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서울 강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의사인 학생 손들어봐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 지역 대로변에 소아과·내과·정형외과 동네의원이 줄줄이 있건만, 그 초등학교에 의사 학부모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의사들이 개업은 ‘강북’에 해도, 집은 ‘강남’에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아이들 교육 환경에 따른 선택이라고 말한다. 정확히는 좋은 학원 때문이지 싶다. 이런 연유로 서울 대치동에는 경기 동남부 지역 근무 의사들이, 목동에는 경기 서부, 인천권 병원 의사들이 많이 산다.


20년 전 국군대구병원에서 군의관 하던 시절, 병원에는 경북의대·영남의대 등 대구 출신 군의관이 많았다. 전역이 가까워지자 다들 병원 근무처를 알아보는데, 같은 과 전문의인데도 영천·문경 등 경북 지역 병원 의사 월급이 대구시(市) 병원보다 거의 두배 많았다. 자동차로 고작 한 시간 거리인데도 경북 지역 병원은 그만큼 의사 구하기가 어려워 연봉이 높았다. 차이가 너무 큰 이유를 묻자 “대구 출신 의사들은 대구 떠나면 죽는 줄 압니더~”라고 말했다.

그나마 그때는 의사들이 자기가 자란 지역의 의대를 많이 갔고 그 도시를 일터로 삼았다.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10여년간 의대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방 의대 정원의 절반을 서울 학생이 차지한다. 이들은 대부분 강남·서초·강동 등 강남 3구와 분당·목동 지역 학생들이다. 재수 삼수도 많다. 강원의대·제주의대에는 그 지역 학생이 매우 귀하다. 더욱이 지방 의대 졸업생의 20~40%는 인턴·레지던트를 하러 수도권 병원으로 올라온다. 전국 41개 의대 수석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서울 대형병원에 와있다. 지방의대 교수들 사이에선 “기껏 의사 만들었더니 서울에 다 뺏긴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나온 국회예산정책처의 의료 인력 종합보고서를 보면, 전문의 1인당 인건비가 울산이 2억6,300만원으로 가장 높다. 서울이 1억3,200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서 멀수록, 대도시서 떨어질수록 의사 연봉은 올라간다. 전국 의사 10만명 중 95%가 도시에 있고, 열 중 여섯은 6대 도시에 몰려 있는 탓이다(대한의사협회 2014년 전국회원실태 보고서). 울산은 경제수준이 높고, 병원이 많아서 의사 연봉이 세다. 치매병원과 노인요양병원이 산속에 있을수록 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 의사 월급이 올라간다. 한강 이남, 대전 이남으로 나눠서 의사 월급이 팍팍 달라진다는 것은 오랜 의료계 관행이다. 문제는 의사들의 대도시 선호와 지역 균형 발전의 지체로 지역 간 의료서비스 불균형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민간 병원이 국내 전체 의료기관 중 90%인 우리나라는 병원 의사 연봉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 인공관절·척추 수술 많은 정형외과·신경외과 전문의 연봉이 세다. 수술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붙이는 연봉 체계이어서 유달리 그렇다. 수익률이 높은 MRI 검사와 건강검진이 많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연봉이 높다. 대다수가 여자 의사인 산부인과의 경우, 야간 분만 당직 서는 남자 전문의는 없어서 못 구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을 국가 의료서비스의 근간으로 삼는 나라에서 지역에 따라 진료 과목에 따라 의사 연봉이 이처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 수가 체계의 모순과 잘못된 의료 인력 수급이 지나친 의사 연봉 불균형에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지역할당 의대생 선발 규모를 늘리고, 의료 취약지 지방 병원에 정부 지원을 키워야 한다. 직역간 의료 수가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의사 연봉 격차 줄이기가 의료서비스 균등 발전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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