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인턴기자가 함께한 제9회 삼성메디슨ㆍ청년의사 자원봉사 체험캠프

“의대를 입학할 때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었어요. 그 마음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내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선기은,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바쁜 의과대학 일상을 지내다 보니 문득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삶,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았나하는 반성이 됐어요. 그래서 이번 캠프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손동현, 서울의대 본과 2학년)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4박 5일간 진행된 ‘제9회 삼성메디슨·청년의사 자원봉사 체험캠프’(이하 메청캠)에 예비의사인 의대생, 의전원생들이 참가한 이유다.

다양한 자원봉사 체험과 교육프로그램으로 이미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예비의사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한 메청캠. 지난해 메르스 여파로 연기된 9회 메청캠에는 41개 의대 중 35개 의대가 참여했으며 경쟁률 4:1을 뚫은 의대생 50명이 함께 했다. 바쁜 학기를 마치고 애써 얻은 짧은 방학을 아껴서 캠프에 참여한 의대생들은 들뜬 표정을 미처 감추지 못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던 그들과 지난 4박 5일을 함께했다.




잊을 수 없었던 미소들

지난달 21일, 메청캠 참가자 50명이 서울시어린이병원 1층 강당에 모였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향후 일정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피곤한 내색을 보이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발대식에 이어 서울시어린이병원 측에서 진행한 감염방지교육과 봉사자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이날 오후부터 각자 배정받은 병동에서 이틀에 걸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시어린이병원에 있는 환아들은 수두증, 뇌성마비 등 중증질환을 갖고 있어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병원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의대생들은 환자가 치료를 받고 회복돼 가는 과정에 대한 지식을 쌓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일까. 서울시어린이병원에 있는 환아들과의 첫 만남은 학생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차의과학대 의전원 김명진 학생(3학년)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삶을 생각하니 처음에는 가슴이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며 “하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부모님이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나니 내가 그 아이를 불쌍하게 여겼던 것은 정말 단순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건국대 의전원 현철환 학생(4학년)은 “병동에서 유리창을 닦았다.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는 환자들에게는 그 유리창이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분의 삶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하대 의전원 선기은 학생(4학년)은 “해외여행을 갔을 때 중증장애인이 혼자서 놀이공원에 가는 것을 봤다. 그런 분들이 사회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며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 무기력하게 병원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환자들의 삶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앞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서울시어린이병원에서 학생들은 환아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산책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냈다. 움직임이 제한된 중증 환아들 곁에 머물면서 침상을 정리하고 병동 환경을 가꾸었다. 비록 온전한 소통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은 환자들과 교감하는 모습이었다.

연세원주의대 박찬진 학생(본과 2학년)은 “침을 흘리며 나에게 뛰어오는 환자들을 보며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부끄럽게도 무서움이었다. 뭔가를 뒤지듯 내 몸을 더듬던 환자들 앞에서 순간 경직이 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비록 조금 다른 외형, 다른 행동을 해도 이 사람들은 나를 믿고 이렇게 가까이 와주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중에는 환자들과 정도 제법 들었다. 이제는 그들이 그립고, 앞으로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려의대 구호영 학생(본과 2학년)은 “30여년간 입원해 있는 환자가 있었다. 첫날 그분 침상 옆 창문을 닦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마치 나를 반기는 듯한 웃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무의식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다음날 그분의 폐 활동을 돕기 위해 다시 방문했을 때 나를 보면서 보여줬던 웃음은 무의식적이거나 작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비록 몸을 움직이거나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모두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재롱잔치에서 “앵콜” 받은 학생들

서울시어린이병원에서 이틀에 걸친 봉사활동을 마친 학생들은 강원도 동해시 소재 노인요양시설인 이레마을노인요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부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보니, 본인들의 숙식을 해결하는 데에도 당장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학생들은 협소한 공간을 나눠 잘 자리를 마련하고, 당번을 정해 번갈아 가며 식사를 준비했다.

