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care Revolution (5) 디자인이 혁신을 만든다

파괴적 의료혁신(원제 Innovator's prescription)은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석학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저서다. 출간 이후 해외 보건의료 학회에서는 ‘파괴적 혁신 사례’에 대해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시스템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혁신’에 대한 실용서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연중 기획 ‘Healthcare Revolution'에서는 파괴적 혁신 이론과 사례를 다루고자 한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사례를 취재해 진행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내용은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IDEO다. IDEO는 단순히 제품 디자인을 해주는 회사는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혁신을 주도하는 회사다.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라는 개념을 만든 곳이 IDEO이기도 하다. 애플의 초기 마우스를 만든 회사이기도 하며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카드와 같은 국내 대기업들도 고객으로 두고 있는 글로벌 회사다. 그러나 제품 디자인만 하는 곳은 아니다. 의료서비스 혁신을 위한 사업 확장도 하고 있다. 아부다비의 클리브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을 만들 때 참여하기도 했고 미국 본토의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혁신에도 IDEO가 있었다. 본지는 IDEO의 본사인 샌프란시스코 팔로 알토(Palo Alto)에 직접 방문해 IDEO의 혁신 사례에 대해 알아보았다.

▲ 스테시 창(Stacey Chang), IDEO 헬스케어 디렉터(Healthcare Director) 엄영지 기자

[청년의사 신문 특별취재팀]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 IDEO의 보건의료 분야를 맡고 있다. IDEO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크레이티브 디자이너(Creative Designer)로 분류할 수 있다. 원래는 MIT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서 대학원을 다닌 엔지니어 출신의 디자이너다. IDEO 대표인 팀 브라운은 T자형 인재를 중요시하는데 IDEO에는 이질적인 전공의 디자이너들이 많다.

Q. 디자인 회사인데 보건의료 혁신에도 IDEO가 관여한다는 것이 놀랍다. IDEO는 어떤 회사인가?

- 보통 디자인 회사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먼저 IDEO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자면 30년이 넘은 회사다. 현재 6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로 본다면 큰 규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디자인 회사로는 아주 큰 규모다. 본거지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팔로 알토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보건의료 일은 전체 업무의 1/3에서 1/4을 차지하고 있다.


▲ 사진1. IDEO 몽고식 텐트 형태의 테이블. 외부 소음을 차단하면서 테이블에 바로 아이디어를 적을 수 있다. 엄영지 기자

Q. IDEO는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로 혁신을 주도한다고 들었다. 청년의사 신문 독자들을 위해 IDEO가 어떻게 디자인적 사고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나?

- IDEO에 대해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걸으면서 회사를 둘러보는 것이다. IDEO가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들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 디자인적 사고에 대해서도 자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보건의료 분야에서 어떻게 디자인적 사고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IDEO의 재산

IDEO에는 실험적인 공간이 많다. 디자이너나 엔지니어 그리고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들,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에는 의사가 언제나 협력해서 함께 일을 처리한다. IDEO는 ‘우리가 협력해서 일하면 어떤 개인보다 뛰어나다’는 구호를 가지고 있다. 천재 한 명이 혼자서 일하는 것은 안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팀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협동하는 사고방식을 장려하고 있고 곳곳에 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로비 테이블도 그런 개념에서 만든 것이다.


▲ 사진 2. IDEO에서 만든 현대카드 시리즈. 국내 금융계에서 디자인 경영의 우수사례로 꼽히는 현대카드는 IDEO와 협력해 회사 장기 전략을 세우고 운영 시스템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니즈에 맞춘 디자인으로 현재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엄영지 기자

몽고 식 텐트의 21세기 버전이다. 큰 빌딩 안에서 주변의 방해 없이 조용히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앉아서 얘기해보면 외부의 잡음을 반사하고, 실내의 목소리를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어서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도가 높다. 그리고 테이블은 종이다. 함께 생각을 나누기 쉽게 돼있다.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고 이것은 그 중 한가지다.


