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호스피스 기관 중 병동도우미 제도 도입기관 27%에 그쳐

호스피스 급여화 후에도 말기 암 환자 간병비 부담 여전해

지난해 7월 완화의료 전문기관에서 말기 암 환자를 진료할 경우 환자 1인당 일당 정액으로 30만1,576원의 건강보험 수가를 주는 ‘호스피스·완화의료 건강보험 급여화’가 시행됐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수가 적용을 통해 환자 부담을 완화하고 존엄한 임종을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복지부의 계획과 현실은 아직 거리가 멀다. 현장의 호스피스 전문가들은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급여화가 됐지만 복지부가 바라는 환자 부담 감소와 호스피스 서비스 확대가 아직 요원하다고 말한다. 급여화 당시에도 지적됐던 ‘환자의 간병비 부담’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병인 직접고용 풀려도 해결 안돼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서는 최근 ‘완화의료 도우미(간병)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호스피스 서비스 급여화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도우미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사실 도우미와 관련해서는 당초 급여화가 확정됐을 때 정했던 기준인 ‘의료기관이 직접 고용 시에만 수가 지급’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준에서 삭제되고 ‘몇몇 전문기관에서 도우미를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의료기관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도우미 수가가 너무 낮기 때문에 직접고용 기준을 없애는 것만으론 도우미 서비스 확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도우미 수가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 3인당 도우미 1명을 고용해야 하며, 이 경우 환자 1인당 8만원의 수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도우미가 24시간 근무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환자 3명당 도우미 4.8명을 고용해야 실질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장에서는 이같은 상황에서 환자 1인당 하루 8만원의 수가로는 도우미를 고용하는 의료기관이 많지 않고, 이로 인해 여전히 환자가 개별 간병인을 고용해 간병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날 심포지엄에서 ‘완화의료 도우미제도의 수가적용 1년간의 경험’을 주제로 발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살펴보면 간병서비스 제공기관 수는 전체 73개 호스피스 전문기관 중 20개(27.4%)기관 뿐이다.

종별로 살펴보면 상급종합병원이 15개 기관 중 2곳(10%), 종합병원이 38개 기관 중 12곳(60%), 병원이 9개 기관 중 4곳(20%), 의원이 11개 기관 중 2곳(10%)으로, 종합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종별 모두에서 도입율이 낮다.

심평원에서는 도우미 서비스 제공기관이 총 20곳으로 전년 대비 10배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2곳이라는 수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는 점과 그 사이 도우미 서비스 급여화가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10배’라는 수치로만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무리다.

호스피스 기관의 도우미 외면 이유

호스피스 전문기관에서 도우미제도를 활용하면 환자가 늘어 병상가동률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학회에 따르면 도우미제도를 활용하면 병상가동률이 평균 20% 정도 높아져 어느 정도 적자 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변수는 의료기관 경영자의 선택이다.

학회 한 관계자는 “전문기관 중 종합병원의 경우 60% 정도가 도우미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의사결정 단계가 적기 때문에 빠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의사결정 과정이 더디기 때문에 도입에 소극적”이라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이미 병상가동률이 80~90%에 이르고 있어 도우미제도 도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완화의료 도우미 미도입기관의 경험’을 주제로 발표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도 ▲환자안전 ▲말기임종과정에서 가족의 역할 축소 등의 문제로 도우미 도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성모 호스피스센터는 현재 도우미 1명당 환자 3명을 봐야 하는 구조가 현실적으로 1개 병실에 4~5명이 입원하는 호스피스 병동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인실의 경우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고 다인실의 경우 병실 내 환자 수에 맞춰 병동도우미를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실에 맞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급여화 후 호스피스 기관에서 도우미제도를 시행하면 환자 개인적으로는 간병인을 고용할 수 없고 의료기관이 고용한 도우미를 활용해야 하는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이런 시스템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학회 관계자는 “환자 곁에 가족이 있으면 좋지만 가족이 간병을 하려면 직장을 그만두는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서울성모병원 같은 경우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가족 간호가 가능한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겠지만 현실적인 괴리감이 있다”며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간병 부담은 여전히 보호자 몫

