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학회, 150개 필수이수항목 마련하는 등 교육 내실화 추진

“지금도 배우고 싶은 술기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3년으로 수련 기간이 단축되면 배울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A수련병원 내과 전공의 3년차)

“수련 기간 단축이 교육 과정을 개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수련 교육을 내실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B수련병원 내과 교수)

오는 2017년부터 4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는 내과 전공의 수련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 모두 수련 교육 내실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련 기간 단축이 교육 과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한내과학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3년제를 준비해 왔다며 이번 기회에 수련 교육 내실화를 이루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혼란스러운 의대생·전공의들…기대하는 목소리도

의대생과 인턴, 전공의들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과 전공의 수련 기간이 3년으로 단축되는 대신 전임의(펠로우) 기간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서울 대학병원에서 수련 중인 한 인턴은 “처음에는 수련기간이 줄어들어 좋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이 펠로우를 2년 해야 하는 구조가 될 것 같아서 반갑지만은 않다”며 “동료들 대부분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A수련병원 내과 전공의 3년차인 B씨는 “기존 내과 수련이 방대하고 취직이나 개원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술기를 익히려면 어쩔 수 없이 펠로우를 1~2년 정도 해 왔다”며 “그런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는 근무자이면서 피교육자여서 지금까지는 배울 기회보다는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이런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수련 시간이 단축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B수련병원 내과 전공의 2년차인 D씨는 “지금도 상당수 수련병원에서는 필요한 부분이 제대로 트레이닝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분과가 제대로 나눠져 있지 않아서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수련기간이 3년으로 줄어들면 교육을 받을 기회가 더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제도 변화가 논의되던 당시 내과학회에서는 내과 전공의 미달 사태에 대한 미봉책으로, 대한병원협회에서는 전공의특별법 통과 이후 더 이상 착취가 불가능한 전공의 대신 펠로우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기존 4+1(전공의 4년, 펠로우 1년) 제도를 3+2(전공의 3년, 펠로우 2년) 제도로 변경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전협 조승국 평가수련이사(원주세브란스병원 내과)는 내과 수련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교육 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이사는 “3년 안에 내과 전문의를 양성하겠다는 것인데 그에 따른 교육과정을 확실히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발표했다”며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포하듯이 공개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수련 기간이 3년으로 단축되면 지방 대학병원들은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 이사는 “지방에서 수련을 한 전공의들 중 상당수는 펠로우 과정을 서울에서 하려고 한다”며 “그러다보니 지방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인력도 줄고 펠로우도 구하기 힘들 수 있어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결국 서울 대형병원들의 배만 불리는 정책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3년제 내과 수련을 받게 되는 의대생들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전공의들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E의대 본과 2학년인 한 학생은 “수련 교육을 3년 안에 받을 수 있다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4년이었던 교육 과정이 3년으로 줄면 완벽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펠로우를 하지 않으면 의사로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F의전원 4학년 한 학생은 “내과를 지원하도록 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공의를 마치고 펠로우를 하지 않더라도 1년 더 빨리 전문의를 따서 진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이득”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의전원 4학년 학생은 “수련 기간이 1년 줄어드는 것이니 내과 지원자들에게는 좋은 일 같다. 펠로우를 하려는 사람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더 빨리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련 기간이 단축되면 내과 지원율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한 의대 본과 4학년 학생은 “수련 기간이 줄어들면 그 이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일찍 오기 때문에 전공 선택을 하는데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내과학회 “수련 교육 내실화의 시작”

내과학회는 수련 기간 단축을 계기로 교육 내실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의대생과 전공의 등 수련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감도, 바뀌는 수련 교육 과정을 접하면 사라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내과학회는 특히 전공의특별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따라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되는 전공의 수련시간도 반영해 교육 과정을 개편할 계획이다. 전공의들이 근무보다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내과 수련 과정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내과학회는 우선 내과 수련 기간 동안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내용들을 분과별로 선별해 총 150여개 항목을 마련했다. 앞으로 내과 전공의들은 150여개 필수항목을 이수해야만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다. 지도전문의의 역할도 강화돼 전공의들이 수련 기간 동안 필수 항목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외래 참관을 강화해 전공의 3년 동안 일정 시간 이상 외래 참관을 하고 어떤 환자를 봤는지 등을 지도전문의가 점검하도록 할 계획이다.

내시경과 초음파 술기 교육도 강화한다. 올해부터 내과 전공의는 2년차와 3년차 수련 중 각종 초음파 검사(심장, 복부, 관절, 갑상선 등)에 50회 이상 참여하도록 수련 교육 과정이 개편된 바 있다. 내과학회는 초음파와 내시경 이수 시간을 기존보다 더 늘리고 항목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 초음파 지도인증의 교육을 실시해 초음파 수련을 시킬 지도전문의를 추가 양성한다. 현재 초음파 지도전문의는 180명 정도다.

전문의 시험 방식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현재 전공의 4년차는 전문의 시험에만 집중하는 상황이지만 3년으로 수련 기간을 단축하면서 연차별로 나눠서 시험을 보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또 전문의 시험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과학회에서 하고 있는 ‘보드리뷰’를 강화할 계획이다. 춘·추계 학술대회 때마다 전문의 시험 요점 정리를 해주는 보드리뷰를 오는 10월과 12월에 추가로 더 실시한다. 이렇게 되면 보드리뷰를 통해 전문의 시험 관련 모든 내용을 다 정리할 수 있다는 게 내과학회 측 설명이다.