▲ 사진3. 나이트라인의 ‘혁신적인 쇼핑카트를 만들라’는 주문에 맞춰 제작한 쇼핑카트. 소아 안전을 향상시키고 물건 구매마다 카트를 끌고 가기 힘들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비닐봉지를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엄영지 기자

IDEO를 세상에 알린 쇼핑카트

IDEO를 알아온 지 어느 정도 되셨다면 이 쇼핑카트에 대해 알 것이다.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을 위해 만든 쇼핑카트다. 나이트라인의 딥 다이브라는 코너에서 IDEO에서 혁신을 한다고 하니 ‘쇼핑카트로 혁신’을 해보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래서 방송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했고 나이트라인이 전 과정을 밀착취재 했다. (이 방송은 유튜브에서 Nightline IDEO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1998년에 방송됐는데 지금까지도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보기를 하고 있다. 듣기로는 나이트라인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영상이라고 한다. 경영대학이나 혁신 훈련과정들에서 자주 틀어서 보여준다. 나이트라인은 훌륭한 홍보를 해준 최고의 친구이자 우리를 쇼핑카트나 만드는 사람이라고 알려지게 한 최악의 친구이기도 합니다.(웃음)

자동차 연료 절감, 디자인으로 이루다

포드사에서 Fusion이라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할 때 IDEO에 의뢰가 들어왔다. 자동차 내부의 인터페이스를 새로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걸맞게 디자인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덧붙여서 사용자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로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그래서 현장에 나가 사람들이 차의 인터페이스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움직이는 방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등에 대해서 연구했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구매이유 역시 환경을 생각해서가 많았다. 우리는 그 관심을 강화해서 차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적용했다.


▲ 사진 4. 포드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퓨전의 계기판. 上 시동 전 계기판 모습. 下 경제속도로 운전할 경우 녹색 잎사귀가 자란다. 엄영지 기자

이 중앙부분은 평범한 형태의 계기판이다. 물론 사용자가 바꿀 수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우측편의 잎사귀들이다. 친환경적인 운전을 할수록 나무가 더 잘 자란다. 만약 급가속을 할 경우 잎들이 갈색으로 변하고 떨어지는 등의 효과를 줬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은 아니고 실제 연료절감을 위해서다. 운전습관을 변화시켜서 연비를 절감시키기 위한 디자인적인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Q.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료분야에서도 중요한데.

- 그렇다. 우리가 언제나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사람의 감정적인 스위치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스위치가 무엇인지 찾으면 해답을 찾기 쉽다.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기능과 효율 같은 면만 집중하느라 환자에 대해 잊어버리기 쉽다. 대부분의 경우 의료진들은 해오던 관행에 익숙해져 이런 ‘스위치’들을 놓친다. 그래서 우리가 병원 의뢰를 받아 현장에 나갈 경우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실제 환자들이 어떻게 병원을 이용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최근에 아부다비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있었던 사례를 말해주겠다. 당시 중동 문화권의 환자들이 만족할 만한 병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 중이었다. 의료진들은 대부분 중동이 아닌 타국에서 오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개원했을 때 의료진들이 부딪힌 것은 의료적인 부분이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이었다. 처음 병실 디자인은 서양식으로 환자 침대와 방문객을 위한 소파만 있었다. 하지만 중동 문화에서는 가족 중 환자가 생기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와서 함께 돌본다. 그 사실을 몰랐던 의료진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닥에 카펫을 깔고 물담배까지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대응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해야 했다. (웃음)

저축 습관을 만든 서비스 디자인

앞선 사례가 제품에 대한 디자인이었다면 이번 사례는 디자인적 사고를 통한 경영 혁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잔돈을 넣어두라(Keep the Change)는 프로그램을 우리가 만들었다.


▲ 사진5.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잔돈은 넣어두세요'프로젝트. 물건 구매시 달러 단위로 반올림하고 잔돈은 저축하도록 한 프로젝트다. 엄영지 기자

이 프로그램은 직불카드를 사용할 경우 금액을 달러 단위로 반올림해서 은행 저축구좌에 넣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커피를 3달러 50센트에 구입할 경우 4달러가 직불카드에서 결제되고 50센트는 은행계좌에 들어가게 된다. 미국의 경우 저축 습관을 가진 사람이 낮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수도 있다는 좋은 면이 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현금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쇼핑과 저축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1천500만개의 새로운 은행 계좌를 개설하도록 했고 50억달러의 저축금을 확보했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한 사람들 중 98%가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더 고무적인 사실이다.

