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펙스 2016서 Jazz Impact 마이클 골드 박사 특별 세션 마련

대화는 상대방과 나의 즉흥연주…환자와 ‘취약성 기반 신뢰’ 형성 해야

IBM, 존슨앤존슨, 메이요클리닉, P&G, 지멘스, 스타벅스. 이름만 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이들 기업과 의료기관에는 공통점이 있다. 고객, 혹은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과 ‘공감’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고민을 한 이들이 찾은 해법 중 하나는 ‘JAZZ’였다. 재즈 임팩트(Jazz Impact)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마이클 골드(Michael Gold)박사를 초청해 재즈를 통해 고객, 환자와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환자경험과 서비스디자인을 주제로 열리는 국내 최대 행사인 ‘HiPex(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하이펙스)’에서도 올해 골드 박사를 초청해 재즈를 통해 배우는 공감의 기술을 전파했다. 마이클 박사 강연의 핵심은 ‘대화는 상대방과 내가 하는 즉흥연주’라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불확실성을 다루는 재즈

재즈 앙상블은 각 멤버들이 서로 리더(leading)와 조력자(supporting)의 역할 주고받으면서 각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최상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메이요클리닉은 이같은 수평적 관계가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골드 박사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재즈의 즉흥연구기법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재즈 뮤지션들은 즉흥연주를 하면서 협업(앙상블)안에서 불확실성(uncertainties)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오랜 시간 연마해 왔다. 재즈 앙상블에서 뮤지션들끼리 혹은 청중과 상호작용을 하며 즉흥연주를 하는 모습으로부터 21세기의 조직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 박사는 “재즈는 불편한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의 경험을 혁신하는 것은 편한 것만은 아니다. 불편한 것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골드 박사의 강연은 재즈를 통해 환자와 공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후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즈연주를 들으면서 이를 깨우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골드 박사와 함께 무대에 오른 트럼펫 연주자 류제훈, 드럼 연주자 강태식, 기타 연주자 김정배 등이 즉석에서 재즈연주를 하며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또한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골드 박사와 대화를 주고받고 한국어 해설을 곁들이면서 이 무대를 함께 꾸몄다.

골드 박사와 국내 연주자들은 하이펙스 이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당연히 같이 연주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재즈라는 장르가 그렇듯 이들은 공백이 많은 악보를 공유하며 멋진 앙상블을 보여줬다.

골드 박사는 연주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언어라는 매우 잘 구조화된 도구를 이용해 즉흥연주를 일상생활에서 하고 있다. 재즈에서의 즉흥연주 역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잘 짜인 재즈 음악의 구조와 약속을 기반으로 즉흥연주를 한다”고 말했다.

강연 내내 골드 박사가 강조한 것은 ‘재즈=잘 짜인 즉흥연주=의료기관 종사자와 환자의 대화’라는 것이었다.

재즈의 즉흥연주와 대화

골드 박사는 자신의 강연을 통해 하이펙스 참가자들이 세 가지를 얻을 수 있길 바랐다. 첫 번째는 재즈 앙상블은 ‘함께’ 만들어간다(co-create)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하면 환자가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 직원의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는가를 알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재즈의 즉흥연주에서 연주자 서로가 서로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보완해주는 것처럼, 의료기관을 찾는 것 자체가 취약성을 전제로 하는 환자와의 대화에서 어떻게 이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의료기관 종사자가 환자와 대화에 집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골드 박사는 “환자경험 만들기는 직원으로서 나의 경험도 만드는 과정이다.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것은 손님이 상점에 가는 것과 달리 ‘취약성’을 안고 오는 것이다. 이들과 대화에서 ‘취약성 기반의 신뢰’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그냥 듣는 것이 아닌, 공감적 듣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수술과 치료에서는 잘 구조화된, 클래식 음악 같은 구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환자경험을 다루는 데 있어서 구조는 단순화하고 어떻게 즉흥연주를 할 수 있을지를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즉흥의 기술

골드 박사는 재즈 연주자들이 즉흥연주에 사용하는 기법이 의료기관 종사자가 의료기관에서 하는 역할과도 일치한다고 언급했다.

재즈의 즉흥연주에는 ▲Holding On ▲To Let Go ▲Staying In Place 등의 연주기법이 있다. 홀딩 온은 솔로(리드)의 연주를 따라 반복하고 솔로의 음을 인지하고 확인시켜줌으로써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투 렛 고는 솔로가 자신의 표현방식을 더 확장하고 개방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리듬 파트는 솔로가 자신의 영감(intuition)을 따라가고, 자신이 연주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격려한다.

