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진료에 몸 사릴 수밖에 없다”…의협, TFT 구성해 대응

임수흠 의장 “의협 집행부, 일반 회원들과 괴리 크다” 지적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법’(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사망이나 중상해 위험이 높은 중증 환자들을 주로 진료하는 의사들은 방어 진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외과 전문의는 “앞으로 중증 환자를 봐야 하는 과를 누가 전공하려 하겠느냐”며 “중환이 오면 상급의료기관으로 보내려고 할 것이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사들이 엄살을 떨고 있는 게 아니다. 중환을 보는 의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며 “사망이나 중상해 위험이 높은 환자가 오면 3차 의료기관으로 보내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로 인한 부작용이 클 것이고 의사들의 반감만 커질 것”이라며 “의사들 사이에서는 한국의료는 조금 더 망해봐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에 의협은 TFT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의료계 내에서는 협회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협은 이날 오전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가칭)‘의료분쟁조정법령 대응 TF’를 구성해 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에 따른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의협은 TF에서 마련한 대책을 하위법령인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담아 모법인 의료분쟁조정법의 문제점을 최대한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의협은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 조항은 의료인의 방어진료를 확산시키고 건전한 진료환경을 저해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해 결국 의도와는 다르게 국민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라며 “의료인은 의료인대로 재판을 받을 권리, 직업수행의 자유, 평등권마저 침해당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비록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조정절차 자동개시 사유를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등급 1등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규정해 기존 개정안 ‘사망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의 범위보다는 그 범위를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지만 범위의 불명확성에 대한 우려가 완벽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의협은 이어 “의료분쟁 자동개시조항에 대한 문제점을 분석, 대응논리를 개발해 이를 하위법령에 담아 자율적인 분쟁 조정이라는 법 취지를 달성하고자 노력하겠다”며 “더불어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검토,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등이 참여하는 대응 TF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하위법령에 대한 논의다. 하루 빨리 TF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의협 추무진 회장이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사과 한다고 회원들의 분노가 사라지겠는가. 문제점 개선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협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협 대의원회 임수흠 의장은 “의협 집행부와 일반 회원들 간 괴리가 심한 것 같다. 지역 대의원회 의장들을 통해 지역 민심을 들어보면 심각하다”며 “하지만 의협 집행부 내에는 대한병원협회도 가만히 있는데 개원가에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임원도 있더라”고 말했다.

임 의장은 “의협은 그동안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대상에만 집중한 것 같은데 조사권 등 그 외 독소조항이 너무 많다”며 “그런 독소조항들을 고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회는 지난 19일 본회의를 열고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자동 개시하도록 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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