지속행동모델 적용으로 혁신을 이루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보건의료 분야에 적용하고자 했던 지속행동모델(Model of adherence)을 활용해 혁신을 했다는 것이다. 환자들로 하여금 복약 지침을 충실히 따르도록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조사했었다. 그 때 알게 된 것이 지속행동모델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모델은 보건의료 분야 밖에서도 아주 유용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이외에 미국 풋볼 리그(NFL)의 경우에도 지속행동모델을 적용했었다. 순응고리(Adherence loop)는 믿음, 지식, 행동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들이 저축을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붙이는 것을 고민했다. 그래서 하나의 고리를 완성하도록 도와준 것이 핵심이었고, 그 뒤에 긍정적인 피드백(저축액 증가)로 인해 자신들의 행동이 옳았다는 믿음이 생기도록 했다.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다

우리는 요리도구도 디자인한다. 다른 디자인 회사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접근 방식이 아주 다르다. 보통의 경우에는 전문 요리사에게 자문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 하는 요리가 가족들과의 소통의 시간이라는 점에 착안해 최대한 만족을 끌어낼 수 있도록 고민한다. 제품은 피자커터다.


▲ 사진6. IDEO에서 만든 피자커터. 어린이들이 체중을 실어 피자를 자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엄영지 기자

이 피자커터를 만들 때 우리는 가정에서 피자를 만드는 상황에 집중했다. 할머니나 엄마가 만들어준 피자를 아이들이 잘라보겠다고 생각해보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때 보통 피자집에서 사용하는 핸들이 달린 피자커터를 사용한다면 매우 불안할 것이다. 그래서 체중을 실어 아이들이 쉽게 피자를 자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관찰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피자커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 가정에서 피자를 만드는 상황을 관찰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문제를 말하는데 아주 서투르다. 보통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나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관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사람을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과 필요를 잡아내는 데 집중한다.


▲ 사진7. IDEO에서 만든 아이스크림 스쿱. 보통의 스쿱은 아이스크림을 떼내는 스위치가 있지만 IDEO 제품은 없다. 금속부분의 비중을 늘려 열 전달이 잘 되지 않아 아이스크림이 늘러붙지 않도록 한 것이다. 엄영지 기자

이 제품은 아이스크림 스쿱이다. 보통은 큰 통에서 아이스크림을 덜어낼 때 붙어있는 아이스크림을 떼기 위한 스위치가 달린 스쿱을 이용한다. 가정에서 스쿱으로 아이스크림을 덜고 나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뭘 것 같나?

Q. 보통 물로 씻는 것 아닌가?

- 우리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행동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스쿱에 붙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다는 것이다. (웃음) 그래서 우리는 보통 스쿱들이 가진 스위치를 없애고 둥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이 잘 떨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 통짜 금속으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절대로 달라붙지 않는다. 열을 흡수할 수 있는 충분한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Q. 이런 접근 방식을 보건의료에서도 적용한 적이 있나?

- 이 보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 사진 8. 환자 여정 테이블. 산모가 현재 진행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엄영지 기자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만족도가 높았던 프로젝트였다. 보통 산모들이 출산하기 위해 병원에 들어가면 굉장히 불안해한다. 그 이유를 관찰해 본 결과 의료진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바쁘고 늘 ‘공식적인 입장’만 말한다. 간호사들이 부연 설명을 얘기해 주지만 자신이 앞으로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산모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설명을 들어도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이 환자 여정 보드다. 현재 어떤 절차에 속해 있는지 알려주고 이 절차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환자가 한 눈에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카이저 퍼머난테(Kaiser Permanente)와 함께 했다.

적십자와도 여러 번 일을 했다. 주로 헌혈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헌혈을 하기를 원했다. 이동식 헌혈 차량을 더 많이 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우리는 그런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헌혈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조언했다. 헌혈이라는 행동에는 숨겨진 감정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만난 사람 중에는 ‘어머니가 10년 전에 헌혈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헌혈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눔의 벽’을 만들었다. 헌혈을 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왜 헌혈을 하는지를 정리해서 게시판에 붙이는 것이었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시간을 들여 그 이야기들을 읽고 헌혈을 하게 됐다. 사람들의 숨겨진 감성을 건드렸을 때 큰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Q. (벽에 걸린 구호를 보며) 작은 것이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구호에 딱 맞는 사례인 것 같다. 사소한 것을 끄집어 내 큰 변화를 만드는 것이 IDEO가 하는 일인 것 같다.

- 맞는 말이다. 이번에 소개할 사례도 비슷하다. 이것은 물을 끌어 올리는 펌프다. 사실 수동식 펌프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상황에 맞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IDEO에서는 최근 개발도상국의 복지 향상을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쏟고 있다. 이 경우 그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ApproTec이라는 회사와 함께 펌프를 디자인한 것인데 보면 굉장히 투박하다. 현지의 기술자들이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성능이 뛰어나서 10번 정도만 발로 펌프하면 18m 지하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가축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경우가 많은데 이 펌프에는 그런 가축의 힘이 필요 없다. 때문에 가축을 농사에 돌릴 수도 있다. 이 펌프의 가장 특별한 점은 제작이 쉽다는 것이다.


