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내·외서 반대 목소리 높아…"심사직 인력난에 현재 수준도 유지 어려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정책에 따라 강원도 원주로 이전하면서 고육지책으로 추진 중인 ‘심사의 지원화’가 차질을 빚고 있다.

심평원은 지방 이전으로 심사위원 등 인프라 부족과 의료기관과의 소통부재 등의 문제점을 미연에 막기 위해 대도시에 있는 9개 심평원 지원에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심사업무를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되면 지원의 역할이 강화되고 본원은 심사의 전문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의료계는 물론 내부에서까지 반발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인력난 허덕이는 심사실을 또 쪼갠다?

이미 심평원 손명세 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부터 지원의 기능강화를 천명하며 종합병원급 심사의 지원화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의료계 등의 반발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지시로 지난 4월 28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이같은 개정안이 보류됐다. 심사가 지원으로 이동하면 심사의 일관성이 저해되고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알려지지 않은 문제가 있다. 지원으로 심사가 이관되면 정작 심사업무를 수행할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심사직은 수년째 인력난에 허덕이며 과중한 업무를 수행해왔는데 지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경우 지금 수준의 심사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심사뿐만 아니라 평가까지 지원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심평원 내부에서도 반발의 움직임이 적지 않다. 본원 심사직들은 물론 전국 9개 지원까지 심사업무 이관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실제 본지가 입수한 ‘심평원 실별 정/현원 현황(2016년 5월 25일 기준)’에 따르면, 본원의 부서별 인원 중 심사실의 인력부족이 유독 눈에 띈다.

심평원의 심사업무는 전체 심사기획부터 전산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운영실’과 ‘심사1실(내과계)’, ‘심사2실(신경외과, 정형외과 등)’은 전문심사를 맡고, 이의신청 및 사후관리는 ‘심사관리실’이 맡고 있다. 본원의 심사파트에 배치된 ‘정원’은 360명으로 ‘현원’은 372명이다. 하지만 이 현원에는 육아휴직, 휴직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휴직자인 ‘결원’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32명이 부족하다. 심사관련 파트에서 전체 8.89%의 인원이 부족한 셈이다.

특히 전산심사 이후 전문심사를 담당하는 심사 1실과 2실의 경우, 정원 97명과 85명에 비해 실제로 11명씩 부족하다. 비율로는 정원대비 11.3%, 12.9%의 인원이 모자르다.

지원의 경우 인력난은 더하다. 서울지원은 정원 118명 중 결원이 24명으로 19명(16.1%)이 부족하며, 수원지원은 114명 정원에 17명 결원으로 22명(19.3%)이 부족한 상태다. 그 외 지원의 정원대비 부족한 비율은 대구지원 22.4%, 광주지원 20%, 창원지원 18.9%, 부산지원 12.5% 등으로 적게는 7.78%에서 많게는 22.4%의 인력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본원의 업무를 지원으로 세분화 해 인력을 이동하게 되면 업무 효율이 떨어져 법정 기한 내 심사업무를 처리하는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심평원 한 관계자는 “지금도 정원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부서 내 과부족도 해결하지 않으면서 심사를 지원으로 옮긴다는 것은 심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6개월 이상 휴직자가 생기면 충원을 하도록 돼 있지만 정작 사람을 뽑아놓고는 다른 부서에 배치하고 있어 수년간의 심사직 인력난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사실에서 종합적으로 하던 업무를 나누면 지금보다 오히려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심사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주말 중 하루는 나와서 심사를 하고 가고, 하루 휴가를 쓰기 위해 3~4일간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원으로 옮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물론 심평원이 심사직 등 휴가자들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채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채용은 하는데, 그 인력이 심평원의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는 TF팀에 배치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정원 현황을 보면 ‘업무·인프라개선 TFT’와 ‘직무보수체계개편단’ 등에 6명과 2명의 인원이 배치됐다. TFT는 정식 직제가 아닌 임시조직이라 당연히 배정된 정원수는 없다.