상황이 이렇다보니 완화의료 서비스와 도우미 서비스 모두 급여화가 됐지만 여전히 말기 암 환자의 간병 부담은 환자와 보호자의 몫으로 남아있고, 그 부담은 여전히 한 달에 수백만원에 이르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간병 부담이 말기 암 환자가 여전히 호스피스 기관을 꺼리는 이유라고 분석하고 있다.

학회 한 관계자는 “호스피스 서비스가 급여화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스피스 기관을 찾은 말기 암 환자가 도우미에 대한 내용을 알고 나서 이를 감당할 수 없다며 입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도우미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을 했다가도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서비스 확대를 위해 경제적 이유로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용이 늘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도우미를 고용하지 않는 기관이 많다면 결국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해 호스피스 서비스 급여화 혜택도 포기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우미 수가 올리고 당연지정제 하자

현장에서는 호스피스 기관의 도우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환자 1인당 8만원인 수가를 10% 정도 올리고, 대신 ‘도우미제도 도입 당연지정제’를 시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즉, 1인당 8만원인 수가를 8만8,000원으로 인상하는 대신에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는 무조건 도우미서비스를 제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회 관계자는 “처음 제도를 도입할 때 도우미 수가를 환자 1인당 8만원으로 책정했는데, 임금 외 관리료에 대한 계산을 못한 부분이 있다”며 “그런 부분을 감안해 10%만 인상해도 도우미 고용으로 인한 의료기관의 적자는 상당부분 해결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수가를 인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가 인상과 함께 호스피스 기관에서는 무조건 도우미를 고용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호스피스를 원하는 말기 암 환자들이 부담없이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지원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양병원 호스피스, 또 다른 뇌관?

호스피스 전문가들이 급여화 1년만에 도우미 문제를 또 다시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이대로 말기 암 환자들이 호스피스 기관을 떠나기 시작하면 그 환자들이 요양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지금도 경제적 이유로 호스피스 기관이 아닌 요양병원을 찾는 말기 암 환자가 많은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요양병원 호스피스 수가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이대로 요양병원에서도 호스피스 급여화가 현실화된다면 호스피스 기관을 찾는 환자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다.

학회의 경우 다학제 접근이 필요한 호스피스 서비스를 요양병원에서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는데, 지금처럼 호스피스 기관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이라면 말기 암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를 단순히 호스피스 기관과 요양병원 간 환자 뺏기가 아닌, 제대로 된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 차원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호스피스 서비스는 다학제 체계기 때문에 요양병원에서는 제공하기 어렵다. 호스피스 기관에 도우미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하면 말기 암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이동하는 빌미를 주는 것”이라며 “호스피스 전문기관에 도우미가 정착돼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를 호스피스 기관과 요양병원 간 갈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말기 암 환자의 삶의 질을 생각했을 때 어떤 서비스를 받는 것이 나은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급여화 1, 평가계획도 아직 없어

호스피스 전문가들은 급여화 1년 만에 제도 자체가 사장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지만 정작 1주년 평가 등을 진행해야 하는 정부에서는 느긋하다. 아직 급여화 1주년 평가 계획도 잡지 못한 모양새다.

학회 관계자는 “급여화 진행을 담당했던 복지부 사무관과 담당 과장은 이미 교체됐다. 지금은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심평원에서 해야 하는데, 심평원도 인력이 모자란 상황”이라며 “이번 주에 만나 평가방향을 논의해보자는 연락은 받았지만 지금 속도로 봐서는 9~10월이 넘어야 평가결과가 나오는 등 계속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7월만 해도 복지부에서 의욕적으로 홍보도 하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며 “말기 암 환자 문제도 아직 해결이 안됐는데 비 암성질환(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까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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