▲ 사진9. IDEO에서 디자인한 지하수 펌프. 개발도상국에서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이을 고안했으며 제조사나 판매사, 사용하는 농부들 모두 이득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제품명은 'The Money Maker'다. 엄영지 기자

오차범위를 넓게 디자인해서 현지의 낮은 기술력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도록 보급성을 높였다. 이를 판매하는 현지 상황까지 고려한 것이다. 펌프가 유용해 많이 판매되면, 판매하는 현지 기업도 소득이 늘어나고 구입한 농부 역시 농작물 재배가 편리해 진다. 사회 전체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는 새로운 에코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사용할수록 돈을 번다는 의미로 펌프 이름을 머니 메이커(Money Maker)로 지었다.

Q. IDEO 근무 환경도 독특한 것 같다. 고정된 책상이 없는 것 같은데.

- 대부분의 직원들은 정해진 책상이 없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노트북과 이동식 캐비닛을 가지고 와서 프로젝트 기간 내내 팀과 함께 지낸다. 그 이유는 좋은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말하고 구체화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다.


▲ 사진 10. IDEO 사무실 내부에 있는 밴. 지금은 회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엄영지 기자

우리는 용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천정에 걸려있는 자전거들은 처음 누군가가 실내 공간을 아끼기 위해서 자신의 자전거를 매달았던 것인데, 나중에는 모두들 따라 해서 아예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용인하는 문화의 단적인 사례는 이것이다. 정해진 책상이 없다보니 누군가 휴가를 다녀오게 되면 돌아왔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가 어떻게 돼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농담으로 한 직원이 자기 자리를 하와이식 파티 풍으로 꾸며놓겠다고 했었다. 그 직원이 휴가를 간 동안 우리는 그 친구의 자리를 밴에 집어넣고 하와이 풍으로 꾸몄다. 그 친구가 가진 밴과 똑 같은 모델을 온라인 장터에서 구입한 다음 내부를 사무실로 개조한 것이다. 그 직원의 자리는 IDEO의 관광지가 됐다. (웃음) 하도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오니 자신의 사무실을 컨퍼런스 룸으로 사용하도록 해서 예약하도록 했다.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회의실(?)이다.(웃음)

Q. 보건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사례를 보여 달라.

-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제품들 위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아마 병원 서비스 개선 등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IDEO 내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 위주로 설명을 하겠다.

이것은 주사기 없는 백신 개발에 관한 것이다.


▲ 사진 11. 주사 바늘이 없는 백신. 이 제품이 상용화 되면 자가 백신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IDEO 측의 설명이다 엄영지 기자

아이오마이(Iomai)라는 곳에서 백신접종 방법을 새로 개발했는데 문제는 혈관 층에 닿기 위해 40~60μm의 피부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이오마이(Iomai)에서는 이를 균일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다. 접착액을 발라 벗겨내는 방법, 긁어내는 방법 등을 직접 스스로에게 실험해 봤다. 최종 결과는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장비를 팔에 올리고 버튼을 누르면 일정한 힘이 가해지고 의료용 사포로 일정한 긁힘을 가해서 40-60μm의 피부만 제거할 수 있다. 아래 위로는 잉크자국이 남는데, 붙이는 백신을 접종하게 된다. 우리가 이 일을 끝낸 다음 아이오마이(Iomai)가 스위스의 기업인 인터셀(Intercell)에 매각됐고, 지금 현재 제3세계에서 사망자를 발생시키기도 하는 여행자 설사(Traveler’s diarrhea) 예방백신과 H1N1 백신을 위한 Phase 3 임상실험 중이다.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혈당기를 만들기도 했다. 바이엘(Bayer)사에서 혈당을 재는 테스터를 개발했지만, 시장점유율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흰색과 파란색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라고 권했다. 모든 의료기기들이 흰색과 파란색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조언이었다. 매일 가지고 다닐 장비에서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이 병원을 연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한 조언이다. 일반 기기들처럼 예쁘게 만들어서 마음 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또 충전을 USB를 활용하도록 했다. 충전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프로그램이 실행돼 측정 시점을 보여주도록 디자인했다. 테스트가 식전에 측정됐는지 식후에 측정됐는지를 묻는 것에 답하지 않으면 테스트가 진행되지 않도록 해서 제대로 혈당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자료는 바로 의사들에게 보내질 수 있다.