심평원이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부서에는 인원이 추가로 배정되기도 했다. ‘국제협력단’은 정원이 7명인데 비해 현원이 24명으로 결원 2명을 제외하면 15명이 정원보다 많다. ‘의료정보표준화사업단’도 정원 17명에 비해 현원이 32명(결원 1명)으로 14명이, ‘연구조정실’은 37명 정원에 현원이 52명(결원 4명)으로 11명이 더 많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육아휴직 3년 연장과 여직원이 많다는 점 등으로 휴직자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심평원은 “단기간 휴직자 수가 많아 충원이 어렵다. 지난해 말부터는 휴직자의 수가 더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평균 3개월 휴직이 많은 데다 원주이전으로 인해 서울사무소에 잔류하는 직원들로 인해 인력부족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3회에 걸쳐 휴직자를 대체할 인력을 뽑고 있으며 특정 부서에만 인원을 더 충원한다거나 충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체 결원율을 기준으로 충원하고 있으며 정원증원이나 계약직 증원은 자체적으로 할 수 없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평가도 지원으로? 평가기준 제각각 우려

더욱이 심사가 지원으로 나뉘게 되면 그나마 있던 심사위원 인프라의 한계에도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이다. 심평원이 지난 2월 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상임이사 1명, 상근심사위원 40명을 증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지원별로 인프라를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진료심사평가위원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위주로 상근심사위원이 2년간 심평원 심사업무를 담당한다. 지역별로는 1명씩 지역심사평가위원장(상근)을 두고 있다. 그 외 전문심사 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7개로 나뉜 전문평가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1년에 월 1~2회씩 최대 12회 정도의 전문평가위원회 회의를 통해 심사를 한다.

그런데 지원으로 심사를 이관하게 되면 상근심사위원 정원의 일부는 지원으로 배치돼 지원에서 상주할 수 있는 심사위원을 위탁하게 된다. 이를 두고 심평원 내부에서도 지역 내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과 지역 내 유착관계 등의 문제점으로 심사 차질이 예상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평원 또다른 관계자는 “아무래도 여러 병원들이 모여 있는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해 지역에서는 선·후배관계 등 지역간 유대관계가 강해서 심사의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지역 내 대학병원의 수가 적어 전문심사를 의뢰할 심사위원 위촉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도 “각 지원별로 심사업무가 뿌려지게 되면 기준 변화가 심할 것”이라며 “특히 의원, 병원급과 달리 상급종합병원은 행위가 다양하고 중증 처치가 많은데 급여기준으로 인해 의료행위를 의사들이 기피하게 되면 결국 환자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방의 상급종합병원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데 오히려 지역과의 소통(?)이 가능해져 심사를 더 현실적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심사를 지원으로 옮기는 게 의료계 입장에서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심사를 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더 제각각의 심사를 하게 될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심평원의 원주 이전으로 인한 심사, 평가의 업무 한계가 불가피해 지원의 이관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시각도 있다.

심평원 고위 관계자는 “심평원이 원주로 가서 강원도 내에서 심사에 대한 자문을 구할 의료진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3년 뒤에 서울 잔류 인원도 원주로 이전하게 되는데 그때 가서 전문심사의 어려움을 겪으면 오히려 늦다. 어차피 원주로 가야하는 만큼, 지금이라도 순차적으로 심사업무를 그나마 사정이 나은 대도시로 이관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역 인프라를 활용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심평원 내부에서는 심사 이외에도 평가까지 지원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심평원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평가업무는 전국의 진료기록부 등의 자료를 모아서 평가기준에 따른 평가를 하고 사후관리를 하는 것인데 이를 지역으로 나누게 되면 각각의 직원들이 전반적인 평가업무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불필요한 행정 및 비용 낭비를 초래하게 되고 평가 결과에 대한 신빙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