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전공의 업무인가…골머리 앓는 수련병원들

A대학병원은 최근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컨퍼런스를 없앴다. 진료과마다 오전 6시~7시 30분 사이에 30분씩 진행하던 컨퍼런스를 폐지한 것은 전공의 수련시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치다.

또한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정해 그 시간에만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근무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상 처방을 내릴 수 없도록 제한된다. 진료과별 특성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병원 차원에서 몇 가지 당직표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이 모든 규정은 모든 연차 전공의에게 해당된다. 전문의시험 준비를 위해 당직 등에서 편의를 봐줬던 전공의 4년차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전공의 4년차는 뒤에서 도와주고 1·2년차들이 많은 일을 했는데 앞으로는 1·2년차도 근무시간이 끝나면 병원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1~4년차가 나눠서 해야 한다”며 “과별로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지키도록 당부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아예 근무시간 외에는 처방을 내릴 수 없도록 시스템으로 제한해 놨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과도기 동안은 사유를 넣으면 정해진 근무시간 앞뒤로 한 시간 동안은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열어 놓기로 했다”고 했다.

A대학병원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최근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수련시간을 계측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정·공포된 일명 ‘전공의특별법’에 전공의 수련시간이 주당 최대 88시간으로 명시됐기 때문이다. 전공의특별법 시행은 1년 유예됐으며 수련시간이 담긴 조항(제7조)은 2년간 유예돼 오는 2017년 12월 23일부터 적용되지만 일선 현장은 다급해 보인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항샹을 위한 법률’ 제7조(수련시간 등)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시간은 주당 80시간이며 교육적인 목적으로 1주일에 8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전공의 연속 수련시간은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되지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40시간까지 수련할 수 있다. 또한 수련병원은 전공의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전공의 업무에서 드레싱 등 제외

이같은 내용은 지난 2014년 7월 시행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에 대부분 포함된 내용이지만 법에 명시되자 현장에서 느끼는 이행 의무에 대한 체감도는 기존과 다른 모습이다. 때문에 수련병원들은 대부분 내부 TFT를 구성해 전공의 수련시간을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A대학병원처럼 구체적인 조정안이 나온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B대학병원은 현재 모든 진료과가 참여하는 TFT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다. 우선 과별로 전공의 수련시간을 조정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추가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과별 입장이 정리되면 이를 토대로 논의를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전공의 수련시간을 주당 최대 88시간에 맞추기 위해 A대학병원처럼 오전·오후에 진행되던 컨퍼런스를 폐지하거나 그 횟수를 줄이는 수련병원들이 많다. 드레싱이나 수술실 어시스트 등도 전공의가 해야 할 업무에서 빠지고 있다. 4년차에게 줬던 전문의시험 준비기간도 사라지는 모습이다.

교수들이 당직을 서는 대학병원도 늘고 있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그동안은 전공의가 부족한 과에서만 교수가 당직을 섰다면 이제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전공의 수련시간을 조정하다보니 전임의는 물론 교수들까지 당직을 서야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도 좋지만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지금도 전공의들이 수술을 직접 할 수 있는 기회가 줄고 있는데 수술실 어시스트까지 하지 않게 되면 아마 펠로우를 해야만 제대로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전공의 업무에서 무엇을 줄여야 하나

이처럼 수련병원들마다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후를 준비하고 있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최대 88시간으로 제한된 전공의 수련시간에서 어떤 부분을 빼고, 어디까지를 수련으로 봐야 하는지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전공의 수련시간 80시간에 휴식 시간(10시간)도 포함되는지 여부를 두고 이견이 있다. 고용노동부 표준취업규칙은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에 휴식 시간은 제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병원협회는 전공의 수련시간에서 휴식시간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 업무 인수·인계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수·인계 시간을 전공의 수련시간 80시간에 포함시키지 않되 그 상한을 정해 별도 수당을 산정하는 방안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수련병원 내에 있는 시간 중 개인 시간과 수련시간을 구분하는 게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기본적으로 전공의가 병원 내 있는 시간은 수련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대학병원에서는 정해진 근무 시간이 끝난 전공의는 병원 내에 머물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일선 현장의 이같은 혼란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는 수련시간, 당직시간, 휴게시간, 학회 및 학술대회 참석 등 수련시간 계측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전공의 수련시간 계측방법에 대해 “수련병원별, 전문과별 특성에 따라 수련시간 계측방법이 상이해 수련병원에서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수련시간 계측 표준이 의무적으로 각 수련병원별 수련규칙에 포함될 수 있도록 규정에 반영해야 하며 이를 통해 수련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대전협이 참여하는 전공의특별법 관련 하부규정 제정 대책 TFT를 구성해 시행령·시행규칙에 담길 내용들을 마련하고 있다.

병협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병협은 수련병원들을 중심으로 전공의특별법 대책 TFT를 구성했으며 지난 4월 8일 수련교육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토론회를 열고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후 대책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업무공백 메울 추가 인력은 어떻게?

병협은 특히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대체인력과 재정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시간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되면 인턴은 8.2시간, 전공의 1년차는 10.7시간, 2년차는 5.7시간, 3년차는 1.8시간, 4년차는 1.6시간씩 근무시간이 감소한다(‘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제와 지원체계 구축방안’ 연구보고서). 이를 대체할 인력 비율을 간호사 50%, 전임의 30%, 전문의 20%로 가정해 인건비를 계산한 결과, 4년간(2014년~2017년) 총 1,708억원의 인건비가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일선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수련시간을 조정하면서 생긴 업무 공백을 채우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정한 A대학병원은 전공의들을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등 간호사를 추가 고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PA 등 간호사 30여명을 충원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요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시하는 병원들이 늘면서 간호 인력도 연쇄 이동하고 있어 더 힘들다”며 “호스피탈리스트를 고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서울대병원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상황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림대의료원 이혜란 의료원장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반드시 대체인력 문제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대체 인력 문제가 해결되면 전공의 수련시간은 지금보다 더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료원장은 “특히 외과 쪽이 심각하다. 외과 계열은 전공의가 부족해 PA들이 많은 업무를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아 논란이 여전하다”며 “이미 전공의특별법은 제정됐으니 대체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수련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전협은 전공의특별법이 제정된 만큼 전공의 수련에 정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의료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선진국 중에 전공의 수련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며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 의료계 모든 단체가 힙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수련을 둘러싼 현장의 이같은 논란은 보건복지부가 진행하고 있는 전공의특별법 하위법령 제정 논의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전공의특별법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하기 위해 의협과 병협, 대전협이 참여하는 TF를 운영해 현재 2차 회의까지 진행했다. 복지부는 이 TF를 통해 수련병원 지정, 수련규칙 및 수련환경 평가, 수련환경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안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전공의특별법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하는 오는 7월까지 매달 TF를 열어 세부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TF에 참여한 한 위원은 “이제 두 번째 회의를 진행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며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했고 각 단체별로 마련해 오기로 한 수련규칙안 등 준비가 다 되지 않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