제세동기 개발에도 우리가 관여했었다. 이것은 처음 개발된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심장 제세동기다.


▲ 사진 12. IDEO가 개발에 참여한 자동 제세동기. 환자에게 어떤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지 안내해준다 엄영지 기자

우리가 제세동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HP에 매각된 하트스트림(HeartStream)에서 인터페이스 문제로 심장 제세동기를 사용해 사람을 구하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의뢰해 와서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알다시피 심장마비가 왔을 때는 매초가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인들은 이런 삶과 죽음이 갈리는 상황에서 아주 불안해 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제세동기 작동 과정을 3단계로 나눴다. 이전에는 빨리 작동시킬 수 있도록 부착 후 버튼을 누르게 돼 있었는데 우리는 오히려 절차를 늘린 것이다. 기기를 켜면 자가진단이 시작되고 패드를 부착하라는 설명이 나오고 준비가 되면 버튼을 누르라는 설명이 다시 나온 뒤 버튼을 누르도록 했다. 사실 이 제품의 경우 패드를 어디에 붙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위치를 지정해 줌으로써 어디에 붙여야 할지 당황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경우다. 이제 모든 심장 제세동기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 사진 13. IDEO에서 만든 척추관 협착증 수술에 쓰이는 장비 엄영지 기자

이것은 우리가 금방 작업을 끝낸 제품이다. 척추 안이 좁아져서 척수의 압박이 생기는 척추관 협착증에 쓰는 수술기기다. 신경 압박이 있는 곳에 톱날을 정확하게 유도하기 위해 가이드와이어를 해당 위치에 도달하게 한 다음 톱날로 바꿔서 작업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아주 정확하다. 이 기기는 올해 Medical Excellence Award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골다공증 치료를 위한 인젝션 키트도 개발했었고, 여러 다양한 의료기구 디자인들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의료혁신들은 단순히 의료장비를 디자인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행동을 고려해 해답을 찾고 있다. 서비스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관찰을 통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 빨리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이요 클리닉에 도움을 준 부분도 이런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Q. 새로운 사고, 숨겨진 문제를 찾는 것들은 굉장히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서 상의한다고 답이 찾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

-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개개인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보통은 두 가지 이상의 완전히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있다. 팀으로 묶이면 전공은 더욱 다양해진다. 인류학, 심리학, 의학,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전공을 한 사람들이 디자인이라는 공통된 사고로 묶인다. 색다른 접근이 가능하고 숨겨진 사실을 발견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 사진 14. IDEO의 테크박스. 온도 시각적인(thermal & optical 엄영지 기자

물론 프로젝트가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럴 때 도움을 주는 것이 이것이다. 물건, 놀라운 물건(amazing materials), 뛰어난 장치들(cool mechanisms) 등으로 박스가 구성돼 있다.) 테크박스(Tech box)라고 부르는 것인데 재미있는 물건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영감을 받기에 좋다. 답을 찾다가 벽에 부딪히면 여기에 와서 테크 박스 물건들을 가지고 논다. (웃음)

IDEO에서는 여러 곳에 테크박스가 있으며 각각의 테크박스마다 큐레이터를 정해 놓는다. 나는 10년 전에 이 테크박스의 큐레이터였다. 큐레이터는 각각의 테크박스가 같은 물품을 구성하도록 하고 새로운 물건을 추가하는 일을 맡는다.

테크박스가 유용한 점은 다른 사람에게 뭔가에 대해서 설명할 때 실제로 시연이 가능하다는 것도 있다. 누군가에게 열전달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다면 여기 구리 조각을 뜨거운 물에 넣어 느끼도록 한다. 실제로 보여주고 느끼는 것이 설명해주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

Q. 서비스 디자인을 할 때 프로토타입이 중요한 이유가 있나?

- 프로토타입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 대부분의 프로토타입은 기대에 못 미친다. 빨리 실패를 경험하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서비스와 제품 디자인 모두 프로토타입이 중요하다. IDEO는 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보면 실패가 너무 늦게 오고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패에 따른 배움도 적다. 메이요 클리닉에도 이런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는 실험실과 과정을 전수했다.

