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의 제4의 불 - 융합과 미래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면 먼저 현대 도시의 모습부터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대 도시는 대체로 도로를 중심으로 건설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것이 자동차가 중심이다. 그런데, 최근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덜 운전을 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의 대중교통 인프라는 늘어가고, 최근 좋다고 하는 도시들에는 자전거를 쉽게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이는 어느 한 나라의 경향성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모두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 다양한 공유자동차 기업이 활성화되면서, 아예 차를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생활의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출퇴근 할 때는 물론이고 가까운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거나 쇼핑을 하러 갈 때, 놀러 갈 때 차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도시의 개념을 도입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워싱턴 DC 등의 경우에는 ‘걸어 다니는 도시’의 개념에 맞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다양한 좋은 효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차를 버리고 걷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면서 시민들의 살이 빠지고, 스트레스 레벨도 감소하며, 도시의 전반적인 교통체증도 완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차량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의 감소, 그리고 과거에는 몰랐던 도시의 명소들이나 공원, 소매점 등도 활성화가 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대중교통과 자전거, 걸어 다니는 생활패턴을 중심으로 ‘걸어 다니는 도시’를 지향하는 미국의 대도시들은 뉴욕,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가 꼽히며, 이들 도시들은 "자동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믿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차량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는데, 과거 16세가 넘으면 자유의 상징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이를 축하하면서 1인 1차량을 당연시했던 분위기가 최근에는 커다랗고, 비싸며, 위험한 인공 기계장치라고 인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개개인이 차를 멀리하면서 건강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된다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가진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렇게 걸어다니기 좋은 도시들이 많다. 중세에서 근대의 도시는 본래 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었기에, 소규모 시장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작은 상점과 레스토랑 등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이 걸어 다니기 좋은 도시라는 개념은 20세기 들어 자동차와 함께 광풍처럼 몰아쳤던 자동차를 통해 접근하는 교외의 베드타운과 다운타운 공동화 현상을 대체하면서 21세기형 새로운 도시생활의 트랜드를 만들게 될 것이다.

걸어 다니는 도시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성공사례는 아마도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일 것이다. 하이라인은 뉴욕 시에 있는 길이 1마일(1.6 km) 공원이다. 1993년 개장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영감을 얻어, 웨스트 사이드 노선으로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 사이드에서 운행되었던 1.45마일(2.33km)의 고가 화물 노선을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서 공원으로 재이용했다. 공원은 12번가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에서 30번가까지 뻗어나가 첼시 지구를 지나고, 재비츠 컨벤션 센터 근처의 웨스트 사이드 야드(West Side Yard)까지 달한다. 이 공원이 개장하면서 시민들에게 휴식과도 같은 공간이 생겼을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주변의 상권 등이 발달하는 등 다양한 부수효과를 누렸다.

국내의 사례인 제주의 ‘올레길’도 비슷한 성공사례다.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면서, 사람들이 오고 싶도록 만드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커다란 대도시의 생활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매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큰 돈을 들여서 아스팔트를 깔고, 자동차들을 위한 도로를 내고, 커다란 빌딩을 짓고 최첨단 클러스터를 만들거나 리조트를 유치한다는 멋진 계획이 사람들을 현혹하기는 쉽지만 되려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지역의 좋은 길들을 잘 찾아내고, 걷거나 간단히 자전거를 빌려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공유경제 등의 개념을 잘 엮어서 선사하는 것이 훨씬 지속가능하면서도 경제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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