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A의 터무니 있는 이야기-박종연 보건의료근거연구본부장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큰 요즈음 국민의 건강행태와 의료서비스 이용에 미치는 건강정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이나 SNS와 같은 첨단 정보매체의 발전에 따라 생산되는 건강정보의 양과 유통·확산되는 속도,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를 정보기술에 따른 다양한 역기능들로 인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에서 ‘정보위험사회’로 정의하기도 한다.


정보네트워크의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역기능은 상업적 이해와 연계될 때 더욱 심각해질 수 있는데, 활막육종이라는 희소암에 걸린 중국의 웨이쩌시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2년여 동안 방사선과 항암제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자 중국의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서 해당 질병을 검색했고 검색창 최상단에 있던 병원을 믿고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 병원의 치료 방법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것이었고, 결국 그는 치료비만 탕진하고 지난 4월 사망했다. 사후 조사 결과, 그가 검색했던 정보는 허위과장 병원 광고였다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졌다.

그간의 의학과 의료기술의 발달이 수많은 질병이나 건강문제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로 인해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적인 예로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물질의 발견은 우리 인류를 많은 전염병들로부터 지키게 되었지만,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을 초래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서는 질병에 대한 정보의 미비와 함께 잘못된 정보의 과잉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불안과 공포에 빠졌던 경험을 한 바 있다. 최근 새로운 치료법과 의료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파고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인공지능(AI)과 같이 의료와는 관련 없을 것 같았던 분야의 기술발전이 의료와 융합되고 있다.

의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폭증하고 있는 건강 관련 정보의 홍수 속에서 향후 우리 사회의 의료시스템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기대되는 한편, 이러한 변화가 보건의료 부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드는 것 또한 현실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60년대 후반 이후를 산업사회에서 위험의 생산과 분배가 핵심문제로 부상하는 위험사회로 본다. 여기서 위험은 현실화된 재난보다는 잠재적 위험을 말하며,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으로서의 위험이나 불확실성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산업화된 사회에서의 잠재적 위험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다. 서구 산업사회에 비하여 단기간에 급속하게 진행된 압축 성장의 부작용, 부정부패나 관리소홀로 인해 인재(人災)로 치부되었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부터 최근의 세월호 사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비극적 상황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위험사회에서 개인은 다양한 사회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이자 위기와 위험을 스스로 해결해 가야 하는 존재로서 오직 자신밖에 믿을 곳이 없게 되었고, 스스로의 위험 관리를 위하여 다양한 정보를 추구하고 그것을 근거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정보의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현실에서 생산·유통되는 많은 건강정보들의 근거가 모호하다는데 있다. 의료 영역의 특성상 전문성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출처조차 불분명한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에 대한 무차별적 노출이나 무비판적인 수용은 결국 국민의 건강행태나 의료서비스 이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침으로써 국민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의료자원을 낭비하는 사회적 해악으로 귀결된다. 의료적 처치나 약물 투여 등은 그 자체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질병이나 증상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환자들에게 시술되거나 적용하기 위한 의료기술에 대해서는 그 위험이나 효과의 정도, 때로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요구되고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국가적으로 필요하다.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제도는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정보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제도만으로는 미흡하다. 위험사회를 살고 있는 국민의 건강보호를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의 눈높이에서, 환자의 가치를 반영한 신뢰도 높은 건강정보의 생산이 필수적이다. 특히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로 환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웠던 의료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문정보 유통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때 질병의 진단·치료·예방을 위해 안전하고 비용효과적인 보건의료기술을 연구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전문가 시각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도록 근거에 기반한 전문정보를 확산하고, 그릇된 정보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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