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병원들 ⑩ 최고의 척추전문병원을 지향하는 ‘윌스기념병원’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수원 윌스기념병원은 130병상의 작은 병원이지만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 병원이다. 경기도 최초 보건복지부 지정 척추전문병원, 척추전문병원 최초 의료기관인증평가 통과 등이 윌스기념병원이 갖고 있는 최초 타이틀이다.

이 외 척추전문병원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복지부의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소병원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작지만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윌스기념병원은 지난 2002년 10월 수원 인계동에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로 개원한 후 11년간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안팎으로 병원 규모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박춘근 원장은 신중했다. 의료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윌스기념병원이 오랜 세월 동안 환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의료의 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은 경영 철학이 있다.

‘윌스’ 박사에게 열정 이어받아

윌스기념병원의 ‘윌스’는 현대 척추외과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미국의 윌스 박사(Dr. Wiltse)의 이름이다. 윌스 박사는 정형외과의사로, 북아메리카척추외과학회(NASS)의 설립자이자 초대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일반인들과 타과 의사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척추를 연구하는 의사들에게는 척추수술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춘근 원장이 개원 시 윌스 박사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미국 연수 때 인연에서 기인한다. 처음 개원을 생각했을 때는 지난 1997에서 1998년 미국에 교환교수로 있을 때 지도교수였던 한센 유한(뉴욕주립대 교수) 교수의 이름을 생각했다.

하지만 유한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지도교수이자 척추외과학 분야에서 더 많은 업적을 남긴 윌스 박사를 기념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결국 박 원장은 유한 교수의 소개로 윌스 박사에게 병원명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해도 괜찮다는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박 원장은 개원하는 병원에 윌스 박사의 이름만 따온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 중요시했던 ‘척추연구’와 ‘후학교육’라는 콘텐츠도 심었다. 병원 경영에서 연구와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원칙은 여기에서 나왔다.

130병상의 중소병원에서 연구와 교육을 중시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박 원장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를 병원에 녹여냈다. 우선 각종 인센티브로 의사들의 연구의지를 높이고 있다. 국내 학술대회 참가는 물론 해외학술대회 참가를 적극 권장하며, 학술대회 참가를 위해 소요되는 경비를 지원한다.

SCI급 저널에 논문을 싣게 되면 금전적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중소병원 특성상 진료만으로도 벅찰 수 있기 때문에 연구에도 힘을 쏟기 위한 당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철저하게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교육은 원내 의사들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척추를 진료하는 개원의는 물론이고 몽골과 베트남 등 해외의사들에게도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더해 내년부터 시작하는 해외의사 대상 장기연수 프로그램(6개월~1년)에 참여할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기도 하다.

의료계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도 10년 전 개원 시 중요하게 생각했던 연구와 교육이라는 콘텐츠를 등안시하지 않고 오히려 장점으로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이차 조언’을 하는 병원

올해 윌스기념병원 인근에 척추전문병원 3~4개가 들어섰다. 안그래도 의료계 전체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인근 지역에 경쟁병원들마저 들어선 것이다. 이들 병원이 개원한 후 윌스기념병원을 찾는 환자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신규환자가 줄었다. 아무래도 주변에 척추전문병원이 생기다 보니 환자가 분산된 것이다. 하지만 윌스기념병원에 따르면 신환은 줄었지만 수술건수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병원 측은 다른 병원에서 어떤 시술이나 수술에 대해 권유받은 환자가 이차 조언(second opinion)을 듣기 위해 윌스기념병원을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춘근 원장은 “주변에 척추전문병원이 생기면서 신규환자는 줄었지만 수술건수와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며 “주변에 병원이 생겼으니 찾아가본 후 어떤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받으면 이차 조언을 듣기위해 찾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저 병원에서 수술하라고 하는데, 맞나요’라고 묻는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럴 경우 환자 상태를 보고 수술 필요 여부를 이야기해주는데, 대부분은 수술이 필요없는 경우라고 한다.

이런 환자들에게 ‘수술이 필요없다’고 조언하면 수술 외 필요한 진료를 윌스기념병원에서 받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면 필요한 수술을 윌스기념병원에서 받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신환은 적지만 윌스기념병원에서 진료받는 환자들은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이에 대해 “오랫동안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 것이 믿음을 심어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진 위)윌스기념병원 재활치료실 전경. (사진 아래)윌스기념병원 내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병동 전경. 보호자 없는 병동 특성에 맞게 병동 중간 중간에 간이 간호사 스테이션을 마련했다.

