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전문가, 인공지능은 진료보조수단일뿐…최종 결정은 인간 의사의 몫신약과 달라 실험군, 대조군 임상시험도 불가…의사 스스로 능동적 이용방법 찾아야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알파고(AlphaGo)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공지능은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인간을 말살하는 악(惡)으로 등장하는 ‘스카이넷(Skynet)’과 아이폰 속에 살고 있는 ‘시리(siri)’였다.


전자는 인간을 위해 개발됐지만 스스로 핵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무서운 존재, 후자는 개발 목적에 맞게 인간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하는 인공지능 집사 정도로 인식돼 있다.

의료와 결합될 인공지능이 스카이넷이 될지 시리가 될지는 의사들에게 꽤 중요한 문제인데, 스카이넷이 되면 인간 의사의 존재 자체가 위험해 질 수 있는 반면 시리가 된다면 인공지능은 지금도 의사들 곁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는 초음파, CT, MRI 정도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수년 전부터 의료와 인공지능의 결합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의료와 결합하는 인공지능은 시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그 유명한 왓슨은 얼마나 쓰일까

의료 관련 인공지능 중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IBM의 왓슨(Watson)이다. IBM은 개인의료서비스 혁신을 위해 왓슨을 기반으로 하는 대규모 헬스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의사, 연구원, 의료서비스 관련 기업들이 종합적인 정보와 개인별 통찰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플랫폼이다.

IBM은 헬스케어 분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IBM 왓슨 헬스를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신설하기도 했다. 이런 왓슨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의료와 인공지능의 연결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는 척도다.

지난 16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공동 주최한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The International Symposium on Artificial Intelligence)’에는 롭 하이(Rob High) IBM 왓슨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는데, 현재 왓슨이 의료분야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던 의료계에는 별 소득이 없었다. 롭 하이가 의료분야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분야에서 왓슨의 활용도에 대한 이야기는 심포지엄이 끝난 후 이어진 오찬에서 나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 최윤섭 소장은 ▲실제 왓슨이 의료기관에서 얼마나 쓰이고 있나 ▲왓슨을 진료에 활용했을 때 실제 효과는 있나 ▲얼마나 많은 의사가 활용하고 있나 등을 물었으며, 이에 대한 롭 하이의 대답은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와 MD 앤더슨 암센터(University of Texas MD Anderson Cancer Center) 등에서 왓슨을 활용하고 있지만 전체 종양내과 전문의가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롭 하이는 향후 왓슨을 3차 의료기관은 물론 1차 의료기관에서도 활용하게 하는 것이 목표며,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와 MD 앤더슨 암센터 등에서 왓슨을 활용하면 이곳의 노하우가 왓슨에 심어져 1차 의료기관에서도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와 MD 앤더슨 암센터의 브레인을 활용하는 식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왓슨에 대해 언급한 롭 하이는 아직 왓슨이 도입된 의료기관에서도 모든 의사가 왓슨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사용하는 의사들도 왓슨을 진료 보조수단 정도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보조여야 하는 이유

의료와 결합할 인공지능이 의사의 보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인공지능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최윤섭 소장은 “의사와 인공지능의 진단이 다른 상황에서 환자가 인공지능이 제시한 치료법을 선택했다고 가정해보자. 치료 후 효과가 좋지 않다면, 이 책임이 의사, 환자, 인공지능 중 누구에게 있는지 불명확해진다”며 “결정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합리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자율주행의 경우 인공지능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차선을 바꾸고 달리고 멈출 때마다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의료는 아니다. 결국 최종 결정을 해주는 의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정지훈 교수(의사)는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공지능은 진료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 다른 의료기기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사용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같이’ 진료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비슷한 생각이다. 인공지능 분야 대표 스타트업인 뷰노(Vuno)의 이예하 대표는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은 의료의 질 향상이다. 의사들이 진단할 때 객관적인 자료를 줘서 진단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근거중심 의학이 한 단계 발전하는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은 책임질 수 없다. 도움을 줄 뿐”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 개발이 신약 개발과 다르다는 점도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신약 개발의 경우 환자를 실험군(개발 중인 신약 사용)과 대조군(기존 약 사용)으로 완전히 나눠 임상시험을 진행, 개발 중인 신약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의 경우 환자를 실험군(인공지능만으로 진료를 받는 환자)과 대조군(인간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환자)으로 나누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배제한 인공지능만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인공지능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형태의 진료서비스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내 인공지능 개발, 어느 단계일까

진료보조에 포커스를 맞춘 인공지능 개발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업체가 뷰노다. 뷰노는 현재 다양한 국내 의료기관과 연구협력을 맺고 있으며 특히 서울아산병원과는 ‘간질성 폐 질환(interstitial lung disease)’ 진단에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 개발을 함께 하고 있다.

간질성 폐 질환자가 의료기관을 찾아 CT나 MRI 촬영을 할 경우 기존 환자들 중 가장 유사한 데이터를 찾아 그 환자에 대해 어떤 진단과 처방이 내려졌고 예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시스템이다.

이예하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의료 관련 인공지능을 상용화해 수익을 내고 있는 곳은 없다. 수익을 내는 곳이 있다면 사업화 진행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은 초기단계로 봐야 한다. 그래서 국내 스타트업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오히려 국내에서 나오는 의료 데이터가 질이 높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다. 현재는 유럽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아시아 시장 진출에 유리하기도 하다. 인공지능 개발과 관련해 지금이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의료 관련 인공지능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미흡한 관련 규정을 꼽았다.

인공지능이 개발돼 의료현장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는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는 수밖에 없고, 그런 부분이 현실적인 어려움이란 것이다.

이 대표는 “인공지능이 개발돼 활용되려면 결국 수가를 받거나 비급여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의료기기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인공지능 같은 소프트웨어를 위한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기준에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며 “알파고 때문에 사회전체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의료와 인공지능의 결합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의료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의사를 보조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보조 방식’을 의사 스스로 생각해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진단과 처방을 내릴 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다면 진단과 처방 전에 인공지능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고, 환자와 대면하고 있는 중에 확인할 수도 있고, 모든 진료를 마친 후 확인 차원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이런 모든 상황을 가정한 ‘인공지능 활용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와 라뽀(rapport) 형성 등 인공지능이 절대 할 수 없는 영역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지훈 교수는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의사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의학적 판단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환자를 대면하는 기술이 중요해질 것이다. 종합적인 판단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좋은 의사’의 덕목이 바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논리적 판단보다는 환자와의 라뽀 형성 등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환자는 물론 환자 가족, 환자가 처한 사회적 상태 등 여러 가지를 같이 봐줘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의사들이 소홀히 했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실제로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태블릿을 들고 회진을 도는 상황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구로써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물론이고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 개편 등 내 책상 옆에 인공지능 보조자가 앉게 되는 시기를 고려한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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