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92NF Doctors ② 출간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씨

청년의사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A92NF Doctors”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다. 청년의사가 창간된 1992년 이후(After 92)에 의대에 입학한 젊은 세대 의사들 중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New Frontier(혹은 New Face) 의사들을 만나보는 코너다. 이번에는 최근 <만약은 없다>를 출간한 글쓰는 의사,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만났다. <편집자 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치열한 의료현장을 문학의 반열로 올려놓은 젊은 의사가 있다.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의료원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충청남도 소방본부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 중인 남궁인 전문의가 그 주인공이다.


2013년 5월 어느 날, ‘우리 대학병원에는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실은 것을 계기로 ‘글 잘쓰는 의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를 감히, 이 시대가 기다려 온 ‘소통하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다.

“주말에 응급실 당직을 서면서 두 세 시간 만에 쓴 <흉부외과의 진실>이라는 글이 단 몇 시간 만에 수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친구신청이 쏟아졌어요. 일개 유저(user)에 불과했던 저의 (흉부외과 현실에 대한) 분노가 ‘통하는구나’ 생각됐죠. 그때부터였습니다. 열흘에 한편씩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요.”

그 후 그는 의사들의 신춘문예라 불리는 한미수필문학상에서 루게릭 환자와 가족의 애환을 담은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부쳐>로 금상(2015년)을, 암 환자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다룬 <죽음에 관하여>로 대상(2016년)을 수상했다. 그의 글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밀도 높은 감정을 담아 읽은 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써내려간 글들은 동료 의사는 물론 학생, 주부, 언론계 등 만명에 달하는 다양한 이들을 팔로워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7월 출간된 <만약은 없다>는 남궁인 전문의의 페이스북에 게재됐던 수많은 글들 중 응급의학과 의사인 화자가 말하는 38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SNS에서도 그러했듯 입소문을 타고 초판 3,000부가 다 팔렸고, 2쇄에 이어 최근 3쇄에 들어갔다. 연일 그의 글이 회자되는 것은 응급현장에서 겪은 일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그의 남다른 감수성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 그는 루게릭 환자가 숨진 다음날 아침 일어나 글을 써내려갔는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옮길 때마다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의료현장에서는 냉철하게 환자를 보다가도 돌아서서 세상을 떠나간 환자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감정의 골은 더 깊어만 지고 있는 것이다.

실화인 것 같으면서도 허구인 것 같은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어디까지가 진짜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허구는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모든 이야기가 응급실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이라는 의미다. 다만 그는 사실을 똑같이 기술하는 것은 문학적 의미가 없는 만큼 일부 각색, 이를 테면 주인공의 대사나 상황, 묘사 등을 실감나게 바꾸는 작업을 거쳤다.

독자가 글을 만들어줬다

평범한 의사인 그가 작가로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수년간 다져온 그의 내공이 바탕이 됐다.

남궁인 전문의는 “특별히 글을 쓰는 것을 배운 적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면서 “문학의 아름다움이 좋아 고등학교 시절에 문학회 활동을 했고, 작가 지망생 친구들과 어울리며 좋은 글은 따라 써보곤 했다”고 말했다.

또 “사실 시를 좋아해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운문으로 많이 써왔는데 압축적인 형식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보니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 했다”며 “그래서 산문으로 풀어 낸 것인데 더 잘 읽히고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고 해서 계속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은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슬프거나 재미있거나 어떤 성격의 글이든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더욱이 그는 독자들의 애정어린 반향이 글을 계속 써내려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온라인에 글을 올리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의 답글이 달리는데, 단순히 잘 읽었다는 내용 외에도 본인들의 감정을 진솔하게 적어주시는 분들도 많다”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제 자신의 글도 발전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야기로 세상과 통하고 싶다

의사로서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그는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일보, 허핑턴포스트, 피키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글을 투고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하루 한시간씩은 꼭 할애해서 페친들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 글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고.

“첫 단행본을 출간하고 나니 비로소 작가로서의 제 위치를 찾은 느낌이 들어요. 의사가 아닌 환자가 주인공인 단편 소설과 여행작가로서 서정적인 여행기를 써보고 싶어요. 사실 도전하고 싶은 분야의 글이 많아요. 그래서 당분간은 작가로서 열심히 활동해 볼 생각입니다.”

그의 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재능기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선천적인 장애를 지닌 아이들을 돕고자 다음카카오의 ‘스토리 펀딩’을 시작한 것이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해 소아과 전문의를 꿈꾼 적도 있다는 그는 아이들의 꿈을 위해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응급의 남궁인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그의 스토리 펀딩은 총 10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3화 연재만으로 목표 기부금(300만원)의 80%를 모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뷰 내내 환자와 독자들의 에피소드를 펼쳐보였던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의 글이 세상과 만나 소통하듯,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보다 널리 알려지길 바란단다.

그는 “많은 의사들이 의료현장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알리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너무 공격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다”면서 “의사 동료로부터는 공분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정작 중요한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 글을 통해 불합리한 보건의료제도는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면서 “신중하게 글을 써서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업(業)은 결국 의사라는 남궁인 전문의. 환자를 돌보는 의사이자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로서 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조우섭 인턴기자/양금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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