실패로 배운 사례를 또 들어보자. 나는 현재 보건의료 쪽 일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다른 일도 했었다. 그때 겪은 일이다. 당시에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할 때가 많았는데 이 좌석을 2단 침대로 만들 수 있으면 여행 중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CEO인 팀 브라운이 훌륭한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반나절 시간을 들여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박스로 가짜 비행기를 만들고 의자를 몇 개 집어넣고 CEO에게 테스트해 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맞닿을 만큼 가까이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초면에 가까이 앉는 것도 편치 않은 일인데 모르는 사람과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더 만만치 않은 일이다. CEO는 프로토타입을 보고 ‘끔찍한 아이디어였다’며 ‘돈을 낭비하지 않아 다행이다’고 했다. (웃음)


▲ 사진 15. 코 안을 수술하는 장비의 프로토타입 (좌), 최종 결과물 (우) 엄영지 기자

디자인적 업무 프로세스는 의료분야에 있어 필요한 것을 새로 만드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 기기는 디자인센터에서 외과의사와 함께 디자인한 것인데, 코 안을 수술하는 기구다. 외과의사가 어떤 컨셉을 설명하려고 할 때 가지고 있는 것들로 간단하게 모형을 만들어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Q.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장비들도 충분해야하겠다.

- 병원 내에서 혁신적인 장비를 만들기 원한다면 실험실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메이요에는 이런 실험 공간이 들어가 있다. 우리는 전문적인 회사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는 3차원 프린팅이 가능한 장비도 있어서 설계를 넣으면 몇 시간 만에 플라스틱 제품을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 IDEO에 입사하면 안전 교육을 가장 먼저 받는다. 이후에는 선반과 같은 장비부터 목공도구, 레이저 절단기, 용접기까지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손재주가 부족할 때는 전문 기술자가 있어서 원하는 것을 대신 만들어 주기도 한다.

Q. IDEO에서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 같다.

- 그럴지도 모른다. 장난감도 발명하고 때로는 앱도 개발한다. (웃음) 그만큼 디자인 개념이 중요하다는 말도 된다. 장난감 공방에서 일하고 싶을 때엔 일정 기간 동안 일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든 히트 상품 중 하나는 로켓이다. 로켓을 쏘아 올릴 때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높이다. 우리가 디자인한 이 장난감은 실제로 어디까지 올라갔나를 알려준다. 300만개 이상 팔린 히트 상품이 됐다. 우리가 관여하지 않는 것은 ‘담배와 ‘총’뿐이다.

Q. 한국 기업과도 일을 많이 했는데 IDEO 한국 지부를 만들 생각은 없나?

- 사실 거기에 대해 이야기해 본적이 있다. 현재 아시아 사무실은 도쿄와 인도에만 있다. 최근 5년간 아시아 지역에서 한 일들의 대부분이 한국 회사들이라 고민이 있다. 나도 왜 한국 지부를 열지 않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지부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현재 1년에 두 번 정도는 한국에 출장가고 있는데 말이다.

Q. IDEO 일하는 사람들 전부가 디자이너인가?

- IDEO는 조금 특이한 형태로 운영된다. 회사의 75%, 400명에 약간 못 미치는 직원들을 ‘디자인 커뮤니티’로 분류한다. 그러나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자와 산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미술가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일을 한다. 보건의료, 장난감, 자동차 등등. 이 다양성 때문에 직원들이 IDEO를 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농담으로 IDEO의 모든 직원들은 ADD(Attention Deficit Disorder, 주의력결핍증)이 있다고 말하고는 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니까. (웃음)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IDEO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Q. 보건의료 분야는 전문성이 있어야할 것 같은데?

- IDEO는 3가지 ‘업무(Practice)’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보건의료(Healthcare)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비재(Consumer), 나머지 하나는 시스템(System)이다. 소비재 부분에는 전자제품이나, 음료, 음식들이 해당된다. 자체 조리연구실이 있어 음식을 개발하기도 한다. 시스템 분야는 조직 개선을 하는 것이다. 디자인 경영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보건의료분야에도 시스템이 있다. 오늘 소개한 것은 우리 프로젝트 중에 공개된 일부다. 보건의료 분야가 주요 업무 중 하나인 만큼 많은 직원들이 보건의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이 참신한 생각을 만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모두가 3개월 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는다. 따라서 75%의 IDEO 직원들은 의료보건 분야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일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처럼 보건의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전담자는 25명이 있다. 이들은 보건의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만 팀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꾸려진다.

