고 했다. A씨는 그러자고 했다. 한의사가 직접 몸도 만져주고 침도 맞으니 마사지 받는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했다.

그런데 이내 한의사는 이상한 말을 했다.

“자세가 안 좋은 것을 한 번씩 교정하지 않으면 더 심해져요. 이번 기회에 평소에 좋지 않았던 허리도 고칩시다.” “교통사고와는 상관없는 거잖아요.” “원래 자동차 사고가 나면 이전에 기스 났던 것까지 한꺼번에 고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에요. 미리 준비해놓은 한약재도 있으니까 함께 먹어보세요. 몸을 보호해주는 좋은 약재가 들어 있어요.”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그에게 간호사는 이런 말도 했다.

“이 주변에서는 다 이렇게 해요. 서로 좋은 거죠. 어차피 환자분은 충분히 치료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평상시 안 좋은 거 다 고치세요. 그리고 합의는 바로 하면 안 좋아요. 제가 경험이 많아서 아는데요, 바로 합의하면 60만~70만원 밖에 못 받는데 3주 동안 치료받으면 합의금 100만~15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합의하자고 하면 아는 곳 있으니 그분과 상의하겠다고 말하고 합의하지 마세요.”

그렇게 간호사는 냉장고에서 검은 팩에 든 첩약을 한 움큼 꺼내 하루에 세 번 먹으라며 10일치를 건넸다. B한의원에서는 A씨에게 3주간 매일 와서 침과 물리치료 등을 받으라고 권했고, 이후엔 3일에 한 번씩 오면 된다고 했다. 첩약도 계속 준다고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뭔가 모를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미리 만들어 놨다는 첩약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료로 진료도 받고 약도 받았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한의원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 후로 그는 일주일 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계속 울려대는 B한의원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A씨의 사연은 한 보험회사에 접수된 실제 사례다. A씨가 보험회사에 문의한 이유는 첩약 때문. 진료를 받기 전에 만들어 놓은 약을 먹어도 되는지 보험사에 문의한 것이다. 보험사 측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A씨는 청년의사와의 통화에서 ‘황당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경미한 사고로 조금 놀란 건데 너무 과하게 진료 받으라고 한 거 같아요.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을 잘 아는 거처럼 말하던데, 저 말고도 그런 환자가 많은 거 같았어요.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만 있으면 한 달 매출은 뽑지 않을까요? 교통사고 브로커도 아니고, 합의금 받는 노하우까지 알려주는 거보니 사기꾼 같기도 하고. 한의사는 전문직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어요. 이러다 제가 TV에 나오는 ‘나이롱환자’가 되어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만약 그 한의원이 좀 더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면 아마 지금도 진료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교통사고 가해자가 아니었던 게 천만 다행이었다는 그는 지금 평소처럼 직장생활을 하며 건강히 지내고 있다.

한편, 해당 한의원은 최근 폐업 신고를 하고 문을 닫았다. 해당 보건소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그 사유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보험사 관계자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험이 안 되는 보신제를 준 거 같은데, 약 봉투에 성분이나 함량 표시가 돼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며 “최근에는 의료기관에서 심평원에 진료비를 직접 청구해서 세부 내용을 알 수도 없고, 물어보면 대표적인 한약재 한두 개만 표시하고 ‘그 외’, ‘등’으로 적어둔다. 이미 약을 환자에게 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비용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통사고 환자들이 한의원에 간다고 하면 합의금을 더 올려주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한의원에 가면 진료비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 10~20만원을 더 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과잉진료를 해서 진료비가 증가하면 이듬해 선의의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첩약 비용, 전년 대비 30%씩 증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지난해 교통사고 환자에게 지급된 첩약 진료비는 973억6,900만원이다. 1첩 당 수가가 6,690원인 점을 감안하면, 1일 2회 기준으로 총 727만7,204일치(1,455만4,409첩)가 처방된 것이다. 이는 지난해 한방 의료기관을 이용한 자보환자 58만2,500명이 1일 2회 기준으로 평균 12일치 첩약을 받은 것과 같다.

이같은 첩약 진료비는 2014년도 747억2,700만원보다 30.3%나 증가한 것이다. 올해에도 이런 증가 추세는 이어져서, 상반기 첩약 비용만 611억8,800만원에 달한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016년의 연간 첩약 비용은 1,223억7,600만원에 달할 전망이다. 2년 연속 30% 이상 증가율을 보이는 것이다.

첩약은 추나요법, 약침, 한방물리요법 등과 함께 한방의 비급여 진료비인데, 첩약이 전체 비급여 진료비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가량이다.

최근 한방에서는 비급여 진료비가 급격히 증가해 올해 말에는 전체 한방진료비의 50%를 비급여가 차지할 전망이다. 급여 진료비와 비급여 진료비가 비슷해지는 것이다.