중증도, 대학병원에 버금간다

박춘근 원장은 의료전달체계가 심하게 왜곡된 현실에서도 전문병원의 역할은 있다고 말하며, 대학병원에도 지지않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윌스기념병원은 의료의 질을 담보하는 의사들의 실력을 가장 중요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윌스기념병원에서는 의사를 채용하면 3~4개월 동안은 수술에 참여시키지 않고 그냥 지켜보게만 한다. 그 후 쉬운 수술부터 참여하게 하는데, 절대로 혼자 뭔가를 결정하게 하지 않는다. 윌스기념병원에서 5~6년 정도 근무한 전문의들이 결정한다. 교육도 교육이지만 의료의 질을 떨어트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다.

윌스기념병원의 중증도에 대해 물었을 때, 박 원장은 몇가지 예를 들었다. 첫번째는 ‘후종인대골하증’이다. 척추의 후종인대가 뼈처럼 단단해지는 증상인데, 발병하면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중풍처럼 잘 걷지 못하게 된다. 수술하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지만 난이도가 높아 어지간한 전문병원은 잘하지 않고 대학병원으로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윌스기념병원은 이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으로 보내지 않는다.

척추종양의 경우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대학병원이 아니면 잘 접할 수 없는 질환이기 때문에 역시 전문병원들이 잘 보지 못하지만 박 원장은 대학병원에서 척추종양을 전문으로 했다. 당연히 수술이 가능하다.

박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전방 경유 척추고정술’이다. 척추측만증이나 척추가 앞으로 굽은 환자의 경우 척추 여러 곳을 고정해야 하는데, 뒤쪽으로만 수술할 경우 출혈도 심하고 예후도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럴 경우 활용가능한 수술이 전방 경유 척추고정술이다. 박 원장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20명 정도며, 윌스기념병원에는 가능한 의사가 몇명 있다.

중증도는 대학병원에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으며 척추전문병원이라면 이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이 박 원장의 생각이다.

‘불평’으로는 아무것도 해결 안된다

윌스기념병원은 복지부와 관련된 사업에 적극적이다. 전문병원 선정부터 의료기관인증,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까지 전문병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불평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박춘근 원장의 생각에서 기인한다.

정부정책도, 만성적인 저수가도 모두 불만이지만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당초 목적대로만 된다면 자신이 평소에 ‘병원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방향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실제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의 경우 박 원장이 시범사업 전에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병원의 모습과 일맥상통해 복지부가 시범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준비에 들어가 선정된 경우다.

윌스기념병원은 작은 규모의 척추전문병원이지만 척추와 관련해서는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전문병원에 맞는 중증환자를 치료하며 병원의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박 원장에게도 지난 10년은 어려운 시기였다. 또한 향후 10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박 원장이 지금처럼 연구와 교육, 전문성 등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환자들이 윌스기념병원에 갖는 믿음은 계속될 것이다.

법과 제도 모르는 병원장, 물가에 내놓은 어린이와 같다

[인터뷰] 수원 윌스기념병원 박춘근 원장


윌스기념병원을 이끌고 있는 박춘근 원장은 병원 규모를 키우는 것 보다는 의료의 질을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병원장이다. 그에게 어려운 의료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Q.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각종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불만도 있을 것 같은데.

- 의료수가가 원가의 70% 수준이라면 진료를 보면 볼수록 손해라는 의미인데, 이에 비해 인건비 등 병원경영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개원한 지 11년이다. 의료계 상황은 항상 최악이라고 하는데 어떤가.

- 10년 전에 비해 의료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병원들이 벌써 다 망했어야 하는데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전체적인 환자 수와 매출이 늘었음에도 의료 외적 환경이 나빠져서 수익률이 줄어들고 있다. 향후 10~20년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Q. 향후 10~20년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불황과 한파가 밀려올 것이다. 의료전달체계가 잘 정비돼야 하는데, 개선하지 못하면 정말 도산하는 병원이 줄을 이을 것이다. 바라건데 건강보험제도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와 공급자, 사용자 간 대타협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Q. 전문병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전문병원은 대학병원과는 경쟁하고 의원급의료기관과는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윌스기념병원도 전국 30여 곳 의원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도 정부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먼저 해보고 있다(웃음).

Q. 윌스기념병원의 향후 목표는.

- 윌스기념병원의 사명은 ‘척추질환 관련 인류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다’와 ‘전 세계 더 많은 지역 주민이 최고 수준의 척추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명존중과 혁신적 연구성과, 최고 수준의 진료를 바탕으로 세계적 척추전문 의료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더 많은 환자들에게 좋은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목표다.

Q.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병원장들에게 조언한다면.

- 지금까지 병원을 경영하면서 느낀 점은 의사는 진료 외 행정적인 부분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국가에는 수많은 법과 제도가 있다. 이런 것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병원을 개원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물가에서 혼자 노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다. 병원경영자라면 의료와 관련한 법과 제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번째는 의료의 질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주위 어느 누구도 이야기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당장 보이는 환자 수를 늘리기 위한 방안 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에서 환자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진료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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