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약품 ‘에피네프린-아미오다론’, 사용권한 두고 ‘논란’

그간 구급대원들은 심장이 뛰지 않을 때 투여하는 에피네프린(epinephrine, 부신호르몬제)과 아미오다론(amiodarone, 부정맥치료제) 등의 약물을 응급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해당 약물을 구급차에 구비하도록 했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들의 바람과 달리 현재 해당 약물을 현장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다.

지난해부터 119구급차에 실리게 된 아미오다론과 에피네프린


복지부가 응급의료법 개정과 함께 실시한 ‘스마트의료지도’ 시범사업에서 응급구조사들이 의사지도 하에 약물사용을 포함한 보다 전문적인 심폐소생술을 하도록 하자 환자의 현장 회복률이 무려 3배가 높아졌다.

의료계에선 응급구조사의 에피네프린 등의 약물 사용권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해당 약물이 생명이 위중한 환자에게 사용되는 전문의약품인 만큼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 등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일각에서와 같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은 않다.

현재 구급차 구비 의약품인 에피네프린과 아미오다론은 구급차에 탑승한 의사 등에 의해서만 투여될 수 있다.

119구급차에 구비해야 하는 의약품은 ▲[일부개정]비닐팩에 포장된 수액제제(생리식염수, 5%포도당용액, 하트만용액 등) ▲[추가]에피네프린(심폐소생술 사용용도로 한정)▲[추가]아미오다론(심폐소생술 사용용도 한정) ▲주사용 비마약성진통제 ▲주사용 항히스타민제 ▲니트로글리세린(설하용) ▲흡입용 기관지확장제가 해당된다.

서초구소방서 전현주 팀장은 “지난해부터 에피네프린 20앰플, 아미오다론 6앰플 이상을 실을 수 있게 됐지만 의료지도를 받아도 투약은 못 한다”면서 “의사들이 동승했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응급구조사는 1급과 2급으로 구분되는데 1급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해선 대학(교)에서 응급구조학을 전공하고 1급 응급구조사 국가시험에 응시하거나 2급 응급구조사 시험(기본응급처치학, 기본응급환자관리 등)을 거쳐, 3년 이상의 업무경력을 쌓은 뒤, 1급 시험(기초의학, 응급환자관리, 전문응급처치학 등)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최상급 응급구조사인 1급 응급구조사들도 심정지 환자에게 에피네프린 등의 약물을 투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에 대해 한 구급대원(1급 응급구조사)은 필요시 에피네프린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1급 구급대원들은 대학병원 응급실 등에서 2~3년 트레이닝을 받고 경력직으로 온다”며 “구급대원들이 에피네프린 등을 사용할 역량은 충분하다”고 피력했다.

국내 2급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기본 심폐소생술, 부목 등을 이용한 사지 및 척추 고정, 외부출혈의 지혈 및 창상의 응급처치, 심박·체온·혈압 측정 등이다

1급 응급구조사들은 여기에 더해 ▲기관내 삽관 ▲정맥로 확보 ▲약물투여(저혈당성 혼수시 포도당을 주입하거나 흉통 발생시 니트로글리세린 설하(혀 아래)투여, 쇼크시 수액투여, 천식발작시 기관지확장제에 한해 약물사용)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1급 응급구조사들의 업무범위 중 기관지확장제 분사 외에는 모두 원격화상이나 통화 등으로 의사의 ‘직접의료지도’를 받아야 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직접의료지도는 심정지나 급성심근경색 등의 우선순위 1단계(신속한 주의를 요하며 지연시 생명손실이나 기능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환자)에 의무화돼있고, 우선순위 2단계(우선순위 1단계보다는 중증도가 약한 환자로 응급진료가 요구되나 당장 생명이 위험하지 않은 경우)에는 1급 응급구조사에 한해 상황에 따라 간접의료지도(지침)에 따라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응급구조사 에피네프린 쓸 수 있게 해보니 소생률↑

복지부가 최근 시행한 시범사업에서 의사의 지도하에 응급구조사들이 에피네프린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 심정지 응급환자의 회복률이 크게 증가했다.

