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인 출신 DC "별도 직역 인정해야"…醫, 도수의학회 창립으로 영역 확보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정부가 또 다시 카이로프랙틱 자격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카이로프랙틱 자격 신설은 보건의료 분야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수년째 꼽혀온 아이템이기도 하다.

척추교정치료로 불리는 카이로프랙틱에 대해서는 자격 신설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의료계 모두 그 효과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새로운 직종으로 신설해 제도권 내로 흡수할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내 들어온 DC만 200여명

카이로프랙틱은 손을 뜻하는 ‘카이로(cheir)’와 실천 혹은 치료를 뜻하는 ‘프랙시스(praxis)’의 합성어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수술도 없이 수기로 신경,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하는 요법이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일본, 중국 등에서 카이로프랙틱 면허가 인정되고 있다.

카이로프랙틱 요법을 체계화한 미국은 카이로프랙틱대학(College of Chiropractic)만 18곳이 있으며 카이로프랙틱의사(DC, Doctor of Chiropractic) 5만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의사(MD, Medical Doctor)와 DC 외에 정골요법의사로 불리는 DO(Doctor of Osteopathy)에 대해서도 제한된 의료행위를 하는 직종으로 면허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등에서 DC 면허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상당수 활동하고 있다.

‘외국 및 우리나라 유사의료 운영 실태조사’ 보고서(2008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미국 등에서 DC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1980년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0~2002년에 최고조에 달했지만 2003년부터는 그 수가 급감했다.

DC 면허만 취득한 사람은 2000~2002년 46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03년 2명, 2004년 0명, 2005년 1명, 2006년 2명, 2007년 2명으로 줄었으며, 의사나 한의사 중 DC 면허를 취득한 이중면허 취득자는 1995~1996년 19명, 2000~2002년 16명으로 늘다가 2004년 이후로는 단 한 명도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흥원은 “국내에서 진료를 실시하던 카이로프랙틱 의사(DC)가 단속에 적발돼 처벌되는 등 카이로프랙틱 진료가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DC 면허를 취득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 등에서 국가공인 면허를 발급 받은 DC들로 구성된 대한카이로프랙틱닥터협회는 2015년 1월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DC를 200여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국내에서 일반적인 카이로프랙틱 교육 과정을 수료한 인력은 이보다 10배 이상 많다. 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까지 국내 카이로프랙틱 교육과정을 수료한 인력은 2,459명에 달하며 이들 중 977명이 활동하고 있는 인력으로 파악됐다.

대학 내 카이로프랙틱 교육과정이 신설되기도 했다. 한서대 건강관리학과 4년과 동 대학원 수안재활복지학과 2년 과정을 이수하면 미국 DC 자격을 얻을 수 있다. 4년제 학사소지자는 한서대 대학원 수안재활복지학과 4년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카이로프랙틱 전문가, 합법화만 해달라”

카이로프랙틱닥터협회는 충분한 교육을 받고 면허를 취득한 DC들이 카이로프랙틱 전문가이므로 국내에서도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직업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부가 ‘규제 기요틴’ 과제 중 하나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허용을 꼽은 만큼 이번 기회에 제도권 내로 진입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의사’라는 이름도 버릴 수 있다며 배수진도 쳤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명 카이로프랙틱대학 교수들에게 자문 요청까지 해 놓은 상태다.

카이로프랙틱닥터협회 안준용 총무이사는 “카이로프랙틱에 대해서만 미국 등에서 5년 넘게 공부하고 온 전문가들인데 한국에만 오면 사기꾼이 된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우리가 바라는 가장 큰 것은 범법자만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의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외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안 이사는 “피부마사지 개념이든 물리치료사 개념이든 합법 안으로 넣어줘야 한다. 카이로프랙틱사나 척추교정사로 불러도 상관없다”며 “카이로프랙틱이 도수치료라는 이름으로 의사들의 것이 돼 버렸고 추나라는 이름으로 한방의료행위가 됐다.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는 따로 있는데 어느새 그들의 것이 됐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DC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의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안 이사는 “미국 카이로프랙틱대학 교육 과정을 보면 의학 교육과 비슷하다. 오히려 방사선 교육은 더 많이 받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DC가 엑스레이도 찍고 판독한 후 치료한다”며 “임상실습교육도 받아 클리닉에서 인턴도 한다. 대학 4년을 마치고 카이로프랙틱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의대 교육과정과 비슷한데도 너무 쉽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안 이사는 “어떤 명칭으로든 합법화만 시켜 달라. 그 다음에 의사 관리·감독 하에 일하든지, 물리치료사나 간호사와 일하든지 상관없다”며 “단독개업을 할 수 있게 해주길 바라지만 현 시점에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醫 “한국과 미국은 의료체계 달라”