보건의료 팀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를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토론하며 여러 관계들을 담당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우리는 감독을 할 뿐 실제 일은 디자인 커뮤니티에서 하게 된다. 보건의료 분야에 있는 사람 외에도 몇몇은 보건의료 분야에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원한다. 그 경험이 우리 의뢰주들에게 더 큰 가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Q.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경험이 융합돼 혁신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심지어는 IDEO를 나갔다 들어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다양한 사업에 대한 지식과 새로운 경험들을 쌓아오기 때문에 IDEO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사회학이나 정신분석학, 인류학 쪽의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얼핏 생각하기엔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하지만 사용자를 관찰하고 필요한 것을 알아내는데 중요한 경력이다.

Q. 보건의료 장비만 디자인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다른 사례가 있나?

- 현재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으로 인한 새로운 규칙은 모든 사람들이 보험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 시스템을 디자인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다른 11개주에서 캘리포니아 의료 재단을 고용해서 새로운 의료보험 중계시장을 디자인하기로 돼있다. 우리도 여기에 참가해서 의료보험 중계시장을 디자인하는 중이다.

보험을 찾는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적합한 의료보험을 찾는 개인들이고, 또 하나는 직원들의 보험을 찾는 작은 규모의 고용주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보험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웹사이트를 디자인 하고 있다. 만약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이트로 와서 어떤 보험을 원하고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 어떤 옵션이 있는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Q. 병원들과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 메이요 클리닉은 미래에 의료의 질을 측정하는 기준은 의학적 결과가 아니라 환자의 만족도라고 믿고 있다. 좋은 예후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양질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에게 환자와의 관계를 개선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래서 해당 센터를 디자인 했다.

의료 소비자들이 병원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보자. 예쁘고, 사용하기 편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애플스토어에 가서 수리를 받거나 교체 받을 수 있다. 훌륭한 에프터 서비스를 경험한 소비자들이 비슷한 기대를 병원에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주는 병원은 많지 않다. 이런 이유로 IDEO가 여러 병원들과 일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요 클리닉은 환자들이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경험의 질도 높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Q. 메이요 클리닉 외에 다른 병원과 일한 적은 없나?

- 앞서 말했듯이 아부다비의 클리블랜드 클리닉과 일을 했었다. 또 존스홉킨스와도 일을 했다. 존스홉킨스에서 우리를 고용한 이유는 퇴원 환자들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퇴원시킬 때 퇴원 기록을 남겨서 다른 의사들이 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가 퇴원한지 한참 뒤에서야 퇴원 기록이 작성되는 문제가 있어 개선을 의뢰했다. 자료 입력을 빨리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도입했지만 별 소용이 없는 상태였다. 레지던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잊어버렸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관찰 결과 잊어버린 게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안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의무기록 작성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의대생들에게 퇴원 기록을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 기록을 작성해야 할 때가 오면 검사기록을 단순히 베껴낸다던가 해서 보내고 있었다.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기록이 형편없다고 말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고쳐지지 않은 버릇이 다음 세대의 의사들에게 전해지는 상황이었다. 또 인프라를 개선하는 일도 필요했다.

일하는 중 어려웠던 것은 레지던트는 병원에서 최대 16시간만 일하도록 규제가 바뀐 것이다. 내 아내도 의사인데, 16시간 동안에 대체 뭘 배울 수 있을 거냐며 불평하더라. (웃음) 아무튼, 우리는 교육과 인프라를 개선해서 퇴원 기록의 90% 이상이 24시간 안에 작성되도록 했다.

Q. 단순히 형식적인 퇴원기록 미비가 개선된 것은 아닌가? 충실하게 작성되었는지 판단이 필요하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목표를 달성했는지도 궁금하다.

- 퇴원 라운드라는 것을 만들었다. 레지던트나 인턴이 보통 퇴원 기록을 작성하는 시간인 낮 시간대에 라운드를 주치의와 하도록 한 것이다. 주치의가 포인트를 요약해주니 퇴원기록을 순식간에 작성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의 질 역시 훨씬 더 뛰어나다. 또 기술을 이용하도록 했다. 태블릿 PC와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존스홉킨스는 여전히 종이를 선호하는 것 같다. 존스 홉킨스라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는 태블릿 PC를 선호하지 않을까.

앞으로 의료계에 중요한 것은 피드백 메커니즘

앞으로 중요한 것은 피드백 메커니즘이다. 최근에 몇몇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을 때 앞으로 의료계의 트렌드에 대해 물어본 의사가 있었는데 피드백 메커니즘이 의료계에 있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내 아내가 의사인데 환자에게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한 다음 환자를 보낸다. 6개월 뒤에 환자가 아무런 차도가 없이 돌아왔다. 이때 진단을 잘못 내린 것인지, 처방이 잘못된 것인지 처방 용량이 부족했는지,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피드백이 없는 이 사이클을 어떻게 개선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다.

