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창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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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밀의학(또는 개인맞춤의학)에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 개인의 질병보다 인구집단의 건강문제를 주로 다루는 예방의학자이기 때문에 일견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방의학, 역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기대와 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의 “개인맞춤의학과 공중보건” 세션에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첫 연자로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에 대한 발제를 하였고 다른 두 분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중립적 입장으로 개념 소개를 하였는데, 다른 연자들은 정밀의학을 허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비판적인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좌장과 청중도 정밀의학(개인맞춤의학)을 비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른들에게 엄청 혼나고 있는 아이를 보면, 꼭 내 아이가 아니라도 끼어들어서 애가 이래저래 착한 일도 많이 한다고 변명해주고 싶은 법이죠.
정밀의학이라는 애가 그렇게 나쁜 짓만 하는 놈은 아니라고 변명을 좀 해주고 싶었는데, 학회가 항상 그렇듯이 토의 시간이 부족한지라 그냥 혼만 내고 세션이 급히 마무리되었습니다.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인데 “비판”만 있고 “대안”은 없었던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정밀의학을 위한 변명을 좀 해주려고 합니다.
알고 보면 꼭 미운 놈만은 아닌 정밀의학이 예방의학자나 공중보건학자들에게 이렇게 미운 털이 박힌 이유는 뭘까요? 정밀의학의 일부분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알려진 탓도 있습니다. 정밀의학은 개인의 임상정보와 유전정보뿐 아니라 건강관련 행태, 사회경제적 특성, 생활환경, 거주환경, 모바일 정보 등 개인에 관련한 모든 가능한 정보를 활용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적화된 예방, 진단, 치료 전략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방의학자나 공중보건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밀의학을 소개할 때 흔히 예를 드는 것이 같은 암환자라도 암 조직의 유전자 검사를 하여 사람마다 다른 개인화된 항암치료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많이 사용하는 것이 유전자 검사를 하여 어떤 질병이 걸릴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유방절제술과 난소절제술 사례가 대표적이며, 건강정책학회에서도 이 사례가 언급되었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유방암와 난소암 위험이 매우 높아서 암 예방 목적으로 유방절제술과 난소절제술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정밀의학을 옹호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례이고, 정밀의학에 부정적인 사람도 즐겨 인용하는 사례입니다. 치명적 암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이므로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유전자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완벽한 예측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전자검사만 믿고 예방적 수술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례를 이렇게 단순하게 보면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안젤리나 졸리 사례를 조금 더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당연히) 아니니 언론 기사들을 바탕으로 유추해 본 것입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어서 본인의 유전자검사를 해본 결과 유방암 위험도가 87%, 난소암 위험도가 50%로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의사가 유방절제술을 권했고, 안젤리나 졸리가 바로 그러자고 했을까요? 아마 관련분야 최고의 전문가들 여럿을 찾아서 자문을 받고 여러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본인이 내린 결정일겁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그의 경력과 사회활동으로 미루어 볼 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적으로 사회와 환경을 바꾸고 싶어하는 매우 능동적인 사람 같습니다. 주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으면서 매번 다음 번 검사까지 불안해 하면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유방절제술을 받고 암의 공포로부터 벋어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바로 정밀의학이 환자의 주도적 참여(patients as a partners)를 핵심가치로 설정한 이유입니다. 환자에게서 얻은 다양한 정보를 전문가가 해석하여 최선의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모든 정보를 환자와 공유하면서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 전략을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 정밀의학이 추구하는 핵심가치중의 하나입니다.
그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정밀의학에 대해 어떤 비판과 대안을 고민해야 할까요? 정밀의학의 진행속도와 그 파급효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동안 의학에서 추구할 지향점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시점에서 정밀의학이 실상인가 허상인가,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를 토론하는 것이 그리 중요할까요? 지금도 일부 암 치료제는 너무 비싸서 많은 환자들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병 예측이나 조기진단을 위한 고가의 검사도 일부 사람들에게만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밀의학 연구 성과가 쌓여도 그 혜택이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돈 많고 인맥 넓고 똑똑한 사람들은 온갖 검사를 해보고 그 결과를 최고의 전문가들과 상의하면서 예방 및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시대에, 또 다른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검사를 못하고 인맥이 없어서 상담 받지 못하고 배운 게 없어서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밀의학이 실상인지 허상인지를 토론하는 것보다, 정밀의학의 성과를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누리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건강한 비판과 대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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