하지만 의료계는 현 의료제도 안에서 카이로프랙틱 자격을 신설하면 유사 의료행위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연수교육을 통해 의사가 직접 카이로프랙틱을 할 수 있도록 그 영역을 확고히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신현영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우리나라와 미국은 의료체계가 다르다. 미국은 의료접근성이 매우 제한돼 있고 의료비도 비싸기 때문에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의사(MD)가 아니더라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의료접근성도 높고 상대적으로 의료비도 싼 우리나라에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을 허용하면 유사의료, 과잉의료를 조장할 수 있으므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신 대변인은 “미국과 우리나라는 의료 관련 법체계, 학제, 의료환경, 의료비 수준 등이 모두 다르다”며 “미국에서 카이로프랙틱 자격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도 이를 공인 자격으로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DC들이 제도권 내로 진입하고 싶으면 현 체제로 들어와야 한다고도 했다. 신 대변인은 “현재 국내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 활동해야 한다. 미국에서 배우고 왔다고 무조건 인정해 달라는 것은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라며 “한국 의사들도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려면 미국 의사면허시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대변인은 “미국에서 의사면허시험을 보려고 해도 출신 의대의 교육과정 등을 꼼꼼히 본 후 인정하는 대학이어야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며 “국내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따든지 의대에 들어가 의사면허를 따면 된다”고 했다.

대한밸런스의학회 유승모 회장(예산명지병원장)은 “DC를 합법화해 달라는 건 그들의 욕심이다. 한번 풀어지기 시작하면 의료시장이 왜곡된다”며 “미국 법학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은 다 한국 변호사 자격을 줘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유 회장은 “우리나라에 의사와 한의사가 양립하듯이 미국에서 DC는 민간치료요법을 체계화하고 근골격계 통증 부분에만 철저하게 제한돼 활동한다”며 “미국 의료체계에서 생긴 DC 면허를 우리나라에서 왜 인정해 줘야 하느냐. 의료는 정치판에 휘둘리면 안된다”고 말했다.

'도수의학회' 설립 추진하는 의료계

카이로프랙틱 자격을 인정하고 있는 영국에서 벌어진 근거 부족 논란을 예로 들며 국내에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서비스가 허용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4월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에 카이로프랙틱을 비판한 기사(‘Beware the Spinal Trap’)가 게재되면서 촉발된 논란은 법정 소송으로 번졌으며 이후 카이로프랙틱이 영아 산통(갑작스런 복통)이나 귀 질환 등에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담긴 책까지 발간돼 논란이 확산됐다. 논란 이후 카이로프랙틱 시술자 단체 중 한 곳인 ‘제너럴 카이로프랙틱 위원회(General Chiropractic Council)’는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영아 산통, 야뇨증, 귀 감염, 천식 등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없다고 발표하기로 했다.

의협 신현영 대변인은 “카이로프랙틱은 도수치료 중에서도 고위험 시술이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며 “의사 관리·감독 하에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부작용 위험이 있기 때문에 교육을 충분히 받은 의사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의협은 카이로프랙틱 자격 신설 움직임을 원천봉쇄한다는 차원에서 의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 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관련 학회 설립을 추진하는 등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는 3월 7~8일(이론·실습)과 4월 11~12일(실습)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도수치료(카이로프랙틱) 연수강좌’는 의사 회원 420명을 대상으로 총 30시간 교육하며 정례화 계획도 갖고 있다. 의협은 “카이로프랙틱은 도수치료의 일종으로 의사가 시행해야만 국민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며 “카이로프랙틱에 대해 의료계 스스로 관심을 갖고 회원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 하에 연수강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수의학회’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의협은 20여명이 참여하는 도수의학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도수의학회를 설립해 카이로프랙틱을 의료행위로 제도권 내 진입시킨다는 계획이다.

신 대변인은 “그동안 의협이 너무 방치해 온 면이 있다. 앞으로는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연수교육을 꾸준히 실시해 의사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며 “신경을 쓰지 못하다보니 DC를 고용하는 의원들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통제하겠다”고 했다.

이번 연수교육 강사 중 한 명이기도 한 유승모 밸런스의학회장은 “카이로프랙틱은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 현 의료제도가 더 이상 왜곡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연수교육에서 그치지 말고 ‘도수의학회’를 별도로 설립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도수치료라는 이름으로 카이로프랙틱을 의사의 의료행위로 확고히 하려는 의료계와 카이로프랙틱 자격 신설을 통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려는 DC들. 이들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정부가 카이로프랙틱을 단두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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