복지부와 국민안전처가 공동으로 운영한 ‘스마트의료지도’ 시범사업(2015년 8월~2015년 12월) 결과, 의사가 웨어러블기기 및 스마트폰 등으로 에피네프린 등 약물투여를 포함한 응급처치를 지도한 이후 심정지 응급환자 현장 회복률이 3.1배 높아졌다.

다만, 이 시범사업은 의사의 스마트 의료지도 하에 응급구조사가 현장에서 호흡 및 기도보조기, 감시장비, 약물 등을 이용해 시행하는 현장전문소생술(Smart Advanced Life Support, SALS) 등 응급처치 전반에 관한 것이어서 약물사용에 의한 결과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번 추후 확대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응급구조사의 약물사용 등을 포함한 업무범위 확대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범사업은 서울 지역을 제외하고 지방을 중심으로 9개 의료기관(19개 소방관서)에서 실시됐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스마트의료지도 시범사업은 응급구조사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정말 효과적이고 국민안전이 확보되는지 살펴보기 위한 일환”이라면서 “추가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난 후 평가를 통해 (업무범위 확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응급의학과 및 심장의학과 등 관련 의료계 전문가들의 논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본부) 내부에서는 소방대원들이 해당 약물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아직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며 “의료계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증을 거쳐 의견이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구조사들의 역량은 해외에 비해 떨어지지 않지만, 상이한 의료체계 등의 환경을 고려해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응급구조사들은 미국 등의 ‘Paramedic’과는 업무범위가 다르지만, (이후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업무범위가) 같아진다고 해도 한국 응급구조사들은 곧 적응할 수 있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의료계의 논의가 먼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미국 등과 한국은 응급구조사 체계뿐 아니라 의료체계도 다르고 사후관리 문제도 있다”며 “현재 (의사에게) 전화해서 이송된 환자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야 알 수 있는 시스템에서 ‘약을 쓰는 게 좋다’, ‘법을 개정해 달라’ 등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구급대원들이 병원에 이송된 환자의 예후를 보거나 의료기록을 열람할 수 없고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면 임무가 완료되는 상황인데, 병원 전단계에서 약물만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 대한 우려다.

그는 “응급구조사들이 현장에서 에피네프린이나 아미오다론 등의 약물을 쓰는 것이 나은지 충분한 연구로 데이터를 축적해 예후가 좋아졌는지 분석하고 법이 개정되면 부작용 등의 추가교육 등을 거쳐 약물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본다. 만약 더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우리는 그동안 실력을 기르고 있겠다”고 전했다.

“외국에선 응급구조사들도 다 하는데 …”

국내와 달리 미국의 최상급 응급구조사인 긴급의료원(Paramedic)과 영국의 전문 응급구조사 등은 심정지 환자 발생시 에피네프린 등의 응급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상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비교(광주광역시동부소방서 연구반이 수행한 '병원 전 단계 심정지환자 소생률 제고방안' 연구, 2013년)


그 외 기관내삽관이나 정맥라인 투여 등의 응급처치도 지침에 따라 단독으로 실시할 수도 있다. 의사의 의료지도를 통하지 않고도 응급구조사의 처치가 가능한 것이다.