이레마을에는 뇌졸중, 치매 등을 앓고 있는 노인 80여명이 있었다. 본인 혼자서는 산책도, 목욕도, 식사도 하기 힘든 분들이었다. 그런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아침식사를 도와드리는 것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시간을 함께할수록 병동에서는 이야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말벗이 되어드리고, 목욕을 도와드리고, 휠체어를 손수 끌고 산책을 하는 학생들은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가 돼 있었다.

강원대 의전원 조현 학생(2학년)은 “육체적으로 아프고 불편한 모습, 정신적으로는 외로움과 무료함에 지치신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직 의사도 아닌 제가 아픈 곳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가끔 웃음이라도 드릴 수 있었던 점이 감사했다”며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생활하면서 받은 행복이 일의 고됨보다 더 컸다”고 했다.

이화여대 의전원 전보경 학생(3학년)은 “처음에는 할머니께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었다”면서 “하지만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니 조금 더 마음을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사람과 사람이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의 엄청난 힘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많으신 할머니의 시간은 나에게 남겨진 시간보다 더 귀하고 값진 시간일 것이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레마을에서 학생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도 창고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등 요양시설을 정비하는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짬을 내어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위한 재롱잔치도 준비했다. 조별로 준비한 춤과 노래를 보면서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어느새 “앵콜”을 연호하고 있었다.

고려의대 구호영 학생(본과 2학년)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는 대부분 무표정으로 앉아계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이 조금씩 미소를 짓기 시작하셨다. 공연이 끝나고 ‘고마워요’라고 해주신 할머니 한 분의 말씀은 지난 며칠간의 피로를 날려버릴 만큼 상쾌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활동이 일종의 ‘쇼’이자 봉사하는 사람을 위한 행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쇼조차 없었다면 노인들의 일상은 다른 날처럼 무료하게 흘러갔을 것”이라며 “이러한 쇼도 가끔은 필요하다. 메청캠을 통해 쇼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전했다.

충남대 의전원 박정민 학생(3학년)은 “참된 봉사란 내 몸이 편안한 봉사가 아니라, 치열하리만큼 바쁜 일정, 졸음과 싸워가면서 하는 봉사라고 생각한다”면서 “메청캠을 통해 나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타인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된 의사의 길을 함께 고민하다

남들과는 다른 방학을 보내기 위해 메청캠에 참가한 의대생들.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메청캠을 찾은 이들을 위해 매일 밤 다양한 강의도 진행됐다. 캠프 첫째 날인 7월 21일에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센터장을 지낸 김여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호스피스와 의사의 역할’을 주제로 의사로서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둘째 날인 22일에는 국립중앙의료원 권용진 기획조정실장이 강연을 통해 의사로서 공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사회적 책임감과 부담감을 짊어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동네메디컬센터 안병은 원장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신질환자의 탈원화에 있어서 사회적 기업의 역할과 자연 치유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23일에는 도티기념병원 최영아 내과 과장이 ‘질병과 가난한 삶’에 대해, 신문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이 ‘한국의료의 현실 및 이해’에 대해 강의했다.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 강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다”, “다양한 진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만족해 했다.

학생들은 메청캠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양대 의전원 신지수 학생(3학년)은 “그동안 봉사활동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 머무르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캠프에서 친구들이 진심으로 어린이 환자들과 노인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일방적으로 마음의 벽을 세웠던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대 의전원 전가경 학생(2학년)은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이번 캠프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짧은 방학 기간을 쪼개 매청캠에 참가한 학생들은 4박 5일이 지난 뒤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학생들은 100점 만점에 92.2점을 줬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서(44%), 혹은 교육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서(32%) 메청캠에 참여했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이번 메청캠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얻었다(92%)고 말했다. 참여한 학생들 모두 앞으로 메청캠을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참가하도록 권유하겠다고도 했다.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었던 메청캠 4박 5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메청캠은 초음파진단기기이다. 나를 좀 더 잘 들여다보게 해줬다.”(서울의대 손동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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