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이전 후 전문가 부족 따른 고육책…醫, "심사 공정성 객관성 우려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종합병원에 이어 상급종합병원의 심사 및 평가도 전국 지원으로 이관하는 작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심평원은 본원의 원주 이전이 완료되는 2018년 12월이면 진료비 심사 업무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 단계별로 심사기능을 지원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심평원이 공개한 ‘정관 일부개정안’에는 내년 1월 1일부터 종합병원, 한방병원, 치과대학부속치과병원의 심사 기능을 지원으로 이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는 1단계 조치에 불과한 셈이다.

심평원의 세부 개편 내용을 종합하면, ‘1단계’는 종합병원급 심사기능을 지원으로 이관하되, 업무의 난이도 등을 고려하고 이관에 따른 업무혼란, 전문성 훼손 등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이어 ‘2단계’는 상급종합병원 심사기능의 이관으로, 의원급 진료비 심사와의 연관성이 높은 일차의료·만성질환 중심의 적정성 평가기능 등도 이관될 예정이다.

이러한 방침은 서울사무소에 잔류한 본원이 모두 원주로 이전하게 될 경우 심사 자문을 할 위원들이 대거 이탈할 것이 예상됨에 따른 조치다.

실제로 심평원이 2014년 7월, 상근 및 비상근 심사위원 44명을 대상으로 (원주 이전 시)자문을 포기할 의향이 있냐는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65.9%인 25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각종 회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외부위원 228명 중 65.4%인 149명도 참여를 포기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원주권역 내에서 중증질환 등 심사에 참여할 전문인력을 다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심평원은 41개 진료과목에 과목당 5~6명의 임상의사 'Pool'(220명)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원주에는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만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으로, 여기서 확보할 수 있는 교수급 의료전문가는 총 7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3개 과목만 100% 확보될 뿐, 13개 과목은 의료전문가가 전무한 상태며 25개 과목도 일부만 가능한 상태다.

또한 1개 의료기관에만 모든 심사를 의존할 경우 심사의 공정성이나 객관성 문제 등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심평원 판단이다.

결국 심평원은 본원에 집중됐던 정책 및 실무기능을 분산하고 단순심사를 했던 지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대신 전문 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지원 이관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심평원은 중장기적으로 본원이 기획·정책개발·연구기능을 중심으로 하고, 지원은 정책을 실행하는 실무집행 기능으로 점진적으로 개편한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심사 퇴보 불 보듯서울지원 강화해야"

하지만 의료계는 심사업무의 지원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뮬레이션, 의견수렴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심사기준에 따라 심사하지만 복잡한 행위나 수술, 처치 등 고난이도 수술인 경우는 사례별로 심사하고 있다. 주로 상급종합병원 등 큰 병원에서 발생하는 사례들인데 이를 지원에서 한두명의 직원과 심사위원이 판단한다면 지역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지금도 병원급 이하 심사에서 동일한 사례임에도 지역별로 다른 심사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종병과 상급까지 지원에서 하면 그런 경우는 더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시뮬레이션 등을 통한 심사문제 등을 사전에 점검해야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종합병원이라고 해서 진료 수준이 상급종합병원보다 못하다고만 볼 수 없다. 상급종병 지정은 지역별 배분이 있기 때문이지 실제로는 상급종병 수준의 종병도 있다. 이들 기관의 심사를 지역으로 나누면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지역으로 갈수록 지역심사위원들은 몇 개 대학의 교수들일텐데 해당 지역의 위원이 해당병원의 사례를 심사할 수 있어 공정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원주로 가면 심사위원 확보가 어려워져 불가피하게 지원 이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은 이해되지만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부에서는 종합병원급 이상의 심사는 서울지원에서 맡아서 진행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라는 정부 시책에서 벗어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종병도 지원으로 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상급까지 가는 것은 더 심각하다. 지금상태를 유지해야한다고 보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 취지 때문에 심평원이 선택할 수 없다면 서울지원에서 종합병원 심사를 맡아야 한다”며 “반드시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심사업무가 지원으로 갔을 경우에 제대로 심사를 할 수 있을지, 분과별로 맡았던 심사직원과 심사위원들이 지역 내 전문심사를 하고 전국적으로 일관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며 “심평원 내부에서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의료기관과 의료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도 마련돼야한다. 성급히 결정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심평원 기획예산부 관계자는 “(종병 이관에 대해) 심사운영실에서 심사일관성 등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체크하는 기전을 만들고 있으며 실무협의체를 구성해서 점검하고 있다”며 “지원에서 자체적으로 종합병원 심사를 할 수 있는 각각의 환경을 만들어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6개월간 유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지난 2000년 심평원이 병원급 심사를 하게 될 때에도 유사한 이유로 병원계에서 우려했다”며 “하지만 이번 심사 이관으로 지역별로 있는 의료기관간에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다. 그동안 관할 부서가 달라 지원에서 종합병원급 이상 담당자와 공유할 수 없었는데 지원 이전을 하게 되면 우려도 있지만 장점도 상당히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종합병원 심사 이관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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