미국 등의 경우엔 주로 지침과 평가에 따라 관리되는 간접의료지도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간접의료지도 확대나 약물사용으로의 업무범위 확대의 필요성이 일부 소방대원들과 응급구조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내 또 다른 구급대원은 “심정지 발생시엔 압박을 하고 AED(자동제세동기)를 붙이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굉장히 급박한 상황인데 전화도 해야 해서 처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에피네프린의 경우 미국심장협회에서도 심정지 환자에 사용하도록 권고(Class Ⅱa, 유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필요에 따라 병원 전단계에서 응급구조사들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영국뿐 아니라 일본의 경우도 최상위급 응급구조사인 ELST(구명사, Emergency life saving technician)의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가 업무범위에 포함돼있다. 하지만 에피네프린 투여 자격을 얻기 위한 별도의 과정이 마련돼있다.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고대안산병원 응급의학과 문성우 교수)이 복지부 연구용역(2014년)으로 수행한 ‘119 구급대원 의료지도체계 구축방안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서 ELST가 에피네프린 투여 자격을 얻기 위해선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1번 이상의 직접 투여를 경험한 뒤 해당 지역 지도의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포도당 투여나 기관삽관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추가 교육과 지역 지도의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또한 구급대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2년에 128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어 국내(보수교육 매년 4시간 이상)에 비해 비교적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응급의학과 “긍정적이지만 일정 수준의 추가 교육은 필요”

일부에선 의사들이 응급구조사의 업무확대를 반대하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방대원들과 응급현장을 함께 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중에는 응급구조사들의 업무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일정 수준의 추가적인 교육과 자격요건을 전제한 경우다.

서울대병원 이의중 응급의학과 교수는 “업무확대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업무확대를 어떤 조건으로 할 것인가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1급 응급구조사들이 (현재) 응급실 근무 경험이 있다고 해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약물사용뿐 아니라 전반적인 고급심폐소생술과 관련된 기도유지, 정기적인 치료 등과 관련해 추가로 교육 해야 한다”며 “(심정지 상황에서) 약물을 사용할 때에는 여러 사람들의 손발이 맞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정지 환자의 경우 약물을 주입하는 역할 뿐 아니라 가슴압박 등의 역할과 협업이 잘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직접의료지도에 대해선 훈련이 충분하다면 생략될 수도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심폐소생술시 약물은 하나의 도구인데 그 도구를 이용하려면 상황에 대한 리더십이 강해야 한다”며 “(역할을 고려하면) 두 사람만 출동해선 안 되는 문제도 있는데 서울지역 구급차는 3명이 타지만 타지역은 2명이 탑승할 때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법적으로 허용이 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훈련 등을 거쳐 자격요건을 검증한 경우라면 직접의료지도가 꼭 필요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고대 산학협력단도 앞서 보고서를 통해 에피네프린 사용을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단, 이에 따른 교육과 모니터링, 피드백 등의 장치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산학협력단은 “에피네프린 효과에 대한 논란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 사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사용에 따른 술기적인 문제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을 감안해 업무범위에 포함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잘못된 약물 사용으로 불거질 수 있는 안전성 문제를 고려해 이같은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대상으로 응급구조사들에게 약물 사용에 관한 권한을 준다면 국민이 ‘실험대상’이 됐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에피네프린만 심정지 환자를 전적으로 살리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약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 “많은 약이 있는데 (하나의) 약을 사용하는 전권을 달라고 한다면 국민으로서도 자신들을 실험대상으로 했다는 논란도 있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이어 “의사의 정확한 처방과 진단 하에 약물을 주는 게 맞다. 응급구조사의 판단으로 약물을 써야 한다는 데에는 논리가 빈약하다는 입장”이라며 “땅 면적이 넓어 환자 후송에 수시간이 걸리는 미국이라면 몰라도 국내의 경우는 병원접근성이 좋지 않나. 빠른 이송체계가 우선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의사의 지시 하에 응급구조사가 에피네피린 등을 사용하도록 한 ‘스마트의료지도’ 시범사업 지역을 확대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시범사업은 경기·인천·광주 7개 권역 9개 응급의료센터에서 140여명의 의사와 19개 소방관서 780여명의 구급대원이 참여했으며, 예산은 10억원이었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내년 예산이 확정된다면 약 3개 거점을 추가해 실시할 예정”이라며 “시범사업 이후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면 (응급구조사의 약물 사용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29명당 1명꼴인 175만여명이 119구급차를 이용했다. 서울의 경우 구급차 1대가 담당하는 인구는 약 6만7,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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