마지막으로 스테잉 인 플레이스는 솔로가 처음보다 더 나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도전하면서도 안정감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으로, 솔로가 즉흥연주 속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의미를 찾아내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골드 박사는 이들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의료기관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우선 홀딩 온의 경우 환자(솔로)가 자신의 위험과 취약성 앞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투 렛 고는 긍정적인 질문을 통해 환자가 병원의 조언과 치료를 따라가면서 자신에게 어떤 긍정적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에 대해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잉 인 플레이스의 경우 ‘누구에게나 제약사항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환자경험 개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수가가 너무 낮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지만 언뜻 자유롭게 연주할 것 같은 재즈 뮤지션들도 여러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서로 리드하고 도움을 주면서 연주를 하듯이, 의료기관에서의 환자경험 개선도 여러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환자와 만날 때 나의 기대, 판단, 가정, 편견, 믿음, 우려사항들을 잠시 보류하고 그 환자만의 독특한 상황에 귀 기울이는 것이 환자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공감경청의 방식이다. 우리는 보통 ‘이 환자는 이럴 것이다’라는 가정을 갖고 듣지만, 공감경청이란 ‘이 환자는 내가 생각하거나 경험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갖고 있을 수 있다’란 생각으로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펙스가 나눈 다양한 혁신 사례들

골드 박사를 초청해 마련한 특별 세션 외 올해 하이펙스에서는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혁신 사례들이 소개됐다.

각 의료기관의 사례 소개는 5점 척도에서 모두 4점 이상(▲명지병원 사례 연구(4.08점), 우리 병원의 혁신 사례 소개(4.18점), 세브란스병원의 최근 경험(4.59점), 메디시티대구 사례 연구(4.37점))의 평점을 받아 하이펙스 참석자들의 공감을 반영했다.

이들 사례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서울성모병원 고객행복팀 최진아 사원은 최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체감 대기시간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으며 대기시간보단 대기공간이 없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일반촬영실 앞에 늘어서 있는 환자들을 분산하고자 복도의 빈 공간에 의자를 설치했고 촬영실에서 순번이 된 환자를 찾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음번 진료를 보는 환자를 문 앞에 앉아있을 수 있도록 했다.

60대 이상의 노인환자가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구파티마병원에선 서관, 동관 등의 건물 색깔을 달리하고 위치 정보를 알리는 글자색과 글자 크기를 통일해 길 찾기가 수월하도록 했다.

맞춤형 진료안내문을 통해 외래환자들의 편의성과 병원 인력의 퇴사율을 모두 개선한 병원도 있었다.

강동경희대병원 이우인 QI실장은 “병원 보조인력 퇴사 이유 1위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안내를 하기가 어렵고 난해하다는 것이었다”면서 “개인 처방단위의 EMR(전자의무기록) 맞춤형 안내문을 통해 77%의 보조인력 퇴직률을 52%까지 줄인 상태”라고 소개했다.

개선된 안내문에는 환자가 몇 시에 어느 검사실로 가야하고 진료별로 각각의 금기사항 등은 무엇인지 기재돼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의료도시부분에서 대한민국 대표브랜드를 수상한 메디시티대구는 여러 사업 중 병원 의료서비스개선사업 우수 사례를 공개했는데, 우선 대구가톨릭대병원의 소아재활치료 간편수납서비스가 발표됐다.

소아재활치료 간편수납서비스는 미리 진료비를 충전해 놓음으로써 차감결제 방식으로 수납절차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차감액과 잔액 등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문자로 자동 전송해 환자 보호자가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남산병원 환자경험혁신팀의 3 Easy-up 프로젝트도 소개됐다. 재활전문 병원이라 입원환자 중 대구지역 5개 종합병원에서 유입되는 비율이 76%라는 병원의 특성을 감안해 입원 전, 입원 당일, 입원 후의 프로세스를 개선해 환자가 재활과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입원 전 환자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모바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도록 모바일 홈페이지를 구축했으며, 전원을 통한 입원 시 전용 가방을 지원해 수속준비물을 짐과 따로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끝없는 혁신, 끝나지 않은 하이펙스

행사가 끝난 후 하이펙스 참가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 중 하나는 ‘내년에 또 참가하고 싶다’였으며, 또 다른 답변은 ‘참가뿐만 아니라 사례를 소개하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올해 하이펙스에서 소개한 사례 중 일부는 지난 하이펙스에서 이런 소감을 말했던 의료기관에서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시작 후 하이펙스가 항상 참가자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환자경험 개선과 서비스디자인을 주축으로 한 의료기관 혁신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안목에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가 더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매년 하이펙스를 찾는 의료계 관계자가 수백이며, 누적 참석자는 어느덧 1,000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가 혁신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길 기대한다. 혁신은 끝나지 않는다. 계속 새로운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찾고 다시 문제를 찾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혁신이다.

하이펙스 2016은 내년 6월의 하이펙스 2017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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