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보건복지부가 ‘고유식별정보의 처리’ 내용이 담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에선 개인정보가 필요한 코호트 연구 등의 경우 주민등록번호 또는 외국인등록번호를 비식별화해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빅데이터, 즉 심사평가원 등이 보유한 국민건강 정보를 의학연구 활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시행령(26조 신설)에서 허용한 연구는 ▲정보 주체로부터 동의를 받거나 동의를 면제할 수 있는 연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수행 또는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이에 준하는 공익을 위한 연구 등이다.

현대의학에서 빅데이터는 정밀의료, 개인맞춤형의료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에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의학연구에서 빅데이터가 활성화되게끔 앞 다퉈 제도를 정비하고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국민건강정보 전산화에 성공해 비교적 손쉽게 의학연구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개인정보’ 관련 우려들로 인해 제도 정비에만 수년을 소비했다.

그나마 이번 시행령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의학연구에 숨통이 트이게 됐음은 환영할 일이지만,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 우선 연구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과 관리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누구든 아이디어가 있으면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구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자는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데이터 공유기법인 LOD(Linking open data)가 대표적인 판이라고 할 수 있다.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한 연구에 대한 범위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시행령에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수행 또는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이에 준하는 공익을 위한 연구’는 고유식별정보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에 준하는 연구’가 어떤 연구들까지 포함하는지 모호하다.

보건의료분야에서 개인정보의 공익적 활용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돕는 홍보도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같이 개인정보 노출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게끔, 최소한의 개인정보가 연구에 활용됨으로써 최대한의 ‘공익성’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시행령만으로 부족하면 법률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덕분에 의료와 관련해서는 세계 최고의 빅데이터를 보유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앞서나갈 기회를 날리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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