또한 비급여 진료비 증가는 당연히 전체 한방진료비 증가로 이어지고,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방진료비는 2014년 2,698억1,200만원에서 2015년에 3,579억9,800만원으로 32.7%가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2,257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의과 진료비는 1조1,536억9,200만원에서 1조1,977억9,800만원으로 3.8% 증가하는 데 그쳤고, 올해 상반기에는 총 진료비가 5,938억7,500만원 수준에 그쳤다. 상반기 진료비를 연간 실적으로 단순 계산하면 올해 총 의과 진료비는 전년대비 0.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한방은 26.1%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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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보 환자, 끼워팔기식 첩약 횡행

이처럼 자동차보험에서 한방진료비가 증가한 이유로는 한의계의 마케팅 강화와 접근성 증가, 고가의 비급여 항목 치료 증가 등이 꼽히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건강보조식품 활성화와 경기침체로 인한 한약시장 축소로 자동차보험 시장을 새로운 활로로 삼으려는 한의원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한방치료를 권유하는 라디오, 지하철 광고 등 적극적인 마케팅도 한몫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방 의료기관이 주택가나 사무실 밀집지역 등에 많이 생기면서 경상환자에 대한 통원 및 보존적 치료가 많아졌다”며 “신규 한방 의료기관의 연평균 증가율은 18.3%다. 이는 병·의원 증가율 5.3%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동차보험은 환자 본인부담금이 없기 때문에 급여항목 대신 물리치료, 첩약 등 고가의 비급여 치료가 늘고 있는 추세다. 그 중 첩약도 처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과잉처방 등이 발생하고 있다.

환자가 원치 않는데도 미리 조제된 첩약을 제공하거나, 진료 후 자택으로 배송하는 경우 등 ‘끼워팔기’식으로 제공하는 사례도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

실제 안산시 소재 C한의원은 후미추돌사고로 진료를 받은 28세 남성과 27세 여성 환자에게 어혈을 풀어준다며 한약 1박스씩을 지급했다. 이들이 진료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내외. 이 환자들은 즉석에서 한약이 제공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미리 만들어져 있는 것을 그냥 먹어도 되냐며 해당 보험사에 문의했다.

춘천에 있는 D한의원에서는 병원에서 염좌 진단을 받았던 환자에게 침 치료를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전화를 걸어 첩약을 가져가라고 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진료를 받을 때 첩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첩약을 거부했다가 한의사로부터 핀잔을 들었다는 환자도 있었다. 부산 E한의원은 병원에서 4일간 입원해 진료 받고 퇴원한 후에 방문한 17세 남성 환자에게 침 치료 후 첩약을 권유했다. 미성년자인 그는 한의사의 말대로 첩약을 받아서 집에 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E한의원에 전화를 해 첩약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다른 부모들은 첩약을 해달라고 난리인데 이상한 부모”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 어머니는 결국 그 첩약을 한의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렇게 환자에게 지급된 첩약은 복용여부와 상관없이 보험사에서 해당 한의원에 비용을 지급하게 된다. 이렇게 늘어난 총 진료비는 이듬해 보험료 인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첩약 성분표시·유통관리 절실

최근 이같은 첩약관련 민원이 전국적으로 접수되면서 첩약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에서 인정되는 저렴한 한약제제가 있는데 자보 환자에게는 이를 먼저 사용하지 않고 고가의 첩약을 남발하고 있다”면서 “건보에서 급여약제를 우선 사용하고 첩약은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이며 보충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처럼 자보에서도 이러한 심사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방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미리 만든 첩약을 제공하는 것과 첩약에 한약성분 및 한약재 원산지등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의사는 “한방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을 해 환자별로 다 다른 약제를 처방해 준다는 특징이 있는데, 최근 척추 관련 진료를 하는 한의원에서 미리 약을 만들어서 같은 약을 제공하고 있다. 척추(질환)치료제라고 하는데 다량의 보신약제를 섞은 첩약으로, 효과도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약사법 등에 따르면 사전조제는 의약품 무단 제조에 해당되는데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약제소견서에는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대표적인 약제만 기재해 놓아 확인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100%로 보험료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로 박희제 변호사(한약사)도 최근 월간 ‘손해보험’ 기고문을 통해 “진료하지 않은 환자인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미리 만들어놓은 사전조제는 무허가 의약품 제조에 해당하며 약사법 및 보건범죄단속특별법에 저촉될 개연성이 농후하다”며 “한약은 안전성·유효성 검사가 면제돼 국민의 건강권 침해가 우려되고 한약 조제 시 특별한 규제 없이 처방조제 해 소비자의 알권리가 원천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과거 1992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사전 조제는 예비적 성격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첩약 성분 표시 등은 오히려 국민들의 오남용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향후 수요를 감안해서 사전 예비 조제는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면서 “의약분업 이전 판결이지만 한의계는 분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첩약에 한약 성분과 함량 등을 기재할 경우 국민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관리하는 한약제제가 아닌 다른 약제로 혼용해 사용함으로써 의약품 오남용을 할 소지도 있다”면서 “한방은 비방이라고 해서 첩약의 내용이 달라 표기도 어렵지 않나. 필요할 경우 환자가 진료기록부를 발급받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정부도 첩약 등의 원산지 자율표시제를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대한한의사협회와 함께 한약의 안전성·유효성 관리 방안 도입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첩약을 캡슐형태로 개발해 표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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