Q. 국내 병원에는 관여한 적이 없나?

- 직접 병원 일을 한 적은 없지만 삼성의료원에서도 많은 시간 있었다. 삼성의료원과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한 기업을 위한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로 삼성의료원에서 환자들을 관찰 한 것이다.

Q. 보건의료 분야는 이해관계자들 입장이 달라서 혁신하기 쉽지 않은데.

- 우리는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일한다. 환자복지, 시스템, 보험, 네트워크 등 각각의 작은 ‘왕국’은 엄격한 규칙과 한계를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일정 한도까지 만의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아무도 서로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뢰인들에게 꼭 하기를 종용하는 것이 공동의 관심사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부분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사례가 있다. 제약회사와 거대 의사결정단체, 거대 약국체인과 공동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해결해야할 문제는 25~30%의 첫 처방전이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이 약을 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환자의 건강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치료가 아예 시작되지도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해관계자 중 아무도 이익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환자들을 관찰한 결과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환자들은 의료기관을 갈 때마다 이름, 주소, 보험정보들을 다시 적는 것에 피로를 느꼈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또 생활 습관을 고치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이걸 다 해야 하나요?’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약국의 약사는 바빠서 처방전에 대한 설명을 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약국 체인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환자를 관리하고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과 충분한 약에 대한 설명을 해주도록 했다. ‘환자들’이 아닌 ‘개인’으로 대접 받는 것에 대해 환자 만족도도 높아졌다.

이것은 시스템적인 문제를 해결한 하나의 사례다. 재미있는 것은 제약회사는 더 많은 약을 팔고, 약국은 더 많은 처방약을 조제하고, 의사는 더 나은 예후를 얻어 각자의 이해가 모두 충족됐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점점 더 많이 하고 있다.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보람 있는 일이다.

Q. 한국에 자주 왔었고, 한국 병원도 방문했다면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 것 같다. IDEO의 보건의료 총 책임자로서, 한국 의료를 어떻게 보나?

- 내 생각에는 한국의 병원들이 세계적으로 최고라 불리는 병원들을 벤치마킹해 훌륭하게 따라 잡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과정 중에 문제점들도 그대로 옮겨갔다고 본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개선할 부분이 있겠지만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 병원들이 다른 나라의 병원들을 이끄는 위치에 올라왔다고 본다. 한국의 전반적인 경쟁력 향상과도 연계돼 있다고 본다. 현대자동차 역시 이제는 자신의 분야에서 선구자적 위치에 섰지 않나. 한국 경제의 변화는 감탄할 수준이다. 15년 전의 서울을 생각해 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해외를 모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병원의 규모는 방문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지만 미국의 병원들에서 보이는 동일한 문제들을 보다 보면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한국 병원들이 역사가 짧아 변화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나 UCSF(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의료센터 같은 곳들은 오래된 관례들이 많아서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 밖의 병원들이 혁신하기 더 쉬울 것이라고 본다.

Q. 한국의 병원들도 IDEO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IDEO는 상당히 비싸다는 평이 있던데?

- 그건 사실이다. (웃음) 그래서 우리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우리는 혁신을 보고 싶어 하지만, 꼭 우리가 전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우리보다 나은 파트너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Q. IDEO의 혁신 사례도 그렇고 메이요나 카이저의 혁신 사례를 보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만 혁신도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마저 든다.

-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풍족한 경우에는 게을러지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혁신과 효율성은 비슷한 속성이 있는데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병원이라면 혁신의 동기가 없다. 진짜 혁신은 예산이 제한돼 있을 때 나오기 쉽다. 물론 어느 정도 돈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파괴적 혁신이 대기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웃음) 파괴적 의료혁신의 저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당시 취재 시 파괴적 의료혁신의 공저자인 제이슨 황과 함께 있었다)

Q. 한국 병원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

- 가장 놀라웠던 일은 차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대기시간, 그리고 한국인의 참을성 이었다. (웃음) 믿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면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이고 테이블을 두들기고 있었을텐데. 정말 참을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에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3달러밖에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비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한국 의료제도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의료의 가격을 좀 더 올려야 해결될 문제도 있어보인다.


▲ IDEO 본사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좌측부터 양광모 편집국장, IDEO의 스테시 창, 이왕준 발행인, 박재영 편집주간, 파괴적 의료혁신의 저자 제이슨 황, 이노사이트 인스티튜트의 앤 크리스텐스 대표. 양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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