더불어 전문의 시험일도 현행 1월에서 7월로 옮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3년제 내과 전공의와 4년제 내과 전공의가 동시에 전문의 시험을 보는 오는 2020년부터 시험 일정을 7월로 옮기되 4년제 내과 전공의들은 기존처럼 1월에 시험을 보도록 해 배출 시기를 조정한다는 구상이다.



수련병원 질 관리에도 관심

수련병원의 역할도 재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내과학회는 내과 전공의가 다양한 환자군은 물론 개원에 필요한 실질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개원가와 중소병원을 수련파견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9개 분과 전문 과목을 골고루 수련 시킬 수 있는 병원만 내과 전공의 정원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9개 분과 중 해당 수련병원에 없는 분과가 있다면 다른 병원과 연계해 교육하는 방안을 마련해 학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9개 내과분과 전문과목은 소화기·순환기·호흡기·내분비대사·신장·혈액종양·감염·알레르기·류마티스 내과다.

내과학회 정훈용 수련이사(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는 “수련병원은 내과 전공의들에게 9개 내과분과를 골고루 가르쳐야 한다. 만약 일부 분과가 없는 수련병원이라면 다른 병원과 연계해 어떻게 교육시킬지를 학회에 제출해야 한다”며 “내과 전공의 수련 교육 시스템을 미리 마련해 놓으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는 “제대로 수련을 시킬 수 없는 병원은 전공의 정원을 포기해야 한다”며 “전공의 정원을 배정 받아서 수련시키기보다 다른 수련병원과 연계해 전공의 파견 교육을 맡을 수도 있다. 그래야 전공의가 다양한 교육을 받고 질적 수준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개원가나 중소병원의 역할도 강조했다. 정 이사는 “작은 병원이라고 해서 전공의 수련교육에 대한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과 전문의가 된 이후 개원을 하거나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그런데 현재 개원한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련 받은 내용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적응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고 하더라. 개원가나 중소병원에서 실질적인 임상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는 “큰 병원에서 주된 수련교육을 받고 개원가나 중소병원에 파견을 가는 방식이 전공의들에게는 도움일 될 것”이라고 했다.

“펠로우 2년 의무화? 근거 없는 우려” 일축

내과 수련 기간 단축이 펠로우 기간 연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일축했다. 펠로우는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내과 수련 교육을 내실화해 개원할 때 필요한 내시경과 초음파 술기까지 충분히 가르칠 계획이라는 게 내과학회의 입장이다.

내과학회 이수곤 이사장은 지난 1일 회원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일부에서는 내과 전공의 수련기간을 3년으로 줄이고 전임의(펠로우) 2년을 의무 기간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있으나 이는 근거 없는 우려”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현재 전임의 수련과정에는 변화가 없어서 분과 전문의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선택사항이지 의무 사항이 아니다”라며 “전공의 수련과정 변화와 연계된 개정은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최근 속속 도입되거나 시행되고 있는 환자안전법에 따른 환자안전사고 보고학습시스템,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법,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등으로 인해 의료계는 진료 시스템의 혁신과 의사 역량의 강화가 필요한 상태”라며 “특히 입원 환자 진료를 더 이상 전공의 중심으로 운영할 수 없게 되어 이로 인한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와 같은 새로운 진료 체계의 도입과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내과 전공의 수련 기간 단축이 펠로우 기간 연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일부에서 오히려 펠로우 기간이 더 연장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과 전공의 교육과정 개편과 맞물려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학에 남으려고 펠로우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개원하는데 필요한 초음파나 내시경을 배우려고 어쩔 수 없이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전공의 수련 과정에 확실히 포함시켜 3년 내에 배울 수 있도록 개편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내과학회가 호스피탈리스트 추진한 이유

3년제 내과 전문의와 4년제 내과 전문의가 동시에 배출되는 오는 2020년 인력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현재 연간 600명 정도 내과 전문의가 배출되는 만큼 2020년에는 1,200명에 달하는 내과 전문의가 한꺼번에 인력 시장에 나오게 된다.

한 내과 전공의는 “2020년에는 내과 전문의가 지금보다 2배로 배출되는데 이들에 대한 수요가 충분할지 모르겠다”며 “4년을 수련한 내과 전문의와 3년을 수련한 내과 전문의를 비교했을 때 병원 측에서는 4년을 수련한 사람을 선호할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내과학회는 입원전담전문의로 불리는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내과학회가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까지 추진할 정도로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움직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과학회 정훈용 수련이사는 “내과학회 주도로 진행한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이 100%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정부 주도 시범사업을 도출해 냈고 수가도 나왔다”며 “앞으로 3~4년 후면 호스피탈리스트제도도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는 “현재 호스피탈리스트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당장 새로운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펠로우나 봉직의 등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호스피탈리스트에 지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했다.

정 이사는 이어 “당장은 많지 않더라도 내과 전문의 배출이 급증하는 3~4년 뒤에는 지원하는 의사가 많아질 수 있다”며 “호스피탈리스트 제도화와 맞물려 내과 전공의